생애

[Who Is ?] 이상무 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이상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이상무는 1949년 9월12일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났다. 경북고와 서울대학교 농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농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료생활을 시작했다. 27년간 농림부에 재직하면서 농업구조정책국장과 농촌개발국장, 기획관리실장, 농어업ㆍ농어촌 특별대책위원장 등을 거쳤다.

경북대학교와 일본 교토대학,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세계 농정연구원 설립과 아·태 농정포럼 의장, FAO 한국협회 회장 등 민관학 전문가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농업발전을 위한 연구와 국제협력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2013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에 취임해 2016년 10월 임기가 마무리됐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농림부 재직시 ‘농어촌발전 종합대책 및 농정개혁추진방안’, ‘농어촌용수개발 10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가뭄극복 종합대책’을 체계화한데 이어 농업정책심의회 제도를 발전 정착시키고 농림분야 법령 DB화와 체계적 정비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농정 관련 국제기구를 거치면서 쌓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공사의 해외사업 저변을 크게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세계식량농업기구(FAO) 필리핀 주재대표와 한국협회장을 역임할 당시 베트남과 미얀마 대통령과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이와 같은 해외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덕분에 농어촌공사해외사업 규모가 이사장 취임 전보다 5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금도 그동안의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도상국의 농업정책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서 다양한 네크워크를 맺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글을 기고하거나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언론과 소통에도 적극적인 편이다.

2013년 9월 농어촌공사 사장에 취임한 뒤 ‘스마트워크’를 도입했다. 직원들에게 태블릿PC를 지급하고 전국에 공용 업무공간(10곳)을 만들었다. 시차출퇴근, 원격근무, 근무시간 선택제 등 유연근무제를 정착시키는 데도 일조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1년 제 10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1971년부터 1984년까지 농림부에서 행정사무관, 과장으로 일했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냈다.

1993년 일본 교토대학 농업경제학과 초빙교수를 맡았다. 1990년부터 1995년까지 농림수산부 교육원장, 농어촌개발국장을 맡았다.

1996년1월부터 1998년3월까지 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경북대학교 농업경제학과 초빙교수,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교수를 지냈다.

1999년9월부터 2004년2월까지 UN FAO 필리핀 주재대표를 2004년2월부터 2013년9월까지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 한국협회 회장을 지냈다.

2008년4월부터 2009년12월까지 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0년 12월 새누리당 국가미래연구원 농림수산식품분과 간사를 맡았다.

2013년9월부터 2014년10월까지 한국관개배수위원회(KCID) 회장을 지냈다.

2013년 9월 한국농어촌공사 제 7대 사장에 올라 2016년 10월 임기가 마무리됐다.

◆ 학력

1967년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1년 서울대학교 농학과와 1975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1976년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대학원 농업경제학과 석사학위를, 1990년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농업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 상훈

1980년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 상훈

1980년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어록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한 노동조합원들의 반대의견이 있었지만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와 토론, 수차례의 노사협의를 거쳐 찬반투표 실시한 결과 과반수가 찬성했고 이사회 의결을 통과시켰다. 지난해에는 농식품부 산하 공공기관 중 가장 처음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2016/05/1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한 질문에)

“2013년 3월 취임 후 1년 6개월 만에 나주로 본사 건물을 이전하게 됐다. 내가 왔을 때는 옛 방식으로 설계돼 있었는데 건물의 공간배치를 스마트워크에 맞게 바꿨다. 수직적 권위공간을 수평적 소통공간으로 바꾸고 일하는 직원들을 중심으로 공간과 문화를 바꿨다. 회의공간은 9개에서 49개로 5배 이상 늘렸다. 회의도 정해진 시간이 넘으면 중단했다. 정시회의에 대한 만족도는 92%에 이른다.” (2016/03/03,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농어촌공사의 스마트워크에 대한 질문에)

“해외사업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취임 후에 해외 사업 부서를 2개 처로 늘렸다. 이번엔 조직개편을 통해 3개로 늘릴 예정이다. 해외사업 규모는 2012년 76억 원에서 지난해 391억원으로 늘었고 대상 국가도 동남아에서 아프리카, 중남미로 확대됐다. 앞으로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등 물부족 국가를 대상으로 태양광·풍력에너지와 용수시설, 논·밭 기반조성사업을 연계한 패키지사업에 진출하려고 한다.” (2015/11/1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농어촌공사의 미래성장동력에 관해 묻자)

“공사는 지금껏 대형국책사업 위주로 정부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대형국책사업이 점점 줄고 있어 대체할 일을 찾는 게 초미의 과제다. 공사의 수익 중 95% 이상 정부에 의존하고 있어 자체 사업을 많이 개발하는 게 초점이다. 역대 사장들도 이를 위해 노력했다.” (2013/11/0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농어촌공사의 정부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지적에 대해)

◆ 평가

농림부 재직시 ‘농어촌발전 종합대책 및 농정개혁추진방안’, ‘농어촌용수개발 10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가뭄극복 종합대책’을 체계화한데 이어 농업정책심의회 제도를 발전 정착시키고 농림분야 법령 DB화와 체계적 정비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농정 관련 국제기구를 거치면서 쌓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공사의 해외사업 저변을 크게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세계식량농업기구(FAO) 필리핀 주재대표와 한국협회장을 역임할 당시 베트남과 미얀마 대통령과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이와 같은 해외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덕분에 농어촌공사해외사업 규모가 이사장 취임 전보다 5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금도 그동안의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도상국의 농업정책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서 다양한 네크워크를 맺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글을 기고하거나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언론과 소통에도 적극적인 편이다.

2013년 9월 농어촌공사 사장에 취임한 뒤 ‘스마트워크’를 도입했다. 직원들에게 태블릿PC를 지급하고 전국에 공용 업무공간(10곳)을 만들었다. 시차출퇴근, 원격근무, 근무시간 선택제 등 유연근무제를 정착시키는 데도 일조했다.

◆ 기타

저서로는 ‘최신농업경영학개론’, ‘파워농촌으로 디자인하라’, ‘내 일생 조국의 산·들·바다를 위하여’ 등과 다수의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