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내년에도 그룹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고난의 행군을 할 것으로 보인다.

보유자산과 계열사 매각 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차입금이 많은 데다 주력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을 둘러싼 사업환경도 어렵다.

◆ 두산중공업, 신용등급 하향

29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두산중공업 신용등급이 최근 줄줄이 하향조정됐다.
 
박정원, 두산그룹 '차입금 줄이기' 내년에도 고난의 행군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나이스신용평가는 27일 수시평가에서 두산중공업의 장기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BBB+’로, 단기신용등급을 ‘A2-’에서 ‘A3+’로 내렸다. 

26일 한국신용평가도 수시평가를 실시해 두산중공업의 무보증사채와 기업어음 신용등급을 각각 한 단계씩 하향조정했다.

두 신용평가사 모두 두산중공업의 현금창출 능력이 약화됐을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정책으로 수익구조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신용등급 하향의 배경으로 꼽았다.

두산중공업은 과거 수주부진으로 2012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간매출이 꾸준히 줄었다.

반면 과거 수주했던 공사들이 선수금을 20~30%가량 받은 뒤 나머지 공사대금을 프로젝트 완료시점에 받는 헤비테일 방식이라 채권회수 시점이 늦어지면서 회사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운전자금 부담은 늘어나고 있다.

두산건설 등 재무상황이 좋지 않은 계열사를 지원하는데도 돈을 지출해 3분기 말 기준 순차입금(차입금에서 현금성자산을 뺀 것)이 5조214억 원을 보였다. 지난해 말보다 순차입금이 1조476억 원 늘었다.

정부가 탈원전 탈석탄 에너지정책을 추진하면서 두산중공업의 주력사업인 석탄과 원자력발전소사업이 위축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신용등급 하락은 두산그룹의 지주사 격인 두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류승협 한국기업평가 지주·중공업계열 실장은 “두산이 자체사업에서 실적을 개선하고 있지만 두산중공업 계열사에 대한 잠재적 지원부담이 확대되고 있다”며 두산 신용등급을 ‘A-/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신용평가사들은 두산과 두산엔진, 두산건설의 등급이 앞으로 더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계열사 가운데 두산인프라코어만 중국 굴삭기시장 호황 덕에 안정적 등급전망을 받았다.

박정원, 두산그룹 재무구조 개선 ‘가시밭길’

박정원 회장은 두산그룹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지난해 5월 이후 계열사 매각을 진행하지 않다가 최근 다시 두산밥캣의 포터블파워사업부와 두산엔진 매각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최근 보유하고 있는 두산밥캣 지분 일부를 팔아 자금 1348억 원을 조달하기도 했다.

두산그룹이 계열사를 통해 한 해 벌어들이는 영업이익은 1조 원 안팎이다. 이 가운데 대출이자로 지출되는 비용만 5700억 원가량이다. 벌어들이는 돈의 절반 이상을 금융비용으로 쓰고 있어 사업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박정원 회장은 한 달여 전에 불확실한 미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부채를 줄이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산그룹이 계열사 매각만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두산그룹 전 계열사가 보유한 차입금은 3분기 말 기준으로 11조4147억 원이다. 차입금 감축을 위해서 적어도 조 단위로 대출금을 줄여나가야 하지만 주력계열사를 제외한 다른 계열사 가운데 몸값이 수천억 원 하는 기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미 추진하고 있는 두산엔진 매각도 기대만큼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인수후보들이 선박엔진사업의 전방산업인 조선산업 불황을 이유로 두산그룹이 기대하는 것보다 적은 금액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계속 돈을 빌리는 것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금융권은 두산그룹 계열사 신용등급의 하락을 이유로 계열사에 장기대출보다 이자가 높은 1년 만기의 단기대출로 돈을 빌려주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계열사들이 본업에서 이익을 많이 내는 것이 궁극적 해결책이지만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의 경영환경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며 “두산그룹이 앞으로도 재무구조 때문에 한동안 고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