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선두권 기업인 CATL과 LG에너지솔루션을 추격하는 삼성SDI와 SK온이 각기 다른 전략으로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 

삼성SDI는 내실을 다지며 점진적으로 시장 확대에 나선 반면 SK온은 공격적 증설을 통해 생산능력을 서둘러 확보하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단기적 성과를 놓고 보면 삼성SDI의 전략이 좀 더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선두권 추격’ 삼성SDI와 SK온 엇갈린 실적 흐름, 상반된 경영전략 승자는

▲ 배터리산업에서 선두권 기업을 추격하는 위치에 있는 삼성SDI와 SK온이 각기 다른 전략으로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있는데 현재로는 삼성SDI의 전략이 좀 더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5일 배터리업계와 증권업계의 분석을 종합하면 전방산업인 전기차시장의 성장속도가 둔화하며 2차전지 셀 제조사들의 실적 눈높이도 애초 기대치보다 낮아지고 있다. 

전기차산업이 얼리어답터(초기 구매자)시장에서 대중시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초기 구매자들의 전기차 구매가 일단락되자 올해 들어 전기차 판매 성장률이 점차 둔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게다가 전기차와 관련된 각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이 축소되며 소비자들의 전기차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 최대 자동차시장인 독일은 올해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전년보다 20~30% 축소한 데 이어 앞으로도 보조금 규모를 줄여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영국은 올해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완전히 폐지했다. 

전기차의 수요 감소 징후는 여러 군데서 포착된다. 유럽 최대 전기차 판매업체인 폭스바겐은 독일 전기차 공장에서 휴가일수를 늘리고 직원을 줄여 감산을 진행하고 있다.  

전기차시장의 선행지표인 리튬 가격도 약세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kg당 600위안에 근접했던 리튬 가격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153.50위안으로 크게 하락했다. 

증권업계에서도 이런 전방시장의 업황을 반영해 2차전지 셀·소재업종의 실적 추정치를 점차 낮추는 추세다. 

삼성SDI와 SK온 등 선두권 셀 제조사들을 추격하는 후발주자들도 이런 전방 업황 변동에 따른 영향을 받고 있다. 삼성SDI와 SK온은 글로벌 배터리시장에서 유의미한 점유율을 차지하는 상위권 기업으로 꼽힌다. 

배터리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중국 포함)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점유율(매출 기준)에서 삼성SDI는 5위(7.0%), SK온은 4위(7.7%)로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1위인 중국 CATL(28.5%), 2위 LG에너지솔루션(16.2%)와는 격차가 아직 제법 있다.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점유율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1위, CATL이 2위인만큼 두 회사를 글로벌 배터리시장 선두권 기업으로 본다면 삼성SDI와 SK온은 일본 파나소닉(상반기 시장점유율 4.0%)이나 중국 BYD(상반기 시장점유율 9.3%) 등과 함께 선두권을 추격하는 상위권 내 후발주자로 묶을 수 있다.

서로 비슷한 시장점유율로 선두를 추격하는 위치인 삼성SDI와 SK온의 최근 실적 흐름은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삼성SDI는 전방 시장의 성장 둔화로 배터리업황이 주춤했던 상황에서도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SDI는 올해 2분기 매출 5조8406억 원, 영업이익 4502억 원을 내며 국내 배터리 셀제조사 3사 가운데 유일하게 시장 기대치에 부합하는 성과를 거뒀다. 

3분기에는 삼성SDI도 실적이 기대치를 밑돌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전기차용 배터리에서는 평균판매단가(ASP) 하락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매출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대신증권은 삼성SDI가 3분기에 전기차용 배터리 매출이 직전 분기보다 13% 늘어났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SK온은 아직 영업적자 신세를 모면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중권업계에서는 SK온이 분기 기준 영업이익 흑자를 2분기나 3분기에 조기 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SK온은 2분기에 영업손실 1320억 원을 낸 데 이어 3분기에는 영업손실이 오히려 직전 분기보다 확대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증권은 SK온이 3분기 영업손실 1530억 원을 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배터리업계에서는 두 회사의 영업실적 흐름의 차이가 각기 다른 경영전략을 채택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SK온은 적자를 감내하면서도 공격적 증설 기조를 유지해왔다. 내연기관차가 전기차로 대체되며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 수요가 급증할 것이란 판단 아래 단기적 비용 출혈을 감수하면서 생산능력 확대에 역량을 집중한 것이다. 

특히 SK온은 앞으로 가장 성장세가 가파를 것으로 예상되는 북미에서 증설에 힘써왔다. 

현재 조지아 단독공장을 통해 연산 20GWh 넘는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앞으로 현대차와 합작을 통해 2025년까지 조지아에 연산 35GWh 생산능력을 추가할 계획이 마련돼 있다. 또 포드와 합작해 2025년까지 연산 129GWh 생산능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선두권 추격’ 삼성SDI와 SK온 엇갈린 실적 흐름, 상반된 경영전략 승자는

▲ SK온과 포드의 합작 블루오벌SK 켄터키 1공장. < SK온 >

SK온은 북미 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를 포함한 글로벌 생산능력을 2025년 연산 280GWh로, 2030년 500GWh로 늘린다는 목표도 세워 놓았다.

다만 이런 공격적 증설 기조는 전기차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공장을 가동하지 않더라도 발생하는 고정비가 있는 만큼 수요가 따라주지 않으면 가동률이 낮아지고 고정비 비중은 늘어난다.  

삼성SDI는 이와 달리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증설 기조를 유지하며 수익성 위주의 경영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삼성SDI는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온과 달리 아직 북미에서 배터리 생산을 본격화하지 않았다. 스텔란티스와 합작해 건설하는 공장이 완공되면 2025년부터 북미에서 배터리를 생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장 건설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2025년부터 북미에서 연산 33GWh의 생산능력을 갖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SK온이 2025년에 북미에서 연산 180GWh 이상의 생산능력을 갖출 예정인 것과는 꽤나 큰 차이인 셈이다. 

대신 삼성SDI는 고급형 차종에 탑재되는 배터리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한편 차세대배터리 기술력 강화에 힘쓰는 등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성장에 무게를 둔 전략을 취해왔다. 

실제로 이런 삼성SDI의 전략은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는 상황에서 빛을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지산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SDI는 고급형 전기차 모델 위주로 대응하고 있어 경기 둔화의 영향에서 비켜서 있다”며 “오히려 주요 고객사가 공급량 증대를 요청함에 따라 헝가리 공장 신규라인을 가동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파악했다. 

단기적으로 현재 실적 흐름만 보면 삼성SDI의 전략이 잘 들어맞았다고 볼 수 있지만 배터리업계에서는 장기적 관점으로 보면 누구의 선택이 옳았는지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보는 관측이 많다. 

아직 전기차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큰 만큼 선제적 증설이 효과를 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전기차시장의 수요 둔화 영향으로 배터리 수요 증가세가 주춤한 상태지만 내연기관차가 전기차로 전환되는 것을 기정사실로 본다면 배터리 수요는 결국엔 급증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시장의 전기차 보급률은 12.9%로 아직 확대될 여지가 크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 보급률은 2035년 약 9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배터리사업은 생산시설을 구축했더라도 가동률과 수율을 정상화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기차 수요가 다시 급증하는 시점에 전기차 제조사들이 수요에 대응하려면 이미 생산시설을 갖춘 배터리업체에게 손을 내밀 공산이 크다.

SK온은 북미에 구축한 생산시설들은 가동률과 수율이 어느 정도 정상화 단계에 이른 것으로 파악된다. 전기차 수요가 다시 급증하는 시점에는 삼성SDI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낼 가능성도 큰 것이다.

삼성SDI와 SK온이 출발선부터 달랐던 만큼 경영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시각도 나온다. 

삼성SDI는 전기차용 배터리를 만들기 전부터 삼성전자가 만드는 휴대폰에 배터리를 공급하며 배터리사업 경험을 쌓아왔다. 삼성전자라는 든든한 내부 고객이 있다는 것도 SK온과 다른 점이다.

이와 달리 상대적으로 배터리사업에 늦게 뛰어든 SK온이 앞서 있던 경쟁자들을 따라잡으려면 보다 공격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는 말도 나온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시장도 10위권 밖의 사업자들이 모두 도태되고 결국 소수의 지배적 사업자들만 생존하는 과점체제로 개편될 가능성이 크다”며 “국내 셀 제조사 3사는 배터리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해 놓은 만큼 장기적으로 과점적 지위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