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대통령의 물수능 발언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당장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감사원 감사대상에 올라가면서 이규민 한국교육평가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문재인정부 임명 기관장 '퇴진 공식' 반복, 수능 5개월 남긴 평가원장도 못 피해

▲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물수능 논란으로 사퇴했다. 사진은 이규민 전 한국교츅평가원장이 2022년 11월1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방향을 브리핑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 전 원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감사에 들어가면서 퇴직하거나 사퇴압력을 받는 문재인 정부 임명 공공기관장 전례를 따르게 됐다.

21일 정치권과 교육계 안팎에서는 이규민 전 평가원장의 사퇴 이후 감사원의 평가원 감사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감사를 받는 것은 지난 2011년 이후 12년 만이다. 2011년 감사는 기관운영감사로 당시 감사원은 2008년부터 2011학년도 수능시험까지 출제위원 2명과 검토위원 9명의 자녀가 해당 연도에 수능 시험을 본 것을 밝혀냈다.

이 전 원장은 감사원의 감사가 자신의 거취에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했다.

이 전 원장은 19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평가원이 감사를 받게 돼 기관장으로서 책임져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감사결과를 본 뒤 사퇴할 수도 있었지만 그 때 사퇴하면 수능이 너무 촉박하다”고 사퇴 이유를 설명했다.

이 전 원장 뿐 아니라 윤 대통령의 수능관련 발언이 나온 뒤 교육부 대학입시 담당 국장도 경질됐다. 대통령실은 교육부 대입국장 경질 이유로 윤 대통령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지시한 지침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공교롭게도 이 전 원장과 교육부 대입국장 모두 문재인 정부 인사로 분류된다. 이 전 원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했으며 교육부 대입국장은 유은혜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비서실장을 맡았었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공공기관장 가운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감사가 실시되며 사퇴압력을 받거나 사퇴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여당으로부터 줄곧 사퇴를 요구받아 온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대표적이다. 얼마 전 감사원의 감사수용 여부로 논란이 된 노태악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도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인사다.

외교부가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가 원장으로 있는 세종연구소와 국립 외교연구원에 감사를 실시해 문정인 세종연구원장이 사임하고 홍현익 외교원구원장은 면직처분 되는 일도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대형 공공기관장 가운데 처음으로 사퇴 의사를 밝힌 김현준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도 감사원의 자료제출 요구가 거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전 사장은 임기가 1년8개월 이상 남아있던 2022년 8월 사퇴의사를 밝혔다. 2021년 4월 LH 사장으로 부임한 김 전 사장의 임기는 2024년 4월까지였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인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2년 10월 보도자료를 통해 감사원이 8월2일 SR에 공문을 보내김 전 사장을 포함한 LH 간부 7명의 최근 2년간 승차권 예매내역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요구한 예매내역 기간에는 김 전 사장이 민간인이었던 시절도 포함돼 있었다.    

이에 더해 국토교통부(국토부)는 한국공항공사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윤형중 한국공항공사 사장의 퇴진을 이끌어내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 국토부가 산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감찰 또는 감사를 실시함으로써 사장 사퇴로 이어진 사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김진숙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국토부의 고강도 감찰이 시작되자 사의를 표했고 권형택 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사장도 국토부 감사 중간결과가 나온 뒤 스스로 물러났다. 나희승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은 국토부의 대대적 감사 뒤 올해 3월 해임됐다.

이번 이규민 전 평가원장의 사퇴는 앞서 사퇴했거나 사퇴압력을 받는 다른 공공기관장들 사례와 결이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수능과 관련된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기 전까지 교육부나 감사원의 감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임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과 불협화음이 감사로 이어지고 결국 기관장이 물러나는 모양새가 됐다.

특히 수능을 5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수능 출제를 주관하는 기관장의 사퇴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혼란을 가져다줄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당장 새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을 임명하는 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원장은 19일 사퇴의사를 밝힌 뒤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후임 원장을 선정하는 데 최소 두세 달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장 없이 수능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 전 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난 19일 보도자료에서 “평가원은 수능 출제라는 본연의 업무에 전념해 2024학년도 수능이 안정적으로 시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전 원장은 19일 6월 모의평가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를 출제에서 배제하라는 대통령 지시를 벗어난 문제가 나온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