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선박 발주시장에서 선박과 해양플랜트의 발주 지연이 잇따르고 있다.

하반기로 갈수록 조선업황은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나 현대중공업(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한국 조선3사가 올해 수주목표를 달성할 수준까지 회복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3사, 선박과 해양플랜트 발주지연에 올해 수주목표 달성 안갯속

▲ (왼쪽부터) 남준우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 이성근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


7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선박 발주량이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아직 평년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친다.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는 4월 선박 발주량을 114만 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집계했다. 3월보다 발주량이 28% 늘었다.

그러나 2020년 1~4월 누적 발주량인 382만 CGT는 조선3사 모두 수주목표 달성에 실패했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 줄어든 수치다. 조선업황에 별다른 타격이 없었던 2018년 1~4월과 비교하면 71% 적다.

선박 발주량이 급감한 표면적 이유는 코로나19 확산 탓에 선주들과 조선사들이 대면 미팅을 진행할 수가 없어서다. 때문에 하반기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면 선박 발주가 다시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받는다.

그러나 조선3사가 수주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만큼 의미 있는 수준으로 선박 발주량이 늘어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선박 발주량 감소의 근본적 원인은 글로벌 에너지회사의 자본지출(CAPEX) 집행계획 축소와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물동량 감소이기 때문이다.

◆ 상선 LNG운반선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발주 지연

프랑스 에너지회사 토탈은 앞서 5일 2020년도 자본지출을 10억 달러 삭감했다. 지난 3월 자본지출을 30억 달러 줄인 데 이어 두 번째다.

토탈은 올해 1분기 순이익이 200만 달러에 그쳐 2019년 4분기의 26억5천만 달러보다 99.9% 줄었다. 허리띠를 최대한 졸라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에 토탈이 모잠비크에서 진행하는 가스전 개발계획 1구역(Area1) 프로젝트의 최종 투자결정(FID)을 미룰 가능성이 나온다. 

앞서 3월 미국 에너지회사 엑슨모빌(Exxonmobil)이 자본지출을 100억 달러 줄이며 모잠비크 로부마(Rovuma) 프로젝트의 최종 투자결정을 내년으로 미뤘다. 1구역 프로젝트도 지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토탈은 1구역 프로젝트에 필요한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 17척을 확보하기 위해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각각 확정물량 8척, 옵션물량 1척의 건조의향서(LOI)를 맺어 뒀다.

이 프로젝트의 최종 투자결정이 미뤄진다면 로부마 프로젝트의 14척과 합쳐 모잠비크에서만 LNG운반선 31척의 발주가 미뤄진다.

글로벌 물동량 감소는 컨테이너선 발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달 들어 독일의 컨테이너선 전문 해운사인 하팍로이드(Hapag-Lloyd)는 올해 초에 내놓았던 초대형 컨테이너선 6척의 발주계획을 잠정 중단했다.

하팍로이드와 함께 해운동맹 디얼라이언스(The Aliance)에 소속된 일본 해운사 ONE(Ocean Network Express)도 초대형 컨테이너선 6척의 발주계획을 밝힌 바 있다. 물동량 감소는 글로벌 차원의 변수인 만큼 ONE의 발주계획도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LNG운반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모두 한국 조선3사의 주력 건조선박인 만큼 타격도 조선3사가 글로벌 조선사들 가운데 가장 크게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반기 카타르의 LNG운반선 슬롯 예약이라는 이벤트가 있기는 하다.

이에 앞서 4월 카타르 국영석유회사 카타르페트롤리엄은 중국 후동중화조선과 LNG운반선 확정물량 8척, 옵션물량 8척 분의 슬롯을 예약하는 계약을 맺으며 노스필드 확장(Northfield Expansion) 프로젝트에 필요한 LNG운반선을 확보하기 위해 나서기 시작했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한국 조선사들이 적게 잡아도 40척, 크게 잡으면 80척의 LNG운반선 슬롯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타르 LNG운반선에도 변수는 있다.

슬롯 예약은 최종 투자결정이 내려져야 공식 발주로 이어지는데 에너지시황이 요동치고 있어 이 시점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올해 안에 발주까지 빠르게 이어지더라도 다른 LNG운반선 발주 프로젝트나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계획들이 대체로 밀리는 상황인지라 발주처들끼리의 조선사 슬롯 확보경쟁이 그다지 뜨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조선3사가 선박 건조가격을 높게 받아 수주목표를 효율적으로 채울 여지가 다소 희석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해양플랜트, 설비 발주 지연을 넘어 취소 사례까지

조선3사의 상선 수주잔고 부족분을 채워줘야 할 해양플랜트는 발주시장의 상황이 상선 발주시장보다도 안 좋다.

국제유가가 해양자원 개발계획의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배럴당 40~50달러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투자자들이 실물 인도를 꺼려 배럴당 –37.63달러에 결제일을 맞이했을 만큼 원유 재고가 넘쳐나고 있다. 투자여력이 부족해지는 에너지회사들이 굳이 해양자원까지 찾아 나설 이유가 없다.

현대중공업이 미국 맥더못(McDermott)과 부유식 가스플랫폼 수주전을 벌이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의 미얀마 슈웨3(Shwe3) 프로젝트와 조선3사 모두 반잠수식 플랫폼(Semi-Submersible Platform) 수주를 노리는 셰브론의 호주 잔스아이오(Jansz-Io) 프로젝트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호주 에너지회사 우드사이드가 올해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 2척을 발주하려 했던 브로우즈(Browse) 프로젝트는 최종 투자결정이 내년으로 연기됐다.

대우조선해양이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의 수주를 놓고 싱가포르 셈코프마린과 최종 경합까지 갔던 영국 로즈뱅크(Rosebank) 프로젝트는 발주처인 노르웨이 에퀴노르(Equinor)가 설비 발주계획 자체를 취소했다.

삼성중공업이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를 수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파악되는 나이지리아 봉가사우스웨스트(Bonga Southwest) 프로젝트는 발주처인 네덜란드 에너지회사 로열더치쉘(Royal Dutch Shell, 쉘)이 발주를 계속 미루고 있다.

쉘도 앞서 3월 2020년도 자본지출을 50억 달러(20%) 줄이고 미국 레이크찰스 프로젝트에서 발을 뺐다. 봉가 프로젝트는 설비 발주가 애초 지난해로 예상됐던 만큼 추가로 지연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 1분기 수주 부진했던 조선3사, 하반기를 낙관할 수만은 없어

2020년 1분기 기준으로 조선3사의 합산 수주목표 달성률은 6.1%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조선해양이 157억 달러 가운데 7.9%를, 대우조선해양이 72억 달러 가운데 5.3%를, 삼성중공업이 84억 달러 가운데 3.6%를 채웠다.

토탈과 카타르페트롤리엄이 최종 투자결정을 빠르게 내려 올해 안에 선박을 발주하고 아직 지연이 확정되지 않은 해양플랜트들의 발주가 예정대로 진행되는 등 희망적 예측이 모두 현실화한다면 조선3사의 올해 수주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조선3사 모두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하기 전까지 논의가 진행됐던 수주건들도 있다”며 “선주와 조선소 미팅이 가능해지면 수주로 빠르게 이어가 올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증권업계는 회의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현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와 저유가 등 부정적 요인이 사라지더라도 에너지회사들의 자본지출 삭감이나 물동량 감소 등의 충격이 해소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며 “조선업종은 코로나19가 불러 온 뉴노멀(New Normal)시대에서 빠른 수혜를 볼 수 없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에너지회사들의 투자여력이 회복되고 물동량이 다시 예전 수준으로 돌아오더라도 여전히 변수가 있다고 봤다.

선주사들은 물동량이나 운임 등 지표를 살펴본 뒤 선박 발주와 함께 노후 선박의 폐선을 진행한다.

그런데 글로벌 스크랩(선박을 폐선해 고철로 만드는 것)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이제야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하고 있다.

남아시아는 의료 수준이 동아시아나 유럽 지역에 미치지 못하는 만큼 이 나라들의 코로나19는 진정 국면에 접어드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선박 폐선이 쉽지 않다면 선주사들은 선대의 노후 선박들을 조금 더 운용하는 사업전략을 구상할 수밖에 없다.

김 연구원은 올해 조선3사의 수주목표 달성률을 60~70% 수준으로 내다보고 조선업종의 투자의견을 비중확대(OVERWEIGHT)에서 중립(NEUTRAL)으로 낮췄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