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 '세발자전거' 철학 실종, 부영주택 하자 논란 커져

▲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위기를 가래로도 막기 어렵게 생겼다.

부영주택의 부실시공을 놓고 쏟아지는 불만에 미적지근하게 대응하다 ’하자기업‘이라는 딱지가 붙게 됐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부영을 둘러싼 부실시공 논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른바 ‘부영방지법’ 추진까지 논의되고 있다.

부실시공 문제가 불거진 ‘동탄 에듀밸리 부영사랑으로 아파트’는 3월 입주를 시작한 뒤 5개월 동안 무려 8만 건이 넘는 하자신고기 접수됐다. 

이 아파트의 한 입주민은 5일 주민간담회에서 “지인들에게 어느 아파트로 이사 갔는지 말하기도 힘들다”며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부영주택이 지은 아파트라는 사실을 알면 부실시공을 걱정하는 친인척이나 지인들로보터 전화가 온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35년 간 공들여 키운 부영그룹에 지우기 어려운 낙인이 찍힌 셈이다. 

기업의 잘못을 두고 총수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부영그룹은 특히 그렇다.  부영그룹의 모든 의사결정은 이 회장이 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지주회사인 부영의 지분 93.79%를 보유해 국내 지주회사 123곳 가운데 총수 지분율이 가장 높다. 사실상 이 회장의 개인회사와 다름없다. 이 회장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보고체계가 여러 번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평소 ‘세발자전거론’을 강조한다. 세발자전거는 느리지만 쓰러지지 않듯 기업도 이렇게 안전하게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영주택은 입주날짜를 맞추기 위해 공사를 무리하게 서두르다 탈이 났다. 설계변경 기간 등을 빼고 부영주택이 동탄에듀벨리 아파트에 실제로 들인 공사기간을 계산하면 19개월 가량이다. 비슷한 세대수의 평균 공사기간이 32개월인데 13개월이 빠르다.

부영주택은 공사가 지연돼 약속한 준공날짜가 임박하자 ’돌관공사‘에 들어갔다. 입주날짜를 맞추지 못하면 계약자에게 지체보상금을 지급해야하기 때문이다. 돌관공사는 장비와 인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급박하게 진행되는 만큼 품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보상금을 아끼려다 부실시공을 하게 된 셈인데 하자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도 느슨한 대처로 일을 키웠다. 

채인석 화성시장은 8월 동탄 부영아파트 입주민과 간담회에서 “관행상 입주 초기에 하자문제로 시끄러우면 알아서 잘 하겠거니 믿었는데 이런 회사는 처음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자 때문에 채 시장이 5차례, 남경필 경기지사가 4차례나 현장을 방문했지만 부영은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영주택이 원가절감을 이유로 하자 등을 보수하는 데 부실한 하청업체를 선정했다고 입주민들은 주장하고 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입주민들은 대개 아파트에 하자가 있어도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해 쉬쉬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차근차근 대처했으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느려도 안전한 세발자전거론'과 어울리지 않는 조급한 행보였던 셈이다.

그는 10대 후반, 전남에서 맨손으로 서울에 올라와 20대부터 건설사업에 뛰어들었다. 1983년 부영그룹의 기반을 세우고 임대주택 건설분야에 집중해 재계 16위로 일궈냈다. 

이 회장은 지난해 부영이 10년 후 어떤 회사로 기억됐으면 좋겠느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구조에 하자가 없고 사는 데 불편하지 않은 주택을 짓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