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당신의 노후 계획은 안녕하십니까. 2024년 한국사회는 퇴직연금을 도입한 지 20년차를 맞았다. 하지만 퇴직연금이 퇴직 이후 안정적 삶을 보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퇴직연금'이 되기 위해선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비즈니스포스트는 특별취재팀을 꾸려 퇴직연금 선진국을 찾는다. 우리보다 앞서 제도를 도입한 호주, 일본, 미국의 퇴직연금 장단점을 알아보고 국내 퇴직연금제도가 가야할 방향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 프롤로그 글 싣는 순서
① 여전히 헷갈리는 DB DC IRP, 대한민국 '400조 시장'의 민낯
② 한국 47% 미국 81%, 퇴직연금 성적표가 소득대체율 갈랐다
③ 디폴트옵션 시행 1년, 퇴직연금 상품 여전히 원리금보장형 일색
④ [인터뷰] 강성호 보험연구원 고령화센터장 “퇴직연금 중도 누수 막아야 노후소득 된다”
⑤ [인터뷰] 김경록 미래에셋 고문 “퇴직연금 전문기관 운용 기금형 제도 확대해야”

 
[노후, K퇴직연금을 묻다 프롤로그③] 디폴트옵션 시행 1년, 퇴직연금 상품 여전히 원리금보장형 일색

▲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1년이 되어가지만 원리금보장형 쏠림 현상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올해 7월이면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본격 시행 1주년을 맞지만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라는 목표 달성은 아직 먼 나라 이야기로 평가된다.

여전히 퇴직연금 자산 대부분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되는 것은 물론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쏠림 현상'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금융감독원 퇴직연금비교공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 385조7521억 원 가운데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되는 자금 규모는 327조5345억 원으로 전체의 84.9%에 이른다.

신규 유입 자금 역시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월등히 많았다.

지난 1년 동안 퇴직연금 적립금은 47조4천억 원 가량 늘었는데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31조2천억 원(65.8%), 비보장형 상품이 16조2천억 원(34.2%) 가량을 차지했다.

디폴트옵션을 적용할 수 있는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만 떼놓고 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24년 1분기 DC형과 IRP의 원리금보장형 비중은 74.8%에 이른다. 2023년 1분기보다 3%포인트 낮아졌지만 디폴트옵션 시행 이전인 2022년 1분기와 비교하면 오히려 0.9%포인트 높아졌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이 본격 시행된 지 1년, 도입된 지 2년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원리금보장형 선호 현상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디폴트옵션이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라는 목표 달성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할 사전에 선택해 놓은 방법으로 전문기관이 대신 자산을 운용하는 제도다.

2006년 미국을 시작으로 영국(2012년), 호주(2013년), 일본(2018년) 등이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잇따라 디폴트옵션을 도입했고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제도를 벤치마킹해 2022년 7월 디폴트옵션을 도입했다.

이후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3년 7월 본격 시행했다.

하지만 디폴트옵션 도입 이후에도 DC형과 IRP의 원리금비보장형 투자상품 비중이 지금처럼 늘지 않는다면 제도는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원리금보장형이 대부분이던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 동안 국내 퇴직연금 연평균 수익률은 1.94%에 그쳤다.

퇴직연금 연평균 수익률이 8~10%에 이르는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 저조한 것은 물론 같은 기간 국민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인 7.63%보다도 한참 낮다.

최근 고금리시대를 맞아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평균금리가 3%대로 올라왔다지만 물가상승률만 쫓아가기에도 버거운 수준으로 여겨진다.

디폴트옵션이 퇴직연금 적립금을 투자형 상품으로 유도하지 못한다면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는 셈이다.
 
[노후, K퇴직연금을 묻다 프롤로그③] 디폴트옵션 시행 1년, 퇴직연금 상품 여전히 원리금보장형 일색

▲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포함하고 있는 한국형 디폴트옵션 제도의 한계점이 수익률 제고라는 목표 달성의 걸림돌로 꼽힌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제도적 한계점이 한국형 디폴트옵션의 원리금보장형 쏠림 현상을 해소하기 어려운 이유로 지적된다.

조수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형 디폴트옵션에는 주요 연금 선진국과 달리 원리금보장형이 포함되면서 이쪽으로 쏠림현상이 지속될 것이란 우려가 상당하다”며 “디폴트옵션 상품 미지정 시 자동 투자가 되지 않고 상품 선택이 제한적이라 점도 한계점이다”고 말했다.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포함할지 여부는 제도 도입 초기부터 논란이 됐던 지점이다.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나라 가운데 일본을 제외하면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제공하는 곳은 없다.

일본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디폴트옵션 도입 이후 원리금보장상품 운용 비중이 70% 이상으로 높아 제도 도입 효과가 부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지난 1년 동안 국내에서 디폴트옵션을 선택한 퇴직연금 가입자의 적립금 가운데 89%가 원리금을 보장하는 초저위험 상품으로 향했다.

국내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중인 84.9%보다도 높은 것으로 디폴트옵션을 선택한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오히려 더 보수적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디폴트옵션에 대한 이해도가 여전히 부진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2022년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디폴트옵션에 대한 이해도를 묻는 질문에서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잘 모른다’와 ‘전혀 모른다’고 답한 사람이 68.7%였다.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운용되는 잔액 규모를 보면 디폴트옵션에 대한 이해도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지난해 말 기준 디폴트옵션으로 운용되는 상품 잔액은 12조5520억 원에 그친다. 400조 원에 육박하는 전체 퇴직연금 잔액의 3% 수준에 불과하다. 조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