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물산 합병 관련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검찰이 그룹 경영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부당하게 합병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반도체 불황 속에 실적이 후퇴한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삼성그룹 경영은 불확실성 속에서 다시 얼어붙게 됐다.
17일 9시40분경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에 도착해 차량에서 내린 이회장의 얼굴은 쌀쌀한 날씨만큼이나 굳어 있었다.
지난 3년을 끌어온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관련한 결심공판을 앞두고 표정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내년 초로 예상되는 선고에서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사법 리스크가 끝날 수도, 다시 삼성그룹의 미래 준비가 멈춰설 수도 있어서다.
이 회장은 결심공판에 참석하는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서관에 입장했다.
이날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이 회장에 징역 5년과 벌금 5억 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최종의견에서 “피고인들은 그룹 총수의 승계를 위해 자본시장법의 근간을 훼손했다”며 “피고인 이재용의 사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하고 정보비대칭 상황을 악용해 우리 사회가 마련한 법안을 무력화 하고 우리 경제, 정의, 자본시장의 근간을 해쳤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 회장 측 변호인은 “삼성물산은 합병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건설 상사에서 바이오까지 다각화했으며 외형성장도 이뤘다”며 “여러 기관들과 전문가는 합병에 따른 사업영역 확장이 삼성물산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고 반박했다.
이 회장은 최후진술을 통해 “합병과정에서 개인 이익을 염두에 둔 적 없다”며 “삼성그룹이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병철 회장님이 창업하시고 이건희 회장님이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신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시켜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며 "기라성 같은 글로벌 초강, 초일류 기업과 경쟁, 협업하면서 친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지배구조를 더욱 선진화시키는 경영, 소액 주주분들에 대한 존중, 성숙한 노사관계를 정착시켜야 하는 새로운 사명도 주어져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책무를 다하기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그룹의 경영을 원활하게 이어가기 위해서 사법 리스크 해소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재판부의 선처를 기대하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이번 재판의 수사기록이 약 20만쪽으로 방대한 만큼 2024년 1~2월에 1심판결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위법하게 관여했다는 혐의로 2020년 9월 재판에 넘겨졌다.
삼성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제일모직 주가를 의도적으로 높이고 삼성물산 주가를 낮추는 등 합병과정에 부당한 방식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검찰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주도로 합병과정에서 △거짓 정보 유포 △주요 주주 매수 △시세조종 등 부당 행위가 이뤄짐에 따라 삼성물산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부당합병 관련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 회장은 줄곧 관련 혐의를 부인해왔다.
이 회장 측 변호인은 2021년 4월 열린 첫 재판에서 “합병은 경영상 필요에 따라 합법적으로 진행됐으며 주주들의 이익도 충분히 고려됐다”며 “이 부회장은 합병과정에서 대부분의 사항을 보고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날 열린 이병철 창업회장의 36주기 추도식도 빠지며 결심공판에 참여했지만 검찰의 5년 구형에 고민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핵심 반도체사업은 업황 악화로인해 올해 1분기부터 매분기 조 단위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첨단메모리 기술력이 집약된 HBM(고대역폭메모리)부문에서는 SK하이닉스에 내년까지 3년 연속 1위를 내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 힘주고 있지만 대만 TSMC 추격에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또 스마트폰 사업에서도 애플과 격차를 좁힐 만한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공식 취임 뒤 1년 동안 재판에 출석하는 와중에도 글로벌 경영을 펼치며 삼성전자의 새로운 동력을 찾기 위해 주력했다. 또 계열사 직원은 물론 협력사까지 방문하며 경영에서 개선점을 찾았다.
그 사이 반도체 업황이 개선되면서 내년부터 실적 반등이 기대되는 가운데 이 회장은 시스템반도체뿐 아니라 로봇과 전장 등에서 새 성장동력 찾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달 19일 경기 기흥 삼성전자 차세대 반도체 R&D(연구개발)단지 건설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내외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다시 한 번 반도체 사업이 도약할 수 있는 혁신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바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