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항상 주목받는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WD)의 합병 시계가 다시 한 번 돌아가고 있다. 

이 이야기는 2021년에 처음 나왔다가 중국의 반대로 흐지부지 됐다가 올해 초에도 또 불거졌지만 이후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두 회사의 인수합병이 속도를 내고 있다는 외신의 보도가 나오고 키옥시아가 은행에 18조 원 규모의 대출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관련 논쟁에 불이 붙고 있다.

두 회사가 합쳐지면 단순 합산으로 낸드플래시 시장 1위인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점유율을 갖게 된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삼성전자에게 관심이 쏠릴 상황이지만 이 합병의 영향과 관련해서는 SK하이닉스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SK하이닉스에게 낸드플래시 부문은 계륵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꽤 오랜시간 낸드플래시 부문에서 적자를 봐 왔고, 당시 한쪽에서는 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 부문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그런 이야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입지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인텔의 낸드 부문을 인수하기도 했고, 키옥시아에 막대한 지분투자를 하기도 했다. 확실히 낸드플래시 출구 전략을 짜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낸드플래시 시장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미국 반도체 시장 분석업체인 세미애널리시스는 현재 낸드플래시 시장이 1997년 이후 최악의 수급 불일치 상황을 겪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반대로 2025년까지 버텨낸다면 낸드플래시 시장이 D램 시장을 넘어설 정도로 커지고, 그 때까지 살아남아있는 기업들은 과실을 딸 수 있게 될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다 보니 SK하이닉스가 계속해서 낸드플래시 시장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을 두고, 결국 D램 시장과 같은 과점체제로의 전환을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일단 버텨서 살아남으면 그 과실을 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WD와 키옥시아의 합병은 SK하이닉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일반적으로 강력한 경쟁기업의 등장은 기존 플레이어에게는 악영향이지만, 이 사안에서는 드물게 SK하이닉스에게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방금 말했던 ‘과점체제로 전환’ 때문이다. 경쟁자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낸드플래시 시장의 경쟁 구도가 완화되고 일종의 과점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것이다.

또한 SK하이닉스가 키옥시아에 상당한 수준의 투자를 한 상태이기 때문에 두 회사의 합병으로 키옥시아의 기업가치가 상승하면 SK하이닉스에게 매우 직접적인 투자이익을 가져다 줄 가능성도 높다.

특히 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 부문의 적자를 앞으로 오랜 시간 버텨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이 투자이익은 SK하이닉스에게 상당한 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합병이 SK하이닉스에게 꼭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단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이 부담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보다 조금 더 재미있는 지점도 있다. 바로 SK하이닉스의 태도다.

SK하이닉스는 지금 낸드플래시를 포기할 생각보다는 오히려 기술력을 통해 역전 드라마를 쓰려고 준비하고 있다.

지난 영상에서도 언급했지만 SK하이닉스는 최근 312단 4D낸드를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등 기술력 측면에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이 기술력을 통해 SK하이닉스의 약점 가운데 하나였던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단숨에 두각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다.

만약 두 회사가 합병해 시장이 바라는 대로 위기가 없어지고 평화로운 과점체제가 형성된다면, SK하이닉스로서는 오히려 이 판을 뒤흔들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언제나 후발 주자의 역전극은 판이 흔들리고 있을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물론 두 회사가 합병이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현재 WD-키옥시아 합병은 너무나도 걸림돌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중국의 견제다. 일본의 반도체기업과 미국의 반도체기업이 합병해 세계 1위의 반도체 기업이 되는 것을 중국이 좋아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2021년 진행됐던 인수전에서도 중국의 반대가 심했던 것으로 알려져있고, 그 외에도 반도체 업계에서 중국이 미국 기업의 인수합병을 견제했던 사례는 굉장히 많다.

가장 대표적으로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일본의 반도체기업 고쿠사이일렉트로닉스의 합병, 그리고 퀄컴의 네덜란드 NXP 합병이 있다. 이 두 거래 모두 중국의 M&A 심사 지연이 인수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히 투자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기술력을 더욱 강화하고 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WD와 키옥시아의 합병이 성공할 경우, 이에 대한 대응 전략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SK하이닉스에게 낸드플래시 시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텔의 낸드 부문을 인수하면서 이미 발을 너무 많이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과연 앞으로 낸드플래시 시장의 향방은 어느 쪽으로 흐르게 될지, 그리고 그 속에서 SK하이닉스는 어떤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