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도체 장비 절반은 중국으로 향한다, 구형 반도체 '덤핑' 추진 가능성

▲ 중국이 일본 등에서 수입하는 반도체 장비 물량을 크게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SMIC 반도체 생산공장 내부 사진.

[비즈니스포스트] 중국이 1분기에 일본에서 수출한 반도체 장비 물량의 절반 이상을 사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수입량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미국과 일본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만큼 중국이 선제적으로 대량의 장비를 사들여 자체 공급망 구축을 위한 시간을 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닛케이아시아는 12일 일본의 무역 데이터를 분석해 올해 1분기까지 3개 분기 연속으로 반도체 장비 수출량의 50% 이상이 중국에 공급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보도했다.

1분기 일본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은 5212억 엔(약 4조6천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82% 늘어난 수치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14나노 이하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에 활용되는 장비의 중국 판매에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의무화하며 사실상의 수출규제 조치를 도입했다.

중국 기업들이 일본의 규제 시행 뒤부터 본격적으로 반도체 장비 주문 물량을 크게 늘린 셈이다.

닛케이아시아는 중국이 일본에 이어 네덜란드에서도 장비 수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며 재고 축적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일본과 네덜란드를 향해 대중국 반도체 규제 강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만큼 장비를 확보하기 더 어려워질 가능성에 선제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궁극적으로 반도체 장비를 비롯한 주요 공급망에서 자국 기업의 기술과 생산 능력을 활용해 완전한 자급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러나 기술적 한계 등을 고려하면 이를 실현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어 대량의 장비 재고를 미리 축적해 시간을 벌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다만 SMBC닛코증권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도 중국의 반도체 장비 수입물량 급증을 완벽히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을 전했다.

이에 따라 중국 기업들이 고성능 반도체 대신 구형 반도체 생산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하면서 일시적으로 장비 구매를 큰 폭으로 늘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공격적인 생산 투자로 구형 반도체 공급 물량을 대폭 확대하는 전략을 쓸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중국 정부는 최근 자국 내 배터리와 전기차, 태양광 제품 제조사의 투자를 지원해 저가에 수출을 확대하도록 유도하는 덤핑 전략에 힘을 싣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구형 반도체 분야로 이어지며 전 세계 반도체 업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중국은 일본에서 반도체에 이어 디스플레이 제조 장비 수입도 크게 늘린 것으로 집계됐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