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지원법 대상 선정에 잡음, '이해충돌·정치적 편향' 논란 거세져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2022년 8월9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반도체 및 과학' 법안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부의 반도체법 수혜 대상기업 선정 과정을 두고 직접적인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과 ‘밀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금융권 관련 인사들을 참여시켜 이해충돌 문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법은 시행 초기부터 삼성전자를 비롯한 여러 기업들에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한다고 논란이 됐는데 이번 문제제기를 계기로 비판의 목소리가 다시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0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프라밀라 자야팔 하원의원 등 민주당 의원 2명이 반도체법(CHIPS Act) 시행과 관련한 우려 사항을 서한에 담아 전날인 9일 상무부에 전달했다. 

반도체법의 주무 부처인 상무부가 반도체법에 근거해 보조금의 대상과 규모를 정하는 과정에 월스트리트 금융사들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을 배치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자산운용사 블랙스톤의 전직 직원들이 보조금 대상 기업을 선정하는 위원회에 포함돼 이해충돌 문제가 제기됐다. 

자신이 몸 담았던 금융사가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게끔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업들의 영입 약속을 받고 보조금 기준을 충족했다고 평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한을 보낸 엘리자베스 워런 미 연방 상원의원은 뉴욕타임스를 통해 “해당 직원들은 자신의 전직 또는 미래 고용주에게 과도한 이익을 안겨다 줄 권한을 갖게 됐다”며 “이번 상무부의 결정은 심각한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법을 둘러싼 윤리 문제가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상무부가 의회를 통과한 법안 시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에 제시했던 보조금 선정 기준에 바이든 정부의 정치적 편향성이 들어갔다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미국 반도체 지원법 대상 선정에 잡음, '이해충돌·정치적 편향' 논란 거세져

▲ 2024년 1월2일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건설 현장. <삼성전자>

반도체법은 미국 내에 제조 설비를 늘리겠다는 목적으로 제정된 법안이다. 

그러나 반도체 기업이 보조금을 신청하려면 생산 공장에 보육시설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법안이 추구하는 목적과 다른 세부 사항들이 문제됐다.  

세부 사항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세금으로 보조금을 제공하면서 집권 여당에 유리한 여론을 끌어온다는 비판이 인 적이 있다. 

이 세부 사항들은 현재도 삭제되지 않은 채 보조금 대상 기업을 선정하는 기준으로 쓰이는 것으로 파악된다. 바이든 정부가 비판에도 불구하고 법안 시행을 밀어붙인 셈이다.

미국 상무부는 2023년 12월 마침내 첫 지원 대상 기업을 선정했다. 전투기용 반도체를 만드는 미국 제조사인 BAE시스템스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로이터의 2023년 12월11일자 보도를 통해 “2024년 상반기에 더 많은 보조금 대상 기업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에 반도체 생산 설비를 건설하는 기업들에 책정된 보조금 규모는 390억 달러(약 51조2567억 원)다. 

러몬도 장관이 언급한 후보군으로 미국에 대규모 첨단 반도체 생산라인을 건설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TSMC 그리고 인텔 등이 거론된다.

이런 상황에서 선정 기준과 위원회 구성원을 두고 정치권을 시작으로 잡음이 이어지면서 어떤 기업이 다음에 보조금을 받을지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업체들로선 보조금을 받는 시기와 규모를 확인하기 어려워지면 공장 가동 계획을 추진하는 데에 불확실성이 높아진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모두 170억 달러(약 22조3300억 원)를 들여 4나노(㎚) 공정 생산 설비를 짓고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의 보조금 문제 등으로 2024년 연말로 예정됐던 반도체 양산 일정을 2025년으로 미루는 것 아니냐는 추측성 보도들이 국내외 언론들에서 나왔었다.

이에 삼성전자는 2024년에 첫 반도체를 출하한다는 기존 계획에 변동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상무부는 반도체법 관련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윤리를 최우선 사항으로 삼았으며 잠재적인 이해충돌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