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수익성 줄어도 '치킨게임' 의지, 현대차 미국 전기차 사업 '이중고'

▲ 국내에서 전기차를 주로 만드는 현대차그룹은 북미 생산을 전제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올해 1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량이 줄었다. 현대차그룹은 내년 미국 전기차 현지 생산공장 구축 이전까지 더욱 험난한 경쟁을 펼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공격적 가격인하를 단행해 온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1분기 수익성이 후퇴했음에도 가격을 내릴 수 있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국내에서 전기차를 주로 만드는 현대차그룹은 북미 생산을 전제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올해 1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량이 줄었는데 내년 미국 전기차 현지 생산공장 구축 이전까지 더욱 험난한 경쟁을 펼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21일 미국 자동차 정보업체 켈리블루북(KBB) 통계를 종합하면 현대차그룹은 올해 1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 상위권 브랜드 가운데 유일하게 판매량이 2022년 1분기와 비교해 뒷걸음쳤다.

1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량 순위를 살펴보면 전체 전기차 판매량이 1년 전보다 44.9% 증가한 25만8885대를 기록한 가운데 테슬라가 같은 기간 24.6% 증가한 16만1630대(점유율 62.4%)의 전기차를 판매해 압도적 1위에 올랐다.

그 뒤를 2위 GM은 2만668대(7.98%), 3위 현대차그룹 1만4346대(5.54%), 4위 폭스바겐 1만4196대(5.48%, 아우디 포함), 5위 포드1만866대(4.2%) 등이 이었다.

1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 톱5에 든 완성차업체들은 현대차그룹을 제외하고 모두 지난해 1분기보다 판매량을 늘렸다. 테슬라는 24.6%, 폭스바겐은 136%, 포드는 41%가 증가했고 배터리 화재 관련 리콜로 지난해 4월까지 쉐보레 볼트EV 생산을 중단했던 GM은 판매량이 60배 가까이 늘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1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량이 1년 전보다 25.7% 줄었다.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약 990만 원)의 보조금(세액공제)를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지난해 8월 시행되면서 대부분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들이 모두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17일(현지시각) 미국 정부가 자동차 자체의 북미 조립 요건뿐 아니라 배터리 부품 및 핵심 광물 제조·가공 요건을 추가하는 세부지침을 발표하면서 폭스바겐의 전기차 라인업도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19일(현지시각) 미국 재무부는 폭스바겐(아우디 제외)이 현재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유일한 전기차인 ID.4가 배터리 및 광물요건을 모두 충족한 것으로 판단해 보조금 지급 대상에 다시 포함시켰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전기차 판매 경쟁을 펼치고 있는 톱5 브랜드 가운데 홀로 IRA에 따른 구매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테슬라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전기차 가격을 추가로 인하하겠다는 태도를 보여 미국에서 보조금 없이 전기차 판매 경쟁을 벌여야 하는 현대차그룹은 테슬라발 치킨게임(가격 인하 경쟁)에도 대응해야 하는 험난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테슬라는 올해 초부터 전기차 판매 부진에 따른 점유율 방어를 위해 6차례나 가격인하를 단행했다. 이에 19일(현지시각) 테슬라는 수익성이 크게 후퇴한 1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올해 1분기 테슬라는 매출 233억2900만 달러를 올려 2022년 1분기보다 24% 증가했지만, 순이익은 25억1300만 달러로 같은 기간 24% 줄었다. 이에 영업이익률 역시 같은 기간 19.2%에서 11.4%로 8%포인트가량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머스크 테슬라 CEO는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낮은 마진으로 차 판매량을 늘리고 (가격)자율성을 갖춘 미래에 그 마진을 거두는 것이 낫다"며 "경제 불확실성 여전하지만 테슬라는 차량 주문이 생산량을 넘어선다"고 말했다.

높은 수요를 바탕으로 가격 인하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미국에서 조지아주 전기차전용공장 준공 시점을 기존 2025년에서 내년으로 앞당기는데 그룹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IRA 보조금 제외 요건을 적용받지 않는 리스 등 상업용 판매 비중을 기존 한자릿수에서 30% 이상으로 크게 늘려 최대한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늘리는 단기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해도 여전히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판매하는 전기차의 3분의 2가량이 1천만 원에 가까운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테슬라가 추가적 가격인하를 단행한다면 현대차그룹은 상대적으로 판매에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머스크의 말처럼 테슬라가 앞으로도 과감한 가격 인하에 나설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머스크 CEO가 추가적 가격인하 가능성을 내비친 다음날인 20일(현지시각) 테슬라 주가는 10% 가까이 하락했다.

전기차만 생산하는 테슬라는 선제적 제조 혁신으로 생산 단가를 낮춰 기존 완성차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없이 가격을 인하할 수 있는 마진을 확보했다. 반면 테슬라는 다른 글로벌 완성차업체들과 달리 이익을 낼 수 있는 '내연기관차'라는 다른 주머니가 없다.

테슬라는 지난해 131만 대의 생산량을 2030년까지 2천만 대로 늘리겠다는 공격적 목표를 세우고 글로벌 곳곳에서 설비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전기차 판매 수익성이 후퇴하고 기업가치가 하락하면 테슬라는 투자금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테슬라는 주가가 하락한 20일 모델S와 모델Y 가격을 각각 2.6%, 2.9% 높여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월가를 비롯한 투자자들 사이에서 테슬라의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지자 이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이 올해를 버티고 연산 30만 대 규모의 조지아주 전용전기차 공장 건설을 내년에 완료하면 IRA 보조금 지급 요건을 갖추는 동시에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며 가격경쟁에도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올해 전기차 가격인하 경쟁뿐 아니라 곧 현실화할 저가전기차 모델 출시로 인한 새로운 경쟁 구도에도 대책을 마련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자동차업계에서는 테슬라가 시작가격이 3만 달러를 넘지 않는 저가 전기차 '모델2'를 내년부터 멕시코 몬테레이 공장에서 양산에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폭스바겐도 지난달 독일 함부르크에서 소형 전기 해치백 전기차 ID.2 콘셉트카를 최초 공개했다. 판매가격은 2만5천 유로(약 3600만 원) 이하로 2025년 출시가 예상된다.

현대차 미국법인 관계자는 CNBC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현대차는 저가형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 아직은 없다"며 "현재로서는 어느 정도의 주행거리를 확보하면서도 2만5천 달러 수준 가격의 전기차를 생산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