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미국 반도체 지원 조건에 난감, 현지 투자 재검토 불가피

▲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금 지급 조건이 국내 기업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제시되면서 삼성전자가 미국 투자전략을 재검토할 필요성이 커졌다. 사진은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겸 대표이사 사장(왼쪽)이 새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 텍사스주의 빌 그라벨 윌리엄슨카운티장과 ‘삼성 고속도로’ 표지판을 들고 기념촬영하는 모습. <경계현 사장 인스타그램 갈무리>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가 반도체기업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지원금 지급 조건을 발표하면서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가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투자 계획의 재검토가 불가피해 보인다.

삼성전자는 미국 정부와 최대한 협상을 해나가며 지원금 조건과 관련한 세부 내용을 조율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미국에 투자를 확대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리스크가 크다면 당초 계획보다 투자 규모를 축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지원금을 받는 반도체 기업의 수익과 현금흐름이 전망치를 초과하는 경우 이를 일부 반납해야 하는 조건을 내걸면서 국내 기업에게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어 보인다.

미국 상무부는 2월28일 “1억5천만 달러(약 2천억 원) 이상의 반도체 지원금을 받는 기업은 초과 수익의 일부를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며 “다만 공유분은 지원금의 75%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총설비투자액의 5~15% 수준을 지원금으로 지급한다. 삼성전자가 테일러 반도체공장 신설에 모두 170억 달러(22조5천억 원)를 투자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최대 25억5천만 달러(약 3조4천억 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삼성전자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당초 전망치를 초과한다면 최대 25억5천만 달러의 75%인 19억1천만 달러(약 2조5천억 원)를 미국 정부에 되돌려 줘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초과이익 공유와 관련된 세부적인 내용은 3월에 다시 공개되지만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삼성전자의 미국공장은 수익성 측면에서 계속해서 문제가 제기돼왔다. 

삼성전자의 경쟁사인 대만 TSMC는 2022년 4분기 실적발표해서 공식적으로 미국의 공장 건설비가 대만에서 짓는 것보다 최소 4배는 더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인건비, 허가 비용, 산업 안전 및 보건 규정 비용, 인플레이션을 비롯해 노하우 학습비용까지 고려하면 이보다 더 차이가 날 가능성이 크다.

TSMC 창업자인 모리스 창은 2022년 “미국에서 반도체를 제조하려면 대만보다 비용이 50% 더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투자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TSMC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게다가 삼성전자와 TSMC는 미국에서 반도체 인력 확보도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미국은 기업 수요와 비교해 반도체 전문 인력이 현저히 부족하다. 미국 대학교 졸업생들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대형 IT기업 취업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어서 제조업인 반도체기업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콧 케네디 미국 국제문제연구소(CSIS) 수석고문은 CNN과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10개의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직원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본이 아니라 인력이 미국의 반도체 제조설비 확대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 미국 반도체 지원 조건에 난감, 현지 투자 재검토 불가피

▲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법인 건물.

게다가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반도체 지원금을 받는다면 향후 10년 동안 중국 투자는 금지된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출하량의 약 40%를 생산하고 있는데 만약 추가 투자가 불가능해 첨단공정으로 전환할 시기를 놓치면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미국에서 얻을 수 있는 득보다 실이 훨씬 더 커질 수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2012년 이후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에 투자한 금액은 258억 달러(약 33조 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전략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관측한다.

삼성전자는 2034년까지 텍사스주에 모두 11곳의 반도체공장을 추가로 완공하겠다는 중장기 목표를 세우고 있다. 투자 금액은 1921억 달러(약 252조 원)로 현재 짓고 있는 텍사스주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 투자의 10배에 이른다.

이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뿐만 아니라 주력 분야인 메모리반도체도 일부 미국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 공장의 수익성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초과이익 공유제와 중국 투자 제한까지 받게 된다면 설비투자의 15% 정도인 보조금을 받기 위해 미국에서 투자를 더 확대하는 것은 부담이 클 수 있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인도, 유럽 등 다양한 지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생산비용과 인건비 등 측면을 비교하면 모두 미국보다 조건이 좋다. 베트남과 인도, 유럽은 파격적인 지원책을 앞세워 반도체기업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미 대만에서는 미국의 불합리한 반도체 지원 조건이 나오자 TSMC가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투자 계획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국내 반도체기업의 미국 투자가 성공적인 투자로 귀결된다 하더라도 초과 수익을 상당부분 반납해야 하는 실효성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며 “삼성전자는 이제 재정 지원금 기준까지 고려해 다각도로 투자 계획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