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지원법 본격 시행, 한국과 대만 따라잡기는 '역부족' 평가

▲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 시행이 제한된 효과를 거두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이 2023년 초 상무부 심사를 거쳐 본격적 시행을 앞두고 있다. 미국에 반도체공장 및 연구개발센터를 건설하는 여러 기업이 수혜를 보게 된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을 목표로 막대한 예산을 들여도 삼성전자와 TSMC를 각각 보유하고 있는 한국과 대만의 경쟁력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2일 “미국 정부가 반도체에 큰 돈을 쏟아붓고 있다”며 “하지만 이를 통한 대규모 투자 유치는 반도체산업 부흥에 ‘결정적 한 방’이 되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정부는 2022년 미국 의회 동의를 거친 반도체 지원법으로 최소 760억 달러(약 96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지원금 및 세제혜택을 반도체기업에 제공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이뤄낸 투자 유치 규모는 2천억 달러에 이른다. 인텔과 마이크론은 각각 200억 달러, 대만 TSMC는 400억 달러,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의 미국 내 투자 계획을 수립했다.

미국 정부 지원을 기대한 반도체기업들이 잇따라 현지에 반도체공장 및 연구개발센터 투자에 나서면서 반도체 지원법이 성공적 결실을 맺고 있는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상황이 과거 냉전시대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벌어진 우주항공 분야 전쟁을 연상하게 한다고 바라봤다.

당시 군사기술에 핵심으로 꼽히던 로켓 등 우주항공 기술을 두고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막대한 정부 예산을 들이며 신경전을 벌였던 일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 시행에 담긴 중요한 목적은 중국과 반도체 기술 경쟁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는 데 있다.

반도체가 IT기기와 자동차, 인공지능 등 첨단 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점점 높이고 있는 데다 과거 우주항공 기술과 마찬가지로 군사무기 발전에 핵심 요소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은 장기간 대만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를 비롯한 해외 기업에 반도체 수급을 의존해 왔다. 이에 따라 미국의 반도체 국가 경쟁력도 자연히 크게 낮아졌다.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은 이런 상황을 단기간에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반도체기업들의 생산공장 투자 및 연구개발 역량 강화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올해 초까지 심사를 거쳐 지원 대상 기업을 선정하고 개별 반도체기업이 얼마나 많은 지원금과 세제혜택을 받게 될 지 결정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인텔과 마이크론, TSMC와 삼성전자 등 이미 반도체 지원법에 수혜를 기대하고 투자를 벌이고 있던 기업들이 정부 지원에 힘입어 현지 생산 및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며 바이든 정부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2023년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반도체 지원법이 세계 산업 지형도를 바꿔낼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통해 반도체기업을 지원해도 공격적 투자만으로 단기간에 미국의 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 및 대만과 같은 주요 반도체 수출국의 이해관계와 이미 세계시장에서 확보하고 있는 시장 지배력, 기술인력 수급 등 문제가 배경으로 지목된다.

TSMC는 최근 미국에 반도체공장 투자 규모를 기존 계획보다 크게 늘리겠다는 발표를 내놓았지만 반도체 핵심 기술은 대만에 남겨두겠다는 분명한 태도를 보였다.

최신 공정기술을 활용하는 반도체 생산라인 및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센터를 모두 미국이 아닌 대만에 설립해 기술과 인력 유출 가능성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반도체 지원법 본격 시행, 한국과 대만 따라잡기는 '역부족' 평가

▲ 미국 인텔이 오하이오주에 설립하는 반도체공장 예상 조감도.

뉴욕타임스는 삼성전자 역시 미국에 설립하는 대규모 파운드리공장에 어떤 공정기술을 활용할 지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도 대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고 바라봤다.

한국과 대만이 세계시장에서 정치적 및 경제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반도체산업에서 국가 경쟁력을 지켜내는 일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미국에 기술 주도권을 내주기는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에 현재 건설중인 여러 반도체기업의 공장이 모두 가동을 시작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생산 점유율은 여전히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약점으로 지목됐다.

삼성전자와 TSMC 등 기업이 세계 메모리반도체 및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시장에서 각각 절반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미국 공장 설립이 큰 변화를 이끌 가능성은 낮다.

미국의 기술인력 부족 상황도 중요한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반도체 지원법이 미국에 이와 관련한 27만7천 명 가량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바라봤다.

그러나 반도체기업들이 미국에서 수 년 안에 공장 가동에 필요한 대규모 기술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미 지금도 첨단기술 분야 인력 부족 사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결국 반도체기업들이 미국에서 인력 쟁탈전을 벌이는 상황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예상하며 해외 이민 등으로 인력을 충원하는 일도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결국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 시행은 중국과 경쟁에 어느 정도 이점으로 작용하겠지만 미국의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 및 기술 리더십 강화라는 목표에 기여하기는 분명한 한계가 남게 될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반도체 지원법이 세계 반도체시장의 불균형을 맞추는 데 기여하는 범위는 아주 소폭에 불과할 수 있다”며 “더구나 정부 지원이 충분하지 않다면 반도체기업들의 투자 계획이 취소되거나 미뤄질 수도 있어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