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와이너리 대표들이 롯데마트에 간 이유? '보틀벙커' 이영은의 힘

▲ 프랑스 보르도 지방을 대표하는 와이너리 7곳의 대표들이 한국 롯데마트의 와인 전문점 보틀벙커를 찾은 데에는 이영은 보틀벙커팀장의 역할이 컸다. 사진은 이영은 팀장(가운데)이 2019년 5월16일 프랑스 보르도에서 2년마다 개최되는 세계 최대 와인 엑스포(‘VINEXPO)에서 진행 기사 수여식에서 꼬망드리 작위를 받는 모습. <롯데쇼핑>

[비즈니스포스트] 와인 종주국을 자처하는 프랑스에서도 보르도는 특별한 곳이다.

보르도는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과거부터 따뜻하고 온화한 해양성 기후 덕에 1세기 무렵부터 와인의 원료인 포도를 생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관광청에 따르면 보르도에서 원산지통제명칭(AOC)의 보호를 받는 와인만 모두 60개나 된다. 보르도 주민 7천여 명이 포도 재배에 종사하고 있다. 괜히 세계 최대의 고급와인 생산지로 꼽히는 것이 아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와이너리(와인 양조장) 7곳의 대표들이 23일 한국 롯데마트를 방문했다. 와이너리 대표들이 롯데마트를 방문한 이유는 다름 아닌 이영은 보틀벙커팀장 덕분이다.

24일 롯데마트에 따르면 23일 서울 잠실에 있는 롯데마트 제타플렉스점의 와인 전문점 보틀벙커에 ‘보르도 그랑크뤼 연합’ 소속 7개 와이너리 대표들이 모였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보르도 그랑크뤼 연합이 국내에서 2004년부터 해마다 진행하고 있는 시음회를 열기에 앞서 일반 고객들과 만나기 위해서다. 

보르도 그랑크뤼 연합은 1973년 설립된 단체로 프랑스 와인의 우수성과 프리미엄 등급 와인 ‘그랑크뤼’의 품질을 알리기 위해 매년 유럽과 북미, 아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시음회를 진행한다.

올해는 한국 와인 시장이 계속 성장하는 것을 보고 한국의 와인 애호가들을 직접 만나보기 위한 장소로 보틀벙커를 선택했다는 것이 롯데마트의 설명이다.

롯데마트는 “일반 고객들과 소통하기 위한 최접점 장소로 한국의 주류 유행을 선도하면서 와인 애호가들의 명소이자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은 보틀벙커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실 와이너리 대표들이 보틀벙커를 선택하기까지 이영은 보틀벙커팀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이 팀장은 2019년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와인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꼬망드리’라는 와인 기사 작위를 받은 바 있다. 이 작위는 프랑스의 3대 와인 기사 작위 가운데 하나로 1949년부터 매년 보르도 지역 와인 발전에 기여한 40명에게 수여된다.

이 팀장의 꼬망드리 기사 작위 수여가 특별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보통 꼬망드리 와인 기사 작위는 프랑스 와인 중개상을 뜻하는 ‘네고시앙’이 추천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팀장은 이례적으로 와이너리 ‘바롱 필립 드 로췰드(이하 바롱 필립)’가 직접 추천해 작위를 받았다는 점에서 다른 기사 작위 수여자들과 차별점을 지닌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도 유명하고 인지도가 높은 와이너리가 직접 이 팀장의 기사 작위 추천서를 써줬다는 점에서 남들과 비교해 수상의 무게가 다르다.

과거 이 팀장이 한 매체와 인터뷰하며 밝힌 내용을 보면 그는 바롱 필립을 직접 곤란하게 만든 경험이 있다.

바롱 필립은 칸 영화제의 공식 와인으로 선정된 바 있는 ‘샤또 무똥 로췰드’를 생산하는 유명 와이너리다. 바롱 필립이 생산하는 무똥카네라는 와인 역시 ‘칸의 와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바롱 필립이 생산하는 와인은 대부분 고급 제품이라 대중들이 친숙하게 접하기 어렵다. 1병 가격이 100만 원을 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팀장은 바롱 필립의 ‘까데독’이라는 와인을 1병에 1만 원대 중반대의 가격에 판매하고 싶어 해당 와이너리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바롱 필립으로서는 이 팀장의 제안이 다소 당황스러웠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팀장은 롯데마트가 남기는 이윤을 낮춰서라도 단독으로 까데독을 수입하고 싶다고 설득했고 그렇게 2014년 국내에 첫선을 보이는 데 성공했다.

이런 노력이 2019년 이 팀장이 꼬망드리를 받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셈이다.

롯데마트는 당시 “이영은 주류총괄 상품기획자(MD)가 ‘바롱 필립’ 와이너리의 대표 상품인 ‘무똥까떼 레드’와 ‘까데독’ 등을 연간 3만 병가량 판매하는 등 보르도 지방의 와인 대중화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 팀장이 대형마트 소속 상품기획자로 꼬망드리를 받은 최초의 인물은 아니다. 이 팀장이 작위를 수여받기 한참 전인 2012년에 이미 신근중 이마트 현 와인수입 총괄담당이 꼬망드리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꼬망드리를 받았다는 점만으로도 의미는 적지 않다. 통상 와인 기사 작위를 받게 되면 와인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게 되며 와인업계에서는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도 맡는다.

이런 경험은 롯데마트가 W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와인 전문점 보틀벙커를 만들기 위해 태스크포스를 꾸렸을 때 이 팀장에게 핵심 역할을 맡긴 명분이 됐다. 이 팀장은 실제로 롯데마트 주류팀장으로만 10년 넘게 일했다.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와인 전문가였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이 팀장은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2006년 공채를 통해 롯데그룹에 입사했다. 롯데마트에 배치된 뒤 2008년 상품기획자를 맡아 라면과 통조림 등 인스턴트 제품을 기획했다.

이 팀장이 주류를 처음 접한 시기는 2009년이다. 그가 처음 담당한 것은 와인과 전통주였다.

이 팀장은 주류 담당 상품기획자로 이동한 배경과 관련해 비즈니스포스트와 서면 인터뷰에서 "(롯데마트가) 와인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카테고리 활성화 목적으로 MD 발굴이 필요했으며 섬세하고 꼼꼼하게 업무를 처리하던 저의 강점이 와인 카테고리의 활성화에 잘 어울릴 것으로 판단하여 이동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주류 담당으로 배치받았을 시기는 와인보다는 막걸리가 잘 팔리던 때였다. 이 팀장은 이런 흐름에 따라 직접 막걸리 양조장을 찾아다니며 상품 공급을 요청하고 다양한 단독 상품을 개발해 이슈화하기도 했다.

이 팀장은 "이후 주류 카테고리의 CMD(총괄MD)를 담당하게 되어 수입맥주까지 상품을 개발해 전 세계의 다양한 상품 발굴뿐만 아니라 국내 최초 트라피스트 맥주 도입 및 미국 크래프트비어 수입을 통해 구색을 강화한 경험을 했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와인 전문가가 되기 위해 1년 동안 교육을 받기도 했다.

그는 2010년 와인전문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국내에 도입된 와인 전문 교육기관을 직접 찾아 주 2회, 3시간씩 3개월 동안 진행된 교육을 2번이나 받았다.

퇴근 후에 진행되는 고단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적극적 지원 덕분에 이 팀장은 1년 만에 1~3단계로 이뤄진 교육을 모두 이수해 2012년 영국 교육기관이 발급하는 와인전문가 자격증 WSET를 전부 땄다.

이 팀장의 와인에 대한 학구열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올해 7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현재) 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며 “와인을 잘 알면 알수록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부하고 있는 듯 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와인 전문가로 성장하고 인정받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팀장의 꿈은 와인을 대중들에게 좀 더 쉬운 주류로 다가가게 하는 것이다. 그는 기사 작위를 받았을 당시 한 인터뷰에서 “나는 긴 교육을 거쳐 와인의 세계에 입문했지만 소비자들은 그럴 시간과 여력이 없을 것이다”며 “그런 소비자들도 와인에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게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대형마트 최초로 '페트병에 담긴 와인'을 들여온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팀장이 주류 담당 MD로 일하던 2012년 롯데마트는 1.5리터짜리 페트병 와인을 선보였다. 와인은 병에 들어 있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편리함을 강조한 와인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롯데마트가 준비한 물량은 1만2천 페트로 최소 3개월 이상 판매할 계획이었지만 소비자 반응이 뜨거워 보름 만에 완판됐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