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제약바이오기업이 개발한 의약품을 시장에 판매하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 있다. 바로 의약품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다.

간단한 일처럼 보이지만 각국 규제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마케팅에 도움 되는 이름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셀트리온, SK바이오팜 등 해외 진출이 활발한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은 경쟁력 있는 브랜드를 마련하기 위해 전문업체와 협업하고 있다.
 
브랜드인스티튜트는 글로벌 최고 작명소? 삼성 SK 셀트리온도 고객사

▲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의약품 성분명 및 브랜드를 짓기 위해 전문업체 브랜드인스티튜트와 협업하고 있다.


20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브랜드 전문업체 브랜드인스티튜트는 최근 셀트리온헬스케어와 바이오시밀러(생체의약품) 브랜드 베그젤마(VEGZELMA)를 만드는 데 협력했다.

셀트리온이 개발한 베그젤마는 로슈 항암제 베바시주맙의 바이오시밀러다. 하반기 들어 미국과 유럽, 한국, 일본 등 주요 시장에서 허가를 획득해 출시를 앞두고 있다.

브랜드인스티튜트가 보유한 협업 사례를 살펴보면 베그젤마는 빙산의 일각이다.

브랜드인스티튜트는 현재까지 글로벌 헬스케어 고객사 1200여 곳을 대상으로 4천여 개에 이르는 브랜드를 지어줬다. 의료성분 국제일반명(USAN/INN)의 75%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국제일반명은 의약품 성분을 구별하는 세계적인 공통 명칭이다.

주요 고객사로는 화이자,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미국 MSD, 아스트라제네카, 로슈 등 이름있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명단에 올라 있다. 특히 세계적으로 판매된 화이자·바이오엔텍 코로나19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의 브랜드 코미르나티(COMIRNATY)가 브랜드인스티튜트의 작품이다.

국내기업의 경우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브랜드 바이우비즈(BYOOVIZ), 하드리마(HADLIMA), 임랄디(IMRALDI), 온투르잔트(ONTRUZANT), 렌플렉시스(RENFLEXIS) 등이 브랜드인스티튜트의 도움으로 개발됐다.

셀트리온이 셀트리온헬스케어를 통해 판매하는 바이오시밀러 렘시마(REMSIMA), 허쥬마(HERZUMA), 트룩시마(TRUXIMA), 유플라이마(YUFLYMA) 등도 마찬가지다. 셀트리온이 국내 첫 코로나19 치료제로 내놓은 렉키로나(REGKIRONA) 역시 브랜드인스티튜트의 손이 닿았다.

SK바이오팜은 미국 자회사 SK라이프사이언스를 거쳐 브랜드인스티튜트와 협업한 것으로 파악된다. 뇌전증 치료제 성분명 세노바메이트(cenobamate)와 그 제품명 엑스코프리(XCOPRI), 희귀신경계질환 치료제 성분명 렐레노프라이드(relenopride) 등을 함께 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한미약품 벨바라페닙(belvarafenib)·올무티닙(olmutinib)·포셀티닙(poseltinib) △GC녹십자 렌베르비맙(lenvervimab) △대웅제약 펙수프라잔(fexuprazan)·이나보글리플로진(enavogliflozin) △LG화학 티굴릭소스타트(tigulixostat) 등이 브랜드인스티튜트와 협력에서 나온 것으로 파악된다.

자체 의약품을 개발하지 않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브랜드인스티튜트와 함께 의약품 위탁개발(CDO) 플랫폼 에스-셀러레이트(S-CELLERATE) 브랜드를 만들기도 했다.
 
브랜드인스티튜트는 글로벌 최고 작명소? 삼성 SK 셀트리온도 고객사

▲ 2021년 기준 브랜드인스티튜트의 지역별 의약품 브랜드 및 의료성분 국제일반명 점유율. <브랜드인스티튜트>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이처럼 브랜드를 마련하기 위해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는 까닭은 일반 공산품에 비해 훨씬 까다로운 규정을 충족하면서도 시장 공략에 기여하는 이름을 짓는 데 전문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만 봐도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을 통해 △의약품 등의 명칭으로 적합하지 아니하거나 다른 제품으로 오인할 우려가 있거나 실제보다 과장된 명칭 △의약품의 적응증 또는 효능·효과를 그대로 표시하는 명칭 △의약품 중 2종 이상의 유효성분이 혼합된 제제로서 그 성분의 일부만을 나타내는 명칭 등을 사용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내 한 제약바이오기업 관계자는 “의약품 제품명을 짓기 위해서는 성분 및 효능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단어를 찾아 후보군을 만들고 이 후보군들이 기존 명칭과 겹치거나 현지 규정에 어긋나는지 일일이 검증해야 한다”며 “전문업체의 도움이 필요한 작업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브랜드인스티튜트는 단순히 브랜드 작명뿐 아니라 해당 브랜드가 규제절차를 통과하는 과정도 지원하고 있다. 규제당국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자회사 약물안전연구소(DSI)를 통해 의약품 브랜드들이 규제기관의 지침과 요구에 맞는 요건을 갖췄는지 분석해주는 것으로 파악된다.

알렉스 알펜바움 브랜드인스티튜트 스위스지점 사장은 9월 보도자료를 통해 “글로벌 규정이 복잡해지고 등록되는 브랜드와 제품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며 “시간과 예산에 맞는 브랜드 솔루션을 지녔으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 일이 필수다”고 말했다.

브랜드인스티튜트는 1993년 미국에서 설립된 뒤 현재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지점 20개를 두고 운영하고 있다.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