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DB하이텍의 팹리스(반도체설계)사업부의 분할 방식에 반대하는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의 보폭이 빨라지고 있다.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로서는 기업가치가 할인될 가능성이 큰 물적분할을 저지하기 위해 2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과 연대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 물적분할 총력저지, 국민연금 설득이 관건

▲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가 DB하이텍의 물적분할을 저지하기 위해 국민연금공단과 연대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14일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에 따르면 오는 22일 DB하이텍 주주명부 열람등사 가처분소송에 관한 심문기일이 열리는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서 소액주주들이 모이는 집회가 진행된다.

이 집회를 통해 소액주주연대는 DB하이텍의 물적분할 추진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널리 알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DB하이텍의 물적분할을 반대하고 있는 소액주주연대에 참여하는 주주들의 지분은 9일 기준 4.7%에 이른다.

이들은 DB하이텍이 연내 주주총회를 열고 팹리스(반도체설계)사업을 담당하는 브랜드사업부의 물적분할을 추진할 가능성에 대비해 뜻을 같이 하는 소액주주 지분 최소 10%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워뒀다.

소액주주연대가 DB하이텍의 물적분할 가능성에 이처럼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은 분할 뒤 모기업의 기업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들은 'LG화학-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SK온' 등의 물적분할 사례를 근거로 든다.

기업의 물적분할 실시로 기존 주주가 주가하락 등으로 피해를 입는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지자 최근 금융위원회는 물적분할과 관련해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등의 소액주주보호 방안을 이르면 연내에 실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럼에도 지난 7일 풍산이 방산사업을 물적분할해 12월 신설법인 풍산디펜스(가칭)을 설립하기로 결정하자 소액주주연대는 DB하이텍 역시 같은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DB하이텍의 대주주인 DB는 올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2023년 12월31일까지 지주사로 전환해야 한다는 공문을 받았다. 자산총액이 5천억 원을 넘는 데다 자회사 자산합계가 전체 자산총액의 절반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주력 자회사 DB하이텍이 주력사업인 8인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의 호조로 인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급성장하면서 DB가 지주사로 전환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에 DB하이텍은 8월에는 시스템반도체사업 전문성 강화를 위해 다양한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팹리스사업부의 분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DB가 지주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DB하이텍 지분 17.58%를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상 지주사는 상장 자회사의 지분을 30% 보유해야 하는데 DB는 올해 6월말 기준 DB하이텍 지분 12.42%만을 쥐고 있다.

하지만 소액주주연대는 DB하이텍이 최근 8인치 파운드리사업의 호조에 힘입어 주가가 많이 상승한 만큼 DB가 DB하이텍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DB는 6월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 343억 원을 포함해 유동자산 1227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 DB가 DB하이텍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려면 13일 DB하이텍 종가 기준 3400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

이에 소액주주연대는 DB가 지주사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DB하이텍의 팹리스사업부 물적분할을 통해 기업가치를 낮추려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DB하이텍이 팹리스사업부를 물적분할하면 남아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부의 기업가치까지 함께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물적분할한 팹리스사업부를 상장시키면 DB하이텍의 기업가치는 더 떨어질 공산이 커 DB는 아예 지주사 전환요건을 충족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소액주주연대는 바라본다.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 물적분할 총력저지, 국민연금 설득이 관건

▲ 국민연금공단 본사 전경.


기업이 물적분할을 하기 위해서는 상법상 주주총회에서 특별결의를 거쳐야 한다. 특별결의란 주주총회 참석 주주의 3분의2 이상과 총발행주식의 3분의1 이상을 보유한 주주가 찬성하는 것을 말한다.

소액주주연대는 그동안 기업의 물적분할 추진에 반대 목소리를 내왔던 국민연금공단을 끌어들여 DB하이텍의 물적분할 구상을 저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소액주주연대는 이를 위해 7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DB하이텍의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주주연대의 움직임에 동참해 달라는 입장문을 냈다.

국민연금공단은 2018년 기관투자자의 자산 관리·운용을 위한 수탁자 책임 이행을 위한 의결권 행사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이후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실현을 위해 의결권을 적극 행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올해 6월말 기준 DB하이텍 지분 9.35%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소액주주연대로서는 국민연금공단을 끌어들이면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지분 14% 이상을 확보할 수 있는 만큼 DB하이텍의 물적분할 추진을 막을 우호지분을 확보하는데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올라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DB의 DB하이텍 지분은 김준기 DB 창업회장(3.61%)을 포함한 특수관계인까지 합쳐도 17.84%에 머문다.

소액주주연대 관계자는 “팹리스의 물적분할보다는 인적분할을 통해 기업지배구조 이슈를 해결하거나 차라리 팹리스를 매각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성장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DB하이텍 기업가치 측면에서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를 놓고 DB하이텍 관계자는 “기업 분할을 통해 파운드리와 팹리스의 전문성을 높임으로써 DB하이텍의 기업가치와 주주이익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최영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