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국내 기업금융시장 일익을 맡아 온 종합금융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금융그룹이 ‘마지막 종금사’ 우리종합금융을 포스증권과 합병하기로 결정하면서다.
 
경제성장 발판부터 IMF 원흉까지, ‘마지막 종금사’ 우리종금도 이젠 '아듀'

▲ 마지막 종금사 우리종합금융이 포스증권과 합병하며 종금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종금사는 1980년대와 1990년대 국가 경제성장의 한 축을 담당했지만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위상이 크게 약해졌고 결국 국내 금융시장에서 쓸쓸히 사라지게 됐다.
 
15일 우리금융에 따르면 국내 마지막 종금사인 우리종금은 빠르면 올해 8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종금사는 증권중개와 보험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금융 업무를 할 수 있는 금융사다.

종금사는 1975년 12월 공포된 ‘종합금융회사에 관한 법률’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경제는 1970년대 급성장했고 기업의 외화수요도 급증해 공공뿐 아니라 민간 중심의 외화 조달 경로가 필요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종금사 모델로 미국의 투자은행과 영국의 상업은행을 삼고 국내 금융시장에 원활히 외화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겼다. 

종금사 6곳이 이에 따라 1976년부터 1979년까지 국내 대기업과 외국 금융기관 사이 협력으로 출범했다. 국내 ‘1호 종금사’ 한국종합금융도 대우그룹과 외국인투자자의 합작으로 설립됐다.

종금사는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첫해에 전환기를 맞고 숫자가 크게 늘어난다. 

정부가 투자금융회사(단자회사)를 대상으로 은행과 증권사, 종금사 등으로 편입이나 업종 전환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추진배경으로는 투자금융회사의 1990년대 초 성장세 둔화와 지방 중소기업 금융 서비스 제공 등이 꼽힌다.

투자금융회사는 사채의 제도권 편입과 기업의 단기금융 활성화를 위해 1972년 ‘단기금융업법’을 근거로 만들어진 곳이다. 오늘날 주요 금융사도 투자금융회사와 연관이 깊다. 

1971년 설립된 한국투자금융에서 시작한 하나은행이 대표적이다. 한국투자금융은 순수 민간자본으로 만들어진 국내 최초 비은행 금융기관으로 1991년 하나은행으로 바뀌었고 그 뒤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웠다.

신한은행 창업 주역 이희건 명예회장 역시 1971년 투자금융회사인 제일투자금융을 세우며 국내 금융업에 발을 들였다. 

지방 기반 영세 투자금융회사는 이때 대거 종금사로 업종을 전환했고 1997년 말 기준 종금사 30곳이 운영됐다. 

이처럼 종금사는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승승장구했다.

외화 조달 창구로 만들어진 만큼 해외에서 저금리 단기자금을 빌려와 국내에 높은 금리로 장기대출을 내주며 큰 수익을 올렸고 당시 취업자들에게는 최고의 직장으로도 꼽혔다. 
 
경제성장 발판부터 IMF 원흉까지, ‘마지막 종금사’ 우리종금도 이젠 '아듀'

▲ 미셸 캉드쉬 IMF총재(맨 오른쪽)와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가운데)이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종금사는 다만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시장 퇴출 수순을 밟는다.

외화 단기외채에 크게 의존했던 만큼 유동성 위기에 빠르게 대처할 수 없었고 자금줄은 말라 갔다. 소비자의 위기감도 커 종금사를 찾아와 돈을 찾으려는 발길도 이어졌다.

종금사 수가 크게 늘어 난립으로 과당경쟁이 벌어졌고 정부가 전문성이 떨어지는 종금사를 용인해 줘 몇 년 뒤 IMF위기의 주요 원인이 됐다는 평가도 받았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환위기가 퍼진 1997년 3월부터 2000년 3월까지 종금사 여신은 90%, 수신은 80% 이상 급감했다. 

1998년에는 종금사 16곳이 퇴출됐고 정부는 결국 2000년 종금사 발전방안을 내놓고 다른 은행과 증권 등 다른 업권과 합병을 추진했다. 

금융위원회 연보에 따르면 종금사는 2002년 단 3곳 만 남게 됐다. 1호 종금사 한국종합금융도 2000년 정부가 종금사를 교통정리하기 위해 만든 금융사인 하나로종금에 흡수 합병되며 사라졌다.

초기 종금사 6곳 가운데 명맥을 유지하며 현재 금융사 시장에 영향을 미친 곳도 있다.

대한종금은 1977년 설립돼 한불종금을 거쳐 2007년 메리츠종금으로 사명을 바뀐 뒤 2010년 메리츠증권과 합병됐다.

메리츠종금증권은 당시 획득한 종금업 라이센스를 바탕으로 종금형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판매하며 크게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CMA는 증권사의 수시입출금 통장으로 볼 수 있는데 여러 유형이 있지만 예금자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종금형 CMA가 유일하다.

우리금융그룹도 우리종금을 포스증권과 합병하더라도 이같은 종금사 강점을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우리종금은 금호그룹 주도로 세워진 투자금융회사 광주투자금융에 뿌리를 두고 있다. 광주투자금융은 1995년 금호종합금융으로 전환했고 2013년 우리금융지주 계열사로 인수됐다.

현행법에는 신규 인가 조건이 없기 때문에 우리종금 이후 국내에서 종금사를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2007년 신설돼 지금까지 자본시장 전반을 규제하고 있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은 종금사 관련 법도 담았지만 신규 인가와 관련한 내용은 두지 않았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