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권이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적립금 40조 원 가운데 85%가량을 차지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주요 시중은행들이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적립금 상위권을 싹쓸이하면서 퇴직연금시장 ‘강자’의 입지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하지만 수익률은 고객 적립금이 몰린 초저위험 상품부터 모든 상품군에서 증권사, 보험사에 밀려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퇴직연금 현물이전 등 제도 도입으로 정부 차원에서 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연금투자에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수익률 제고 과제가 무겁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고용노동부의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상품별 비교 공시자료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은행권의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33조8861억 원으로 집계된다. 전체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적립금(40조670억 원)의 84.5%에 이르는 수준이다.
적립금 순위로 봐도 10위권에서 8개 자리를 은행들이 차지했다.
KB국민은행(7조7330억 원)과 신한은행(7조1157억 원)이 2023년 말과 비교해 각각 적립금을 3배 수준으로 불리면서 양강구도를 지속했다. 이어 IBK기업은행(5조6630억 원) 하나은행(4조3362억 원) NH농협은행(3조8795억 원) 우리은행(3조2990억 원)이 줄줄이 뒤를 이었다.
광주은행(5210억 원) 부산은행(4853억 원) 등도 각각 8위와 10위에 올랐다.
다만 은행들은 수익률에서는 증권사, 보험사 등 상품에 뒤처지고 있다.
현재 국내 퇴직연금시장에서는 사업자 41곳의 상품 315개가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정부 승인을 받아 판매되고 있다. 디폴트옵션 상품은 원금이 보장되는 초저위험상품을 비롯해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 상품으로 나뉜다.
그런데 지난해 말 기준 상품유형별로 1년 기준 수익률을 살펴보면 각 은행 디폴트옵션 적립금의 80~90%가 집중돼 있는 초저위험상품군에서도 보험사, 증권사 등 상품이 은행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초저위험상품 수익률 상위권은 미래에셋생명보험(4.01%) 근로복지공단(4.01%) 삼성화재(4.01%) IBK연금보험(3.85%) DB생명(3.81%) 등이 차지했다.
KB국민은행 디폴트옵션 적립금 6조4천억 원이 몰려있는 초저위험포트폴리오 상품 수익률은 2.80%다. 1위 상품과 수익률 격차가 1.21%포인트다.
신한은행(2.90%) 하나은행(2.88%) 우리은행(2.90%) 초저위험상품 수익률도 KB국민은행과 비슷한 수준이다.
▲ 2024년 퇴직연금 현물이전 제도가 도입되면서 은행과 증권사의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사진은 신한투자증권의 퇴직연금 현물이전 이벤트 관련 이미지.
은행이 수익률 등 상품 경쟁력으로 적립금을 끌어 모았다기보다 금융시장에서 브랜드 신뢰도와 인지도, 접근성과 국내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낮은 관심도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적립금 상위 10위권에 든 은행 8곳은 초저위험상품뿐 아니라 저위험상품, 중위험상품, 고위험상품에서도 1년 기준 수익률 상위 5위권에는 하나도 들지 못했다.
다만 고위험상품에서는 KB국민은행의 고위험포트폴리오1 상품은 1년 수익률이 24.90%로 지난해(20.01%)보다 크게 높였다. 하나은행의 고위험포트폴리오2도 1년 수익률이 23.16%로 20%대를 보였다.
여전히 같은 상품군 1위 한국투자증권(35.88%)과는 차이가 있지만 다른 순위권 상품들과 격차가 크지 않은 등 성과가 있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상품을 결정하지 않을 때 미리 정한 방법으로 자동운영하도록 하는 제도로 2023년 7월 도입됐다.
정부가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해 내놓은 핵심 정책인 만큼 적립금을 독식하고 있는 은행권의 상품 경쟁력 개선은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한 측면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은행권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퇴직연금시장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디폴트옵션 등 연금상품 경쟁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2024년 말 기준 국내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은 430조 원 규모로 집계됐다. 은행권은 이 가운데 225조7684억 원, 절반가량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퇴직연금 현물이전 제도 도입 등에 힘입어 증권사 퇴직연금 적립금(103조9412억 원) 규모도 처음으로 100조 원을 넘어섰다. 증가율로 보면 증권사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2023년 말과 비교해 19.8% 늘어나면서 은행권 증가율(13.9%)을 앞질렀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