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무 엔씨소프트 공동대표이사가 2025년 3월26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여러차례 리니지 IP를 향한 '애정'을 과시했다. <그래픽 씨저널> |
[씨저널] “리니지에 대해서 사람들이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PC 리니지는 거의 못 하고 모바일 버전만 하고 있지만 정말 잘 만든 IP라는 생각이 든다.”
박병무 엔씨소프트 공동대표이사가 2025년 3월26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한 이야기다. 박 대표는 이번 주주총회에서 여러 차례 리니지 IP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박 대표가 엔씨소프트의 CEO 자리에 오른 지 1년이 지났다. 박 대표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엔씨소프트를 창업한 이후 최초로 맞이한 전문경영인이다.
◆ M&A 전문가 박병무, 2024년 성과는 ‘또 리니지’
박병무 대표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사모펀드 등에서 다수의 기업 인수합병과 법률 자문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김앤장과 사모펀드에서 그가 성사시킨 인수합병은 45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가 대표이사에 선임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엔씨소프트가 콘텐츠업계 인수합병의 스타 플레이어가 될 것으로 예측했던 이유다.
시장에서는 글로벌 콘텐츠 IP 확보, 해외 게임 회사 투자 및 인수, 더 나아가 게임이 아닌 다른 미래먹거리의 탐색 등 ‘외연 확장 전략’이 2024년 엔씨소프트의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2024년 실적이 좋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엔씨소프트는 여전히 게임업계 최고의 ‘현금 부자’다. 2024년 사업보고서 기준 엔씨소프트의 현금및현금성자산은 1조2605억 원으로 넷마블(5779억 원), 크래프톤(5817억 원) 등보다 월등히 많다.
하지만 박 대표가 취임한 이후 진행된 ‘경영 쇄신’은 조직 다이어트 정도가 끝이었다. 시장에서 기대하던 인수합병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박 대표는 이번 주주총회에서 엔씨소프트의 2024년을 두고 “지난해 '리니지M', '리니지2M', '리니지W'와 같은 기존 IP의 성공적인 리부트 업데이트와 고객 중심 서비스 강화를 통해 기존 IP의 경쟁력 회복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2024년 엔씨소프트의 키워드는 결국 ‘또 리니지’였던 셈이다.
◆ 게임에 십일조 수준 돈 쓴다는 박병무, 게임을 진짜 이해하고 있는가
박 대표는 이번 주주총회에서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 CEO를 해도 되느냐는 걱정이 많은데 나는 게임에 십일조 수준으로 돈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 산업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어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를 두고 오히려 게임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는 것을 방증하는 발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콘텐츠’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게임을 ‘과금 상품’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리니지 시리즈가 주로 받는 비판점 가운데 하나가 게임성은 도외시하고 과금 유도에만 집중한다는 점이기 때문에 박 대표가 ‘게임=리니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리니지M 이용자 커뮤니티의 한 누리꾼은 “대표한테 게임 하냐고 물어봤는데 ‘돈 많이 쓴다’라는 답변은 좀 이상한 것이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 김택진은 왜 박병무를 데려왔나, 엔씨소프트 ‘대전환’ 이끌 적임자
글로벌 게임 시장은 현재 과금 유도 중심 모델에서 벗어나, IP의 다양성, IP를 향한 팬덤의 구축 등을 중시하는 트렌드를 보이고 있다.
리니지 시리즈는 여전히 국내 시장에서는 강력한 캐시카우가 될 수 있지만, 리니지 IP 중심의 매출 구조에 머무른다면 앞으로 새로운 이용자 유입이나 해외 시장 확장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엔씨소프트가 ‘리니지’ 외의 어떤 시도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블레이드앤소울2, 트릭스터M, 쓰론앤리버티, 배틀크러쉬 등 엔씨소프트가 새롭게 내놓은 신작들 가운데 최근에 성과를 거둔 게임은 ‘쓰론 앤 리버티’의 글로벌 버전 하나다.
박 대표는 리니지 중심의 매출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고 엔씨소프트의 ‘대전환’을 이끌기 위해 발탁된 인물이다.
게임과는 관계없는 삶을 살던 박 대표를
김택진 대표가 게임회사 CEO 자리에 앉힌 이유는 ‘리니지 IP의 강화’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리니지를 넘어 엔씨소프트가 글로벌 게임회사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미래를 찾아내는 것이 박 대표에게 맡겨진 과제인 셈이다.
▲ 박병무 엔씨소프트 공동대표가 2024년 3월28일 경기 성남시 엔씨소프트 사옥에서 제27기 정기 주주총회가 끝나고 취재진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 길어지는 인수합병 ‘침묵’, 마땅한 매물이 없어서인가
물론
박병무 대표와 엔씨소프트가 인수합병을 통한 IP 확보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번 주주총회에서 박 대표는 “올해에는 인수합병과 관련해 주주 여러분들이 가시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성과가 나길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표가 2024년 주주총회에서도 “M&A(인수합병)와 투자를 통한 IP 확보가 올해의 키워드”라고 발언했었던 것을 살피면 큰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도 나온다.
엔씨소프트의 한 주주는 “2024년에도 올해 안에는 반드시, 무조건 인수합병을 하겠다고 했었다”라며 “2025년이라고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가 인수합병을 추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매물을 탐색하고 있지만 마땅한 매물이 없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엔씨소프트는 내부에 인수합병을 위한 태스크포스(TF)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엔씨소프트는 인수합병 대상으로 소위 ‘엔씨 퀄리티’에 맞는 게임 제작 능력이나 IP를 원하고 있지만 현재 그 정도의 ‘급’이 되는 매물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최근 엔씨소프트가 출시한 캐주얼게임 ‘배틀크러쉬’의 실패 때문에 소형 IP에 대한 비선호가 더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