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텔이 모바일 반도체시장의 성장에 뒤늦게 대응하며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 인텔의 '인텔 인사이드' 슬로건 이미지. |
[비즈니스포스트] ‘인텔 낫 인사이드(Intel Not Inside, 인텔은 들어있지 않다)’
인텔이 모바일 반도체사업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분석한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 제목이다.
AMD와 애플 등 경쟁사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전까지 전 세계 대부분의 데스크톱PC와 노트북에는 ‘인텔 인사이드’ 로고가 붙어 있었다. 인텔은 이를 기업과 제품 광고에 적극적으로 앞세웠는데, PC시장이 결국 인텔 CPU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인텔은 한때 글로벌 CPU시장에서 80% 안팎의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며 PC의 보급 확대에 따른 수혜를 온전히 차지하고 있었다. 펜티엄과 i3, i5와 i7 등 인텔의 CPU 라인업을 나타내는 단어는 다수의 소비자가 PC를 구매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IT시장의 중심이 PC에서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로 이동하면서 인텔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입지를 차지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인텔 낫 인사이드’라는 표현 그대로 전 세계에 출시되는 스마트폰에서 인텔의 반도체를 찾기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인텔이 세계 반도체 1위 기업으로 절대적 위상을 자랑하다 지금과 같이 미래가 불확실한 기업으로 위축된 이유는 이러한 전략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PC용 CPU로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유지하다 보니 새로운 사업 분야에 뛰어들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했고 결국 모바일용 반도체와 같은 영역에 진출이 늦어진 것이다.
글로벌 반도체산업의 무게중심이 PC에서 모바일로, 또 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 등 차세대 사업으로 이동하는 동안 인텔은 사실상 소외되고 있었다. 인텔이 모바일 반도체시장 개막에 긴밀하게 대응하지 못한 결과는 앞으로도 극복하기 쉽지 않을 뼈아픈 실책으로 남게 됐다.
특히 인텔의 기업 역사상 가장 아쉬운 선택으로 남아있을 만한 순간은 애플이 아이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모바일 프로세서 개발과 생산을 요청했을 때 거절했던 일로 꼽힌다.
인텔은 당시 애플 컴퓨터에 탑재하는 CPU를 공급하고 있었는데 아이폰과 같은 모바일기기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고 말았다. 아이폰이 앞으로 반도체를 비롯한 IT시장 전반에 미칠 영향과 발전 가능성을 잘못 판단해 사업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은 것이다.
애플은 결국 이를 계기로 자체 프로세서 설계를 본격화했고, 현재 아이폰에 탑재되는 A 시리즈 프로세서는 모바일시장에서 성능과 전력효율이 가장 우수한 시스템반도체로 발전했다. 애플은 더 나아가 맥북과 아이맥 등 제품에도 인텔 CPU 대신 직접 개발한 반도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텔이 아이폰용 반도체 설계 및 생산에 뛰어들지 않은 결과가 모바일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뿐만 아니라 핵심 고객사인 애플을 잃는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이는 삼성전자와 TSMC 등 다른 반도체기업의 성장 계기로 작용하는 ‘나비효과’도 일으켰다. 삼성전자는 애플 프로세서를 위탁생산하며 파운드리사업 초기에 중요한 도약 기반을 마련했고 TSMC도 애플을 최대 고객사로 확보하게 되며 본격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특히 삼성전자는 애플 아이폰용 프로세서에 맞설 ‘엑시노스’ 시리즈 개발에 속도를 내며 장기간 약점으로 꼽히던 시스템반도체 기술력을 높여갈 수 있었다. 통신모뎀 반도체와 이미지센서 등 다양한 반도체 개발도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 삼성전자 자체 개발 프로세서 '엑시노스2200' 이미지. |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반도체와 자동차 인포테인먼트용 프로세서 등 신산업 진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이 인텔에는 실패를 안긴 반면 삼성전자 반도체에는 중요한 성장 기회를 열어 준 셈이다.
다만 인텔도 모바일 분야를 완전히 포기했던 것은 아니다. 2011년 선보인 스마트폰용 프로세서 ‘아톰’ 시리즈를 필두로 모바일시장을 겨냥한 반도체 제품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퀄컴과 미디어텍 등 기업이 시장에서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던 만큼 인텔이 후발주자로 고객사를 확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모바일 반도체의 전력효율 등 성능 경쟁력도 뛰어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인텔은 스마트폰용 프로세서를 사실상 포기하고 5G 통신모뎀 반도체에 집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통신반도체 역시 경쟁사의 기술적 우위를 증명하는 제품에 그치고 말았다.
인텔의 모바일 반도체시장 도전은 2019년 통신반도체 사업부를 애플에 매각하며 마무리됐다. 10년 가까이 이어진 기술 투자가 막대한 손실만을 남기고 신사업 진출의 중요성에 대한 교훈을 안겨준 셈이다.
현재 인텔은 반도체 파운드리와 자율주행 및 인공지능 반도체를 차기 신사업으로 점찍고 공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업 분야도 주요 경쟁사와 비교하면 늦게 진출한 만큼 성과를 자신하기는 쉽지 않다.
삼성전자가 인텔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스마트폰용 메모리 및 시스템반도체에 의존을 낮추는 데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마트폰 시대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자동차용 반도체나 서버용 반도체 등 영역으로 진출을 서둘러야만 지속성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조사기관 스트래터지애널리틱스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2년 초 기준으로 전 세계 스마트폰용 D램과 낸드플래시시장에서 절반에 가까운 매출 점유율을 차지하며 ‘삼성 인사이드’ 시대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서버와 자동차 등 분야에서는 미국 마이크론과 같은 경쟁사에 우위를 자신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기술력도 퀄컴 등 주요 설계기업과 비교하면 뒤처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역량을 빠르게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김용원 기자
[편집자주] 2023년, 글로벌 경기침체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오며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및 국가 경쟁력에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때다.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가 현재 전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는 일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경제팀에서 연재하는 [삼성의 라이벌] 기획은 삼성전자와 주요 라이벌 기업 사이의 경쟁 판도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예측해 삼성의 현 위치를 짚어보고 이러한 경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삼성의 위기 극복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 진단한다.
3부 - 삼성 vs INTEL
(1) 인텔 전성기 막 내린다, 삼성전자 ‘K-반도체’ 시대 주도
(2) 모바일 반도체 외면한 인텔, 삼성전자 성장 기회 열었다
(3) 인텔 메모리반도체 50년, 삼성전자에 밀려 역사 속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