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7월 책무구조도 적용 대상인 보험사 30개 가운데 26개가 금융당국에 책무구조도를 제출했다. 사진은 책무구조도를 제출해 시범운영에 참여하는 보험사 명단.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
[비즈니스포스트] 은행권에 이어 보험사도 금융당국에 책무구조도를 제출하고 시범 운영을 시작한다. 실체 있는 내부통제 강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최근 보험 설계사들의 불완전판매, 법인보험대리점(GA) 소속 설계사 관리부실을 지적하며 보험사들에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해 왔다.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책무구조도 적용 대상 보험사 30개 가운데 26개(생명보험사 16개, 손해보험사 10개)가 책무구조도를 제출했다. 이번에 책무구조도를 제출한 회사들은 7월2일까지 시범운영에 참여하게 된다.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 임원이 담당하는 직책에 따라 책무를 배분한 내역을 기재한 문서를 말한다. 개별 임원마다 책무가 명확해지며 책무수행에 적합한 자격요건을 갖춰야 한다.
책무구조도가 공유되면, 내부통제 관련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를 엄격히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이같은 이유로 책무구조도 제출은, 제조업 분야의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무리한 영업 경쟁으로 불완전 판매 등과 같은 법령 위반이 발생할 경우에도 책무구조도에 따라 제재가 이뤄진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7월3일 지배구조법 개정 시행에 따라 책무구조도 등 신설제도 조기 안착 지원을 목적으로 ‘책무구조도 시범운영 실시 계획’을 발표하고 대상 보험사 대상으로 11일까지 신청을 받았다.
금융위원회가 규율화한 업권별 책무구조도 제출 시기에 따르면 자산총액 규모 5조 원 이상 보험사는 시범운영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7월까지는 책무구조도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이번 시범운영에 참여하지 않은 동양생명, DB생명, 푸본현대생명, 코리안리 등도 철저히 준비한 뒤 7월로 예정된 책무구조도 시행 기한에 맞춰 제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동양생명과 DB생명 측은 아직 책무구조도 관련 컨설팅을 받는 중이며 7월 전 차질 없이 제출하고자 꼼꼼히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코리안리 관계자는 “6월 임원 변경 등이 포함된 조직개편 및 정기인사가 예정돼 있다”며 “이를 최종 반영한 뒤 제출하는 게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다고 판단해 사전 협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이 시범운영 기간에 책무구조도 점검 및 자문 등 컨설팅을 실시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함에 따라 대상 보험사 30개 가운데 약 87%가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또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 시범운영 기간에는 참여사들이 내부통제 관리의무 등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해도 지배구조법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같은 기간 동안 소속 임직원의 법령위반 등을 자체 적발‧시정한 경우 관련 제재조치와 관련해 감경 또는 면제하는 점도 보험사들에 매력적이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인센티브와 함께 최근 1년 사이 금융당국의 내부통제 강화 주문이 강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 보험회사 감사담당자를 대상으로 ‘2024년 하반기 내부통제 워크숍’을 열고 단기실적 중심 보험판매와 영업경쟁에 따른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올해 2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보험회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무리한 영업 경쟁으로 시장 질서를 훼손하면 감독 및 검사 자원을 집중해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금융감독원은 올해 1월부터 연이어 ‘법인보험대리점(GA) 소속 설계사 폰지사기 의혹’ ‘경영인 정기보험 절판마케팅 기승’ 등 보도자료를 내며 검사와 단속을 강화해 왔다.
2023년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 뒤 보험사들의 호실적과 임원 성과급 등이 관심을 받으며 금융당국은 2026년 금융권 최초로 보험업권에서 성과급 등과 관련된 ‘경영진 보상체계 모범관행’을 시행한다고 알리기도 했다.
▲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임원이 담당하는 직책에 따라 책무를 나눈 내역을 적은 문서를 말한다. 사진은 책무구조도 개념도.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
계속되는 압박 속 금융당국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보험사들이 적극적으로 책무구조도를 도입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의견이 조심스레 제기된다.
이처럼 책무구조도 도입 및 운영과 관련해 금융당국과 긴밀한 소통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올해 보험사들의 ‘관 출신’ 사외이사 영입도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이뤄졌다.
삼성생명, 현대해상, DB손해보험, 한화손해보험 등 주요 보험사들은 3월 주주총회에서 금융감독원 등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사외이사를 신규 선임했다.
다만 제도 자체가 국내 보험업계에서는 첫발을 딛는 만큼 도입 뒤 금융당국과 보험업권이 합심해 세부적으로 다듬어나가야 소기의 목적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양승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책무구조도 도입 등 제도 개선은 결국 회사 안에서 실질적으로 내부통제가 잘 이뤄지게 하기 위해 시행됐다”며 “행정적 절차만 과도하게 강조해 개별 회사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아야 도입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해외에서 금융사 규모나 유형에 따라 차등적으로 규제를 적용하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사례를 참고해 향후 실효성을 높여나갈 방안을 고려해 봐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