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로드컴이 인텔 반도체 설계 사업을 인수할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다만 TSMC의 인텔 파운드리 인수 여부가 큰 변수로 자리잡고 있다. 브로드컴 반도체 홍보용 이미지. |
[비즈니스포스트] 인텔을 인수할 만한 유력한 후보로 브로드컴이 떠올랐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및 서버용 CPU 분야에서 강력한 시너지를 낼 잠재력을 주목받고 있다.
다만 브로드컴이 외국 기업이라는 약점을 넘고 트럼프 정부를 설득하는 것과 인텔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을 다른 기업 몫으로 떼어놓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9일 “브로드컴의 ‘인수합병 마법’은 인텔을 사들이려 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대에 놓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브로드컴은 현재 인텔 반도체 설계사업 인수를 면밀히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텔이 심각한 재무 위기로 경영난을 겪고 있어 매각 추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텔의 실적 악화에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을 인수할 업체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브로드컴의 인수 성사 가능성도 희박해진다.
브로드컴이 반도체 제조업을 운영해 본 경험이 없고 자금 여력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인텔의 설계와 파운드리를 모두 사들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TSMC가 인텔 파운드리를, 브로드컴이 설계 부문을 사들이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현실성은 낮다. TSMC가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브로드컴은 주로 통신반도체 및 산업용 반도체를 설계해 공급하던 대형 시스템반도체 개발사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구글과 메타를 비롯한 빅테크 기업이 엔비디아 제품을 대체할 자체 인공지능 반도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브로드컴이 핵심 기술 협력사로 떠오른 결과다.
인텔은 서버용 CPU 시장에서 부동의 1위 기업인 만큼 브로드컴과 인텔의 사업이 합쳐진다면 강력한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브로드컴의 인수는 인텔 반도체 설계 사업 회복에 가장 중요한 기회”라며 반도체 제품 포트폴리오에 완성도를 높일 것이라는 관측을 전했다.
PC와 서버용 CPU 시장에서 인텔 점유율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브로드컴이 경영을 맡게 된다면 이전보다 나은 성과를 보일 수 있다는 전망도 이어졌다.
▲ 인텔의 반도체 파운드리 설비 홍보용 이미지. |
브로드컴은 그동안 다수의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 기업을 사들이며 외형을 꾸준히 키워 왔다. 성공적 사례가 늘어나며 ‘인수합병 마법’이라는 수식어도 붙게 됐다.
가장 최근에 성사된 대규모 거래는 2023년 마무리된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업체 VM웨어 인수다. 브로드컴은 당시 690억 달러(약 99조 원)를 지불했다.
2018년에는 퀄컴을 상대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한 적도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이를 금지하며 결국 무산됐다.
트럼프 정부는 브로드컴이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외국계 기업이라는 이유로 기술 유출을 우려해 인수를 금지했다. 이후 브로드컴은 미국으로 본부를 이전했다.
이러한 전례를 고려한다면 브로드컴이 인텔 인수를 추진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일지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현재는 미국 정부도 인텔이 다른 기업에 인수되는 방식으로 재무 위기를 극복해 자국의 기술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는 일을 긍정적 시나리오로 바라볼 공산이 크다.
증권사 번스타인은 “브로드컴이 인텔을 인수한다면 반도체 제품의 시장 잠재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최근 인텔 경영진보다는 나은 행보를 보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번스타인은 규제 관련한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로 남을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았다. 대형 반도체 기업 사이 인수합병에서 전 세계 여러 국가의 경쟁당국 승인을 받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텔 파운드리 사업의 향방도 불투명하다. TSMC 이외에 인텔의 반도체 제조업 인수를 눈독들일 만한 후보는 사실상 거론되지 않고 있다.
다만 증권사 레이먼드제임스는 미국의 여러 반도체 설계업체가 인텔 파운드리 지분을 나누어 인수하며 TSMC가 투자자 가운데 하나로 참여할 가능성도 열려있다고 바라봤다.
브로드컴과 TSMC의 인텔 인수설이 주요 외신에서 보도된 뒤 인텔 주가는 하루만에 약 16% 상승하며 장을 마쳤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시나리오가 어느 정도 현실성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혹 탄 브로드컴 CEO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인텔 인수와 관련한 질문을 받자 “인공지능 반도체에 회사의 모든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며 사실상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모두 인수합병 기회를 보고 있다며 현실화가 가능한 상황이라면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