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화 세일전자 대표는 창업 30년 만에 세일전자를 ‘히든 챔피언’(숨어있는 승자)으로 불리는 위치까지 올려놨다.
하지만 세일전자는 전방산업 업황 둔화의 직격탄을 맞아 부도가 났다. 그 뒤 간신히 회생 절차를 밟아가는 과정에 화재로 인명사고가 발생하면서 회생의 꿈도 가물가물해졌다.
▲ 안재화 세일전자 대표가 2013년 8월16일 인천 남동구 세일전자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을 안내하고 있다. |
안 대표는 IMF구제금융 파고를 넘어 여기까지 왔는데 이번에도 극복하기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22일 경찰과 소방 관계자 등 합동감식반은 인천 남동구 세일전자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현장 감식을 진행했다.
21일 세일전자에서 발생한 화재로 9명의 사망자와 6명의 부상자 등 15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안재화 대표는 그날 밤 빈소를 찾아 고개를 숙였다. 그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명복을 빈다”며 “희생자들을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하겠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세일전자 정상화를 위한 과정을 밟아나가고 있었는데 화마로 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
희생자들의 가족들은 스프링클러 미작동 등 인재를 의심하고 있다. 만약 회사 측의 잘못이 발견되면 감당하기 힘든 비난이 돌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안 대표는 이와 관련해 “증축이나 소방법 위반 사항은 없었다”며 “소방 훈련도 했다”고 말했다.
세일전자는 2015년 영업손실 148억 원을 내면서 2016년 5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2016년에는 적자폭이 453억 원까지 확대됐다.
안 대표는 기업 정상화를 위해 300여 곳의 협력사를 만나고 판매선 다변화 등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결과 2017년에는 적자폭이 81억 원까지 줄었다.
2017년 1월 법원의 회생계획 인가를 받고 안 대표는 “새로운 아이템을 적극 발굴하고 자동차 부품분야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면 2년 내 법정관리를 졸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1985년 전자회로기판(PCB) 제조사인 세일전자를 설립해 30여 년 동안 한 길을 걸어왔다.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등에 납품하면서 관련 분야의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다.
세일전자는 한 차례 생존 위기를 넘은 적이 있다. 1998년 금융위기 때 협력사들의 연쇄 부도와 금융비용 증대 등으로 존폐 위기를 맞았다. 당시 안 대표는 기술력을 내세운 해외시장 진출로 생존에 성공했다.
세일전자는 스마트폰시장의 성장에 발맞춰 빠르게 성장했고 2011년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선정됐다. 안 대표는 2014년 동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2004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민생투어로 세일전자를 찾았고 대통령이 된 뒤 2013년 다시 방문해 “세일전자는 매출과 고용이 급성장하는 강소기업”이라고 추켜세웠다.
2016년 당시 유일호 경제부총리도 세일전자를 찾아 “세일전자는 신기술 개발로 10년 만에 매출 2천억을 올리는 글로벌 '히든 챔피언'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칭찬했다. 안 대표는 2015년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신성장창조경제협력 연합회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시장의 성장 둔화가 세일전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세일전자는 2013년 700억 원을 들여 제2공장을 설립했으나 예상만큼 물량이 늘어나지 않으면서 2014년부터 순이익 적자로 돌아섰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