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025년 1월5일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차량 호송대를 타고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출발하고 있다. 오는 20일 취임하는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당일 모든 수입품에 10%의 보편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내일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오는 20일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들기 위해 취임 당일부터 25개 이상의 행정명령을 쏟아낼 것으로 예상된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그 중에는 비합법 이민자들의 대대적 추방과 남부 국경으로의 군 병력 파견, 미국 땅에서 태어난 이에 대한 시민권 부여 폐지 등 이민 제한, 석유 등 화석연료 규제 완화, 파리기후협정 및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트랜스젠더 병사 전역 및 입대 금지, 2021년 1월6일 의사당 난동 사건 연루자 1500명에 대한 사면 등이다.
무엇보다도 모든 수입품에 10% 보편관세와 중국 제품에 대한 60% 관세, 멕시코와 캐나다 제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가 가장 주목된다. 관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라는 트럼프의 말대로, 그가 취임 당일이나 집권 초기에 이런 보편관세를 부과한다면, 미국과 세계는 전무후무한 시험대에 서게 될 것이다.
우선, 트럼프가 공언하는 이런 보편관세는 2차대전 이후 세계가 경험하지 못했고, 극히 금기시하던 경제적 조처이다. 1930년대 대공황을 악화시켰다고 평가받는 미국의 스무트-홀리법의 고율 관세 부과 이후 선진국에서 나온 최대 규모의 관세 인상 조처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보편관세 정책에서 우선 초점은 그가 공언한대로 취임 첫날이나 집권 초기에 실제로 시행할 것인가 여부이다. 전 세계 각국에 시장을 개방해온 패권국가인 미국이 이런 극단적인 보호주의 정책을 도입할 경우에 벌어질 후폭풍은 사실 가늠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트럼프가 보편관세 부과를 위협하며 관련국들로부터 교역에서 양보를 얻어내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와 그 행정부로서는 관세 부과 위협을 지렛대로 하여, 미국 제품 경쟁력, 미 국내에서 산업 활성화 등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이민과 마약 통제 강화 등을 노리고 있다. 미국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누리는 중국 등에 미 제품에 대한 수입장벽을 낮추거나 의무 구매하게 하고, 미국 내에 투자를 강제해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들어 산업 경쟁력을 제고하게 하는 것은 트럼프 이후 미국의 일관된 경제정책이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에는 중국에 관세부과를 위협하며 무역협상을 벌여서, 2020년에 2천억 달러 미 제품 구매안을 타결짓기도 했다. 또 조 바이든 행정부 때에는 반도체과학법이나 인플레이션감축법을 통해서 미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에는 보조금을 부여하는 정책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과 산업을 유치하기도 했다.
트럼프와 차기 행정부는 분명 이런 정책을 더욱 강화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와 중국 등 상대국들의 대응이다.
트럼프는 재선된 데다, 의회도 여당인 공화당이 다수당이어서 정치적 입지가 1기 때보다도 굳건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이번 임기 이후에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는 대통령임은 감안하면, 그의 정치적 입지는 생각보다도 강하지 않을 수 있다. 2년 뒤 중간선거에서 패배하면, 그는 사실상 레임덕에 빠진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출범 1년 만인 2018년 초부터 중국의 태양광 패널 및 세탁기 등에 고율 보복관세를 부과하면 관세 전쟁을 시작했다. 곧 이어 동맹국들에게도 강철 및 알루미늄에 고율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결국 2020년에 중국이 미국 제품 2천억 달러를 구매한다는 타협안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 합의는 사실상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은 합의된 규모의 58%만 구매했고, 이는 사실상 양국 무역에서 미국에게 유리하게 개선된 것이 없는 현상 유지에 불과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새로 취임하는 트럼프에 맞서는 중국 지도자 시진핑 주석은 4년 전에 비해 국내적으로는 더욱 정치적 입지가 강화됐다. 트럼프는 우선 미국 내의 불법 약물 문제인 펜타닐 문제 등을 거론하며 중국에 60% 관세를 위협하거나, 최소한 10% 보편관세를 즉각 부과할 수 있다.
이미 트럼프의 귀환에 대비해온 중국도 트럼프에 맞설 수 있는 도구들이 적지 않다. 우선 시간이다. 2026년 중간선거 전에 성과를 보여야 하는 트럼프에 비해 시진핑은 그런 시간적 구속이나 제약이 없다. 지난 2020년 때 2천억 달러 미국 제품 구매안 같은 것을 던져놓고는 필요에 따라서는 미국의 기업과 산업을 위해를 가하는 대응관세 조처도 할 수 있다.
희토류 등 광물질에 대한 수출 통제, 중국 시장 접근 등에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비신뢰 기업 명단’(Unreliable Entities List) 활용 등을 구사할 수 있다. 또, 미국의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Foreign Direct Product Rules)과 유사한 수출통제 조처도 취할 수 있다. 미국의 해외직접생산품규칙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더라도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장비, 기술 등이 사용됐다면 특정 국가에 반입을 금지하는 제재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지난 12월11일 발간한 ‘트럼프 관세 위협의 결과들’이라는 보고서에서 이런 대책들을 두고 “미국의 특정 기업이나 중요한 산업들을 겨냥하고,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야기하지 않고 심각한 경제적 고통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민이나 불법마약 문제로 25% 관세 부과를 위협받는 국가들인 멕시코나 캐나다 역시 쉽지 않은 대상이다. 우선, 미국의 최우방인 이 나라들에 대한 위협은 양보를 이끌어내려는 단순한 협상 도구이고, 트럼프 취임 전에 무언가의 타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트럼프로서는 취임 전에 승리를 선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모양새이다.
하지만 이미 그럴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이미 취임이 다가온 데다, 캐나다와 멕시코로서는 양보할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요구하는 이민이나 펜타닐 등 불법 마약 문제에 대한 대처는 멕시코나 캐나다가 그동안 안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특히 멕시코로서는 이민과 마약 문제에 마약 카르텔이 연루되어 있다. 마약 카르텔 문제는 그동안 멕시코 정부가 전쟁을 벌이면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이다. 미국의 공권력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문제를 관세부과나 혹은 트럼프가 위협하는 마약카르텔에 대한 테러단체 지정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조처들은 최근 취임한 클로디아 세인바움 멕시코 대통령 정부를 곤란에 빠트릴 뿐이다.
캐나다 입장에서도 미국에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캐나다가 미국과 무역에서 취하는 흑자의 대부분은 석유 수출에서 나온다. 미국이 캐나다 석유를 수입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캐나다 석유는 대부분 송유관으로 미국으로 수입되고, 여기에 맞춘 정유시설들이 미국에 있다. 양국 모두 이 석유 교역을 대체할 수단도 마땅치 않고, 대체해도 그 비용과 불이익만 커진다.
트럼프의 보편관세 위협이나 부과는 상대국에게 일정한 양보를 끌어낼 수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그 효과가 미국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는 의문이다.
중국에게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중국은 미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글로벌사우스 국가나 유럽, 동아시아 등 미국의 동맹국들과 교역관계를 확대하는 장기적 게임을 추구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은 최근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참가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협정은 미국이 추진하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 직후에 탈퇴하자, 일본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남은 11개국 회원국이 결성한 경제권이다.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에서 철수하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적극적인 입장을 세계에 과시할 것이다.
트럼프의 보편관세 위협이나 부과는 무엇보다도 패권국가로서 미국의 철수를 의미한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설계하고 주도한 국제질서의 핵심은 미국이 시장을 개방하고 달러를 풀어서 국제경제를 유지하고, 자신의 군사력으로 동맹을 보호하고 무질서를 예방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시장을 개방하는 것은 패권국가로서 치러야 할 비용이었다. 그런데 트럼프의 미국은 이제 그런 비용을 치르지 않겠다는 것이고, 비용을 치르지 않고 패권국가로서의 편익만 누리겠다는 것이다.
그런 미국이 언제까지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트럼프의 보편관세는 어쩌면 쇠락하는 미국의 전조가 아닐까?
정의길 /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