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정부 출범 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지원을 축소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가 배터리와 소재에 대한 지원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잡는다면 신 부회장의 미국 투자도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은 현지시각 28일 미국 테네시주 상공회의소가 주최하는 정책포럼인 ‘테네시 제조업 포럼’에 참여했다.
이날 포럼에는 LG화학의 최고지속가능전략책임자(CSSO)인 고윤주 전무가 나서 미국 내 첨단산업 발전과 소재 공급망 강화 등을 주제로 하는 정책 토론에 참가했다.
LG화학은 2023년 12월부터 테네시주에 2조 원을 투자해 배터리 양극재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공장이 2026년에 완공되면 연간 6만 톤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춰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양극재 공장이 된다.
LG화학은 이런 투자에 맞춰 현지 산업계와 소통을 늘려가는 것으로 풀이된다.
신 부회장에게 미국에서 배터리 소재 생산의 확대는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배터리를 그룹 차원의 핵심 사업으로 강조하고 있어서다.
구 회장은 지난 26일 LG 정기 주주총회에서 서면 인사말을 통해 “배터리 같은 산업은 미래 국가 핵심 산업이자 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반드시 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신 부회장은 올해 LG화학의 전체 설비 투자규모는 석유화학산업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1조원가량 줄이면서도 배터리를 비롯한 친환경 소재 투자에는 집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구 회장은 지난 27일 경기도 이천시 LG인화원에서 열린 올해 첫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서도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을 향해 “모든 사업을 다 잘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고 그렇기에 더더욱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배터리 사업을 확대하는 것은 구 회장에게는 선대의 유지를 잇는다는 의미도 크다.
고 구본무 LG 선대회장은 1992년 영국 출장을 통해 2차 전지를 알게 된 뒤 LG의 새로운 먹거리로 바라봤고 1995년에 LG화학에 배터리연구소를 만들면서 사업을 본격화했다. 고 구 선대회장은 당시로서는 선도적으로 배터리를 차량 동력에까지 적용하겠다는 구상을 한 경영자로 꼽힌다.
현재 세계적으로 대형 배터리의 주요 수요처는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전기차인데 주요 시장 가운데 미국의 성장세가 가장 가파를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특히 미국은 올해 들어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핵심 산업 전반에 걸쳐 가치사슬의 내재화, 즉 현지생산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반도체, 완성차 등과 더불어 배터리 역시 미국이 가치사슬 내재화를 원하는 핵심 산업 가운데 하나다.
신 부회장으로서는 그룹 차원의 배터리 사업 성장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미국 시장 공략이 필수적이다.
미국이 상대적으로 배터리 소재에서의 내재화율 높이기가 시급한 상황이라는 점은 신 부회장이 사업을 확대하는데 기회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LG화학의 미국 테네시 양극재 공장 건설현장.
S&P의 시장조사에 따르면 미국은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K배터리 3사의 투자 현지 투자 확대에 힘입어 전기차 배터리에서는 75%가량 내재화율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양극재, 전구체 등 배터리 소재에서는 내재화율이 아직까지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파악된다.
LG화학이 미국 내 배터리 소재 생산능력을 확대하면 자국 내 배터리 소재 제조기반 확대를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게 되고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내는 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더구나 LG화학이 배터리 공장을 짓는 테네시주는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 정치인이 주지사를 맡고 있다.
다만 신 부회장으로서는 미국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현지 투자 확대에 속도조절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정부 출범 뒤 IRA 혜택을 줄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LG화학은 이전 조 바이든 정부로부터 받던 첨단제조세액공제(AMPC)의 향방이 트럼프 정부 들어서 다소 불투명해지는 등 정책 측면에서 예측하기 힘든 변수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트럼프 정부는 IRA에 따른 전기차 구매 지원은 줄이되 자국 내 가치사슬 구축을 위해 배터리와 소재 산업에 대한 AMPC는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좀 더 우세하다. LG화학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상황이 전개될 공산이 커진 셈이다.
신 부회장은 최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에 참석해 기자들로부터 미국 투자 관련 질문을 받고 “여러 변화가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