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기독민주연합 당 대표가 12일(현지시각) 독일 노이브란덴부르크에서 열린 선거 캠페인 현장에서 지지자들과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 기후 대응에 가장 앞장서 왔던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도 기후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경기침체 장기화와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인해 국민의 관심사가 기후보다는 경제 회생 쪽에 쏠리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12일(현지 시각) 독일 도이체벨레는 2025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 가운데 기후 대응을 주요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없다고 보도했다.
독일은 '기후 대응 선진국'으로 평가받으며 국민의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관심도도 매우 높다. 2023년 기준 독일의 전체 전력 발전량 중 59.7%를 재생에너지에서 얻을 정도로 에너지 전환을 선도하고 있다.
유럽에서 독일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국가는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3개국과 포르투갈뿐이다.
도이체벨레는 이와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방의회 선거에서 기후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난 이유를 독일 경제의 장기 침체에서 찾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3년 독일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대비 0.3% 감소했다. 지난해에도 0.2% 감소한 것으로 추정돼 사실상 지난 2년 동안 경제가 역성장했다.
이에 독일 우익 정치인들은 경제 침체의 주요 원인으로 에너지 전환을 지목했다. 재생에너지로 가는 전환 과정에서 독일 국민과 산업체가 지불해야 하는 에너지 비용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기독민주연합(CDU) 당 대표는 도이체벨레 인터뷰에서 “우리 경제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석탄과 가스 발전소를 가동할 의향이 있다”고 강조했다.
기독민주연합은 중도우파 정당으로 이번 선거에서 원내 제1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렇게 되면 메르츠 대표는 차기 독일 총리가 된다.
이에 클라우디아 캠페르트 독일 경제연구소(DIW) 이코노미스트 겸 에너지 분석가는 도이체벨레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기후 대응과 경제 회복이 서로 대립하는 개념인 것처럼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보다 경제 회복을 우선시하는 기조는 독일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 붑커 훅스트라 유럽집행위원회 기후위원. <연합뉴스> |
앞서 9일(현지 시각) 블룸버그는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녹색당이 발의한 ‘환경 책임성 이니셔티브’가 반대 70%를 받아 부결됐다고 보도했다. 환경 책임성 이니셔티브는 각종 소비처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10% 수준으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법안이다.
투표에 앞서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국민 대다수는 경기침체 우려를 이유로 꼽았다.
이와 같은 여론은 스위스 정부의 차기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정부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1990년 대비 65% 감축으로 설정됐다.
스위스 언론 스위스인포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번 2035년 NDC가 지나치게 낮게 책정됐다는 비판이 많았다고 보도했다. 스위스의 2030년 NDC는 50% 감축이었는데 2035년 목표는 여기서 15%포인트만 추가된 수준이기 때문이다.
패트릭 호스페터 세계자연기금(WWF) 스위스 지부 기후 전문가는 스위스인포 인터뷰에서 “스위스는 매우 부유한 산업국가로서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며 “스위스가 부담해야 할 공정한 몫은 현재 목표보다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개별 국가를 넘어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국제 기후 대응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연합은 원래 올해 2월까지 제출해야 하는 2035년 NDC를 이날 현까지 제출하지 않고 있다.
붑커 훅스트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 기후위원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유럽연합의 정책 결정 주기가 유엔 계획과 어긋나 제출이 늦어지고 있다”며 “우리는 올해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준비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