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스콧 베신트 재무부 장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준금리를 낮추기 어려운 경제 상황인 만큼 고금리 시대에 적합한 투자방법을 익혀야한다는 견해가 나온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스콧 베센트 초대 재무부 장관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낮추려 하는 건 ‘기준금리’가 아니라 ‘국채금리’라는 언급을 내놨다.
파월의 연준더러 기준금리를 인하하라고 강하게 압박한 트럼프와 결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베센트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 인하에 관심이 많다고 언급했다.
국채금리를 눌러 시장금리를 낮추겠다는 것이 베센트의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재무부가 국채금리를 낮추기 위해 국채발행을 늘리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시장에서 국채수익률이 하락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다시 국채수익률이 무섭게 상승하고 있다.
문제는 베센트의 계획이 실행되기가 너무 어렵다는 사실이다. 미국 정부의 천문학적 재정적자로 인해 국채발행 통제는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트럼프가 대규모 감세를 공언한 터라 더욱 그렇다. 글로벌 금리를 사실상 좌우하는 미국의 국채금리가 떨어지기 어렵다는 것은 한국도 ‘고금리’와 상당 기간 ‘동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시장에는 나쁜 뉴스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 인하를 지렛대 삼아 시장금리를 낮추겠다는 미 재무부
블룸버그와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베센트 장관은 지난 5일(현지시간)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촉구에 대한 질문에 "그와 나는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연준에 기준금리를 인하하라고 촉구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베센트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를 낮추기를 원하지만, 연준에 금리 인하를 요청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규제 완화를 통해 경제에 더 많은 민간 투자가 유입되면 "(높은) 금리와 달러화(강세)는 스스로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센트의 발언은 그간 연준에 기준금리 인하를 강하게 요구한 트럼프의 태도와는 상이한 것으로 시장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재무부가 국채금리 인하를 유도해 시장금리를 끌어내리려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국채발행 늘리지 않겠다는 소식에 하락한 국채수익률
로이터에 따르면 5일 기준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전장 대비 8.5bp(1bp=0.01%포인트) 급락하며 4.428%에 거래됐다. 장중 한 때 수익률은 4.421%까지 밀렸다. 이날 보인 국채 수익률은 지난해 12월17일 이후 최저치다. 30년물 수익률도 10bp 가까이 하락해 4.649%를 나타냈고, 정책 금리에 가장 민감한 2년물 수익률 역시 2.5bp 떨어진 4.189%에 거래됐다.
장단기 국채 수익률이 일제히 떨어진 원인으로는 공급관리자협회(ISM)가 발표한 1월 서비스업 공급관리자지수(PMI)가 52.8로 전월보다 하락한 점, 관세전쟁에 따른 경기 둔화 점망이 불거진 점,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가 예상을 넘어선 점 등이 꼽힌다. 하지만 결정적인 변수는 미 재무부가 내놓은 국채발행계획(QRA)이었다.
미국 재무부는 매 분기마다 향후 3개월간 국채 발행 계획을 발표하는데, 여기에는 발행할 국채의 종류와 규모, 만기 도래하는 기존 국채의 차환 계획, 신규 자금 조달 필요액 등이 포함된다. 통상 2월과 5월, 8월, 11월 초 발표된다. 이는 채권시장의 수급은 물론이고 달러 환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투자은행(IB) 업계는 베센트 장관이 장기물 발행을 확대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재무부는 2~4월 10년물과 20년물, 30년물 등 장기물 국채 발행 물량을 이전 3개월인 2024년 11월~2025년 1월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또한 월가가 신경을 곤두세웠던 5월 이후에도 재무부는 장기물 국채 발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선 장기물 발행 물량이 적어도 2025년 말까지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국채수익률도 당연히 수급에 영향을 받는다. 장기물 발행량이 폭증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이 빗나가자 국채수익률이 일제히 하락한 건 자연스럽다. 트럼프와 재무부가 국채발행을 최대한 억제하려 하는 건 시장금리를 하락시키기 위함이다. 국채금리가 시장금리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악몽처럼 괴롭힐 미국의 천문학적 재정적자
문제는 재무부가 올해는 몰라도 향후 국채발행을 크게 늘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트럼프가 공약한 법인세·개인소득세 감세가 현실화할 경우 앞으로 10년간 9조1500억 달러(약 1경2600조 원)가량의 재정 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36조 달러(약 5경2990조 원, 2024년 기준)에 달하는 미국의 국가 부채가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불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미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부채는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99%에 육박했다. 더 충격적인 건 2054년에는 GDP의 171%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이다. 미 연방정부의 2024 회계연도 순이자 지급액은 8817억 달러(약 1207조 원)로 GDP의 3.06%에 이른다. 1996년 이후 28년 만에 최고치이자 사상 처음으로 국방 예산(약 8741억 달러)을 초과했다.
올해 연 이자는 1조2천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쯤 되면 국채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악순환의 늪에 빠진 셈이다.
이미 국방비를 초과하는 돈을 국채이자로 지불해야 하는 데다, 국가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국 정부가 국채발행을 억제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트럼프가 대규모 증세를 하거나 정부지출을 상상을 초월할 수준으로 감소시켜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이미 시장은 이런 현실을 간파했다. 베센트의 발언 및 국채발행계획에 잠시 떨어졌던 미국의 국채수익률은 10년물이 현지시각 2월11일 기준 4.5190%, 30년물이 4.7330%, 2년물이 4.2810%를 각각 기록했다. 맹렬하게 상승 중인 것이다. 시장은 미 국채발행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셈이다.
고금리 시대와 동행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
국가부채 관점에서만 보면 트럼프 2기는 1기에 비해 크게 불리하며, 사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도 마땅치 않다. 시장금리를 끌어내릴 묘책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트럼프가 밀어붙인 관세전쟁과 반이민정책 등은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는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이래저래 시장금리가 내려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부동산을 포함해 자산에 투자하려는 시장참가자들은 코로나 펜데믹 당시의 저금리 신화를 잊을 필요가 있다. 고금리는 우리 곁에 제법 오래 머물 가능성이 높다. 고금리 시대의 투자법을 익혀야 할 때다. 저금리 시대에는 모든 자산이 뜨지만, 고금리 시대에는 몇몇 자산만 상승하는 법이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땅을 둘러싼 욕망과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토지정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투기공화국의 풍경’을 썼고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을 함께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