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재명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지난 6월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투자계획 발표 후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최근 발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는 역대 최대 규모의 산업정책이다.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3대 축으로 삼아 향후 10년간 1600조 원 가량의 기업의 지역 투자를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한국을 ‘대체불가 반도체 강국’, ‘피지컬 AI 글로벌 1위 국가’, ‘AI 인프라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반도체 분야에만 800조 원, AI 데이터센터 분야에 550조 원, 피지컬 AI 분야에 수백조 원 규모의 민간 투자가 추진된다.
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지역 균형발전의 새로운 모델이라고 설명한다. 정부 부처, 공공기관 이전이나 혁신도시 조성과 같은 과거 방식이 아니라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지역 산업을 육성하고,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수도권 집중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했지만 수도권 인구 비중은 여전히 절반을 넘고 있으며, 지방 소멸 위기 역시 해소되지 못했다. 지역을 살리고 수도권 집중화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기업이 움직여야 한다는 데 이의가 없다.
문제는 이번 메가 프로젝트가 과연 지역 균형발전인가 하는 점이다. 정부가 제시한 투자 지도를 보면 혜택은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다. 서남권에는 약 896조 원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되고, 충청권에는 반도체 패키징과 AI 인프라가 집중 배치된다. 영남권은 피지컬 AI와 로봇 산업의 거점으로 육성된다.
반면 강원, 제주, 전북 등은 핵심 투자권역에서 소외돼 있다. 정부는 전국적 파급효과를 강조하지만 투자와 일자리, 인프라가 집중되는 지역은 영호남 등 특정 지역에 쏠리고 있다. 균형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또 다른 지역 편중 발전이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투자의 상당 부분이 반도체, 특히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남 광주에 총 800조 원을 투자해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지와 팹 4기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통해 수도권 용인 클러스터에 이은 ‘제2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이번 정부 집권 기간 내 구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 계획은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다. 우선 현실성 문제다. 정부는 광주 군공항 부지를 활용하고, 빠르게 관련 인프라를 제공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가동할 계획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광주 군공항 이전은 수십 년 동안 지역 갈등이 반복돼 온 난제다. 부지 조성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초대형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안정적 전력 공급망과 대규모 용수 확보가 필수다.
신규 발전소와 송전망 건설, 정수시설 확충, 환경영향평가, 교통 인프라 구축까지 고려하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데도 족히 2년 이상 걸린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실제 생산이 가능한 수준의 반도체 공장이 완공되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 ▲ 삼성전자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 내부 모습. <삼성전자> |
더 중요한 것은 시장 위험이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AI 투자 열풍 덕분에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 생성형 AI 서비스 확산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을 비롯한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AI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에 올해만 1천조 원이 넘는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그 결과 메모리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사상 최대 수준의 수익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호황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대표적 경기순환(사이클) 산업이다. 과거에도 수차례 반복됐다.
수요가 폭증하면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증설에 나선다. 그러나 공장이 완공되는 시점에는 공급 과잉이 발생하고 가격은 급락한다. 그 결과 수년간 적자가 이어지고 투자비 회수도 어려워진다.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사업은 바로 이 반도체 사이클의 정점에서 추진되고 있다. 지금 시장이 좋다고 해서 5년 뒤에도 상황이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보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AI 인프라 구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메모리 공급 능력이 대폭 확대되면 현재의 공급 부족은 공급 과잉으로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 메모리 가격이 하락하고 기업 수익성이 악화될 경우 새롭게 건설된 팹의 경제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이 국가 주도로 첨단 메모리 반도체 생산공장 건설을 대폭 늘리고 있다. 중국 D램 제조사 CXMT는 올해 세계 D램 시장에서 점유율 10%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중국 YMTC는 낸드플래시 메모리에서 이미 20%대 점유율로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5년 내 중국 발 메모리 반도체 공급과잉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800조 원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투자 규모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규모다. 만약 시장 전망이 빗나가고 반도체 사이클이 꺾인다면 피해는 기업만의 몫이 아니다. 정부 역시 막대한 행정력과 정책 자원을 투입한 메가프로젝트 실패에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가 지역 투자를 유도하고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취지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그 방향이 맞다. 공공기관, 공기업 이전만으로는 지방을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이 이미 증명됐다. 지역에 기업이 들어오고,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지역 경제가 활기를 찾고, 수도권 집중화 문제가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산업정책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는 지나치게 반도체 중심적이며,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다. 정치적 성과를 조기에 창출하려는 조급함이 반영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특정 지역에 대한 대규모 투자 결정이 경제와 산업 논리보다 정치 논리에 의해 좌우된다면 그 부작용은 결국 국가 전체가 떠안게 된다.
1600조 원 메가프로젝트는 대한민국 산업사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특정 산업과 특정 지역에 과도한 자원을 집중한 위험한 도박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10년 후, 20년 후에도 지속 가능한 지역산업 육성전략과 이를 뒷받침하는 치밀하고도 체계적인 정책지원이다. 또 특정 산업과 지역 쏠림이 없는 균형 잡힌 지역 발전의 청사진이다. 김승용 산업&IT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