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반도체 사업 위기에 사법·입법 리스크까지 짊어지게 되면서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입법 리스크’ 부담까지 커지고 있다.
22대 국회가 보험업법 개정안, 이른바 ‘삼성생명법안’을 재발의하면서 이 회장의 삼성그룹 지배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다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경쟁력 약화와 미국의 정책 변화 등 국내외 경영 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경영·지배구조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어 이 회장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18일 재계 취재를 종합하면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지난 17일 ‘삼성생명법안’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가 계열사 주식을 기존 ‘취득원가’가 아닌 ‘시장가격’ 기준으로 총 자산의 3%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한 계열사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해 보험회사의 건전성을 해치는 일을 방지하자는 취지다.
삼성생명은 현재 삼성전자 주식 8.51%를 보유하고 있다.
취득원가로는 5401억 원에 불과하지만, 시장가격으로 평가하면 18일 종가 기준 약 29조 원에 이른다. 2024년 기준 삼성생명의 총자산은 319조8천억 원 수준이다.
만약 보험업업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삼성생명은 총 자산의 3%를 제외한 약 19조 원의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이재용 회장이 최대 주주로 있는 삼성물산은 삼성생명 지분 19.34%, 삼성전자 지분 5.01%를 보유하고 있다. 또 삼성생명(8.51%)과 삼성화재(1.49%)는 삼성전자 지분 10%를 갖고 있다.
‘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기타계열사’ 형태의 지배구조가 구축돼 있는 것이다. 삼성 오너가와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물산 등 관계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현재 20.07%에 이른다.
하지만 보험업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이들의 지분율은 15% 이하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안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생명법안은 2014년 19대 국회에서 첫 발의된 뒤 20대,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재발의됐다”며 “삼성이 현행 지배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삼성 오너일가의 지배력 유지 방안으로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으로부터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는 시나리오, 삼성생명이 매각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전자가 매입하는 시나리오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두 방안 모두 오너일가의 지배력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4년 2월3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최근 반도체 위기론 등 사업 측면에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만큼, 지배구조 문제까지 수면 위로 올라온다면 이 회장이 경영전략을 세우는 데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오랫동안 성장 주역이었던 반도체 사업에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메모리사업부는 경쟁사에게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도권을 넘겨준 데다, 파운드리와 시스템LSI사업부는 2024년 약 5조1800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회사 전체 수익성의 발목을 잡았다.
여기에 창신메모리(CXMT), 양쯔강메모리(YMTC) 등 중국 업체의 추격이 거세지면서 삼성전자의 기존 시장점유율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다가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 예고, 반도체 보조금 조건 변화 가능성 등 예측할 수 없는 요인이 늘어나고 있어, 이 회장의 리더십과 경영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 회장이 아직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합병' 관련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데다, 현 지배구조에서는 지배력이 흔들릴 가능성도 내재돼 있는 만큼, 당장 경영 전면에 나서 문제를 해결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이 회장은 지속되는 사법 리스크로 당초 기대를 모았던 올해 3월 등기이사 복귀도 무산됐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과거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대외적 불확실성도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이 회장이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아직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만큼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