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5-02-06 15: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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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우클릭 행보에 나서면서 당 내부에서 비판이 일부 의원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을 이루는 ‘포용적 성장론’에서 균형추가 ‘성장’으로 기울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이재명 대표가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 김병욱 전 의원(맨 왼쪽부터),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이춘석 의원, 주형철 먹사니즘 본부장, 김영호 의원이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집권플랜본부 신년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민주당 집권플랜본부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한민국 성장 전략'을 주제로 신년 세미나를 열었다. 집권플랜본부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당대표에 연임한 뒤 정권교체를 위해 정책·조직·전략을 미리 마련해 두자는 취지에서 만든 기구다.
집권플랜본부 세미나의 뒤에는 ‘성장은 민주당’이라는 문구가 담긴 현수막이 걸렸다. 이재명 대표가 연일 강조하고 있는 경제성장 동력 회복을 강조한 뜻으로 읽혔다.
주형철 K-먹사니즘 본부장(전 한국벤처투자 CEO)은 이날 '성장 우선'(Growth First)을 주제로 현재 1%대인 경제성장률을 ‘5년 안에 3%대’, ‘10년 안에 4%대’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미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AI)·바이오(Bio)·문화(Culture)·방산(Defense)·에너지(Energy)·식량(Food) ‘ABCDEF’ 분야에서 유니콘 기업 100개와 헥토콘 기업(시가총액 100조원 이상) 6개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권플랜본부는 기업 육성에 초점을 뒀지만 자신들의 전략은 ‘민간과 정부의 공동 주도·정부의 직접 지원’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주도·정부의 간접 지원’이라는 보수진영의 성장 전략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성장을 우선시한 실용주의 노선을 두고 최근 보수진영의 ‘기업주도 성장’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 이에 대응하는 모습으로 읽힌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일 국회에서 게오르크 슈미트 주한독일대사를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민주당 일각에서는 중도층으로의 외연확장을 위한 이 대표의 ‘실용주의’, 또는 ‘우클릭’ 행보를 두고 비판적인 시선이 나오고 있다. ‘분배’를 우선시 해왔던 민주당의 정체성에서 벗어나지 않았냐는 것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5일 MBN에서 이 대표의 실용주의 노선을 두고 “실용주의가 목표이자 가치가 될 수는 없다”며 “우리(민주당)가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은 정체성을 분명히 유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집권플랜본부 총괄위워장인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세미나에서 “성장과 분배, 성장과 복지의 이분법적 관계가 아닌 성장 그 자체의 회복을 위한 전략의 구체적 검토를 하겠다”며 “민주당이 발전시켜온 격차해소·공정·포용·복지·분배의 문제의식은 당연히 유효하고 심화돼야하며 더 큰 틀에서 종합적으로 다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호 의원도 “민주당은 성장을 한 번도 소홀히 한 적이 없고 분배를 조금 더 강조한 것”이라며 “(하지만) 성장 없는 분배가 어디 있겠나”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동력이 떨어진 상태라 성장 전략에 초점을 둘 뿐 소득 분배나 복지정책을 후순위로 미룬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당장 ‘반도체산업 주 52시간 근로 적용 예외’ 문제가 이 대표에게 첫 번째 시험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지난 4일 민주당 주최 반도체특별법안 정책토론회에서 고소득 연구근로자의 자발적 동의 하에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 예외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이번 사안은 이 대표의 대표적 ‘우클릭’ 행보로 평가되고 있다.
5선 중진인 이인영 의원은 전날인 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대표의 52시간 특례 도입 움직임을 겨냥해 “실용도 아니고 퇴행일 뿐”이라며 “단순한 우클릭, 기계적 중도 확장은 오답이며 민주당이 쌓아온 ‘민주당다움’만 허물어진다”고 날을 세웠다.
근로기준법을 다루는 상임위원회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우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연구개발 노동자를 쥐어짠다고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생기는 게 아니다”며 “그런 후진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부터가 경쟁력 확보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조기대선이 치러질 때 이 대표가 지지를 얻어야 하는 노동계는 더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연일 성명 등을 통해 반도체 산업 주52시간제 예외 검토에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전통적 진보 진영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이 대표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 대표는 주 52시간 예외를 주장하는 기업들의 요구가 합리성이 있다고 보고 있지만 노동계를 비롯한 전통적인 진보 지지층의 요구도 쉽게 저버릴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셈이다.
당 일각에서는 이 대표의 우클릭 행보를 민주당의 역동성을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6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권플랜본부 관계자는 “이 대표의 실용주의 노선을 향한 건전한 비판은 오히려 정책적 토론이라 좋다고 본다”며 “민주당이 성장을 얘기하고 국민의힘이 복지를 얘기하면 국가적으로도 반발짝 더 나갈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물론 이 대표의 실용주의 노선을 두고 대선 주자들이 본격적으로 ‘이념적 정체성’을 문제 삼는다면 큰 논란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대표의 우클릭 행보 비판에 관한 질문에 “민주당은 좌우를 떠나 우리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책들을 제기해왔고 실현하려 노력해왔다”며 “(반도체산업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도) 산업계의 필요가 있으니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정책토론을 한 것이지 이념으로 재단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