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김정수 삼양식품 대표이사 부회장의 경쟁 상대로 라면 종주국인 일본의 기업들이 떠오르고 있다.
삼양식품은 연매출 기준 ‘1조 클럽’에 가입한 지 불과 2년 만에 연매출 2조 원까지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경쟁사인 농심이 연매출 1조 원에서 2조 원까지 가는 데 12년이 걸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상당히 빠른 속도다.
▲ 김정수 삼양식품 대표이사 부회장이 일본 라면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한 작업들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양라운드스퀘어> |
삼양식품 매출 성장률과 영업이익률은 라면 종주국인 일본에서 1, 2위를 달리고 있는 라면기업들까지 압도하고 있는데 앞으로 김 부회장이 이들과 실적 격차를 좁히는 속도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9일 한국과 일본 라면기업들의 매출 흐름을 보면 삼양식품이 일본 라면 기업들과 견줄 만한 실적을 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매출만 놓고 보면 삼양식품은 일본 라면업계 1·2위인 닛신식품홀딩스와 도요수산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올해 연결기준으로 닛신식품홀딩스 매출은 7329억 엔(7조2253억 원), 도유수산 매출은 5058억 엔(4조6745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올해 삼양식품 매출 전망치가 2조788억 원인 것과 비교하면 2~3배 이상 차이가 난다. 매출 차이로만 보면 삼양식품이 따라잡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매출 성장률과 영업이익률을 비교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해 삼양식품 매출은 2023년과 비교해 43.3%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농심은 1.1%, 닛신푸드홀딩스 6.6%, 도요수산이 5.9%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전망도 다르지 않다. 올해 삼양식품 매출은 지난해 실적추정치보다 20.7%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닛신푸드홀딩스 매출은 3.6%, 도요수산 매출은 3.8%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삼양식품은 2023년에 사상 첫 연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올해 매출 2조 원을 넘으면 2년 만에 ‘1조 클럽’에서 ‘2조 클럽’으로 소속을 바꾸게 된다. 농심이 처음으로 매출 1조 원을 돌파한 것은 1998년, 2조 원을 넘은 것은 2010년이다.
농심이 12년에 걸쳐 이룬 성과를 삼양식품은 2년 만에 따라잡으려고 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매출뿐 아니라 영업이익을 내는 데 있어서도 좋은 흐름을 가져가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삼양식품 영업이익률은 20% 안팎으로 분석됐다. 닛신푸드가 10%, 도요수산이 15% 정도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농심 영업이익률이 5% 수준으로 가장 낮다.
삼양식품은 높은 매출 성장률과 영업이익률을 바탕으로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농심 영업이익을 뛰어 넘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삼양식품이 3475억 원, 농심이 2172억 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됐다.
2023년과 비교해 삼양식품 영업이익은 135.6% 늘어나는 반면 농심 영업이익은 2.4% 증가하는 데 그쳤을 것으로 추산됐다.
삼양식품의 고성장 기조는 국내 라면기업에게 자극을 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농심과 오뚜기 등이 모두 해외 사업 확대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삼양식품의 성과에서 받은 자극의 결과물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 라면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닛신식품이 삼양식품을 견제하고 있다는 것은 유사제품 출시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닛신식품은 2023년 4월 삼양식품 ‘까르보 불닭볶음면’과 유사한 제품을 일본에서 출시했다. 한글로 볶음면이라고 적혀 있고 볶음면 포장은 까르보 불닭볶음면과 같은 분홍색이다.
닛신식품은 세계 최초 인스턴트 라면인 ‘치킨라멘’과 세계 최초 컵라면인 ‘컵누들’을 상용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스턴트 라면을 세상에 내놓은 일본 라면업계 1위 기업이 삼양식품 제품을 그대로 베껴 내놓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 닛신식품은 2023년 4월 삼양식품 ‘까르보 불닭볶음면’과 유사한 제품을 일본에서 출시했다. 한글로 볶음면이라고 적혀 있고 볶음면 포장은 까르보 불닭볶음면과 같은 분홍색이다. |
삼양식품과 농심이 해외에서 좋은 흐름을 보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라면업계는 보고 있다. 2023년만해도 삼양식품과 농심의 합산 해외매출은 닛산식품·도요수산 해외매출의 절반 수준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70% 가까이까지 따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수 부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전략을 살펴보면 삼양식품이 일본 라면기업에게 주는 긴장감의 강도는 앞으로 더 거세질 것으로 여겨진다.
삼양식품이 해외 첫 생산 기지로 중국을 선택한 것도 본격적으로 글로벌 라면 기업들과 경쟁하겠다는 김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읽힌다.
국내 기업 가운데는 농심, 오리온, SPC, 대상 등이 중국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해외 첫 생산 공장을 중국에 짓는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에는 오랫동안 쌓아온 관계를 중시하는 ‘꽌시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이 이런 점을 모를리 없음에도 중국에 첫 해외 공장을 짓기로 결정한 데는 중국 라면 시장 규모가 전 세계 1위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중국 라면 시장 규모는 180억 달러 정도로 파악됐다. 2위인 일본 시장의 3배 정도 되는 수준이다. 지난해 3분기까지 삼양식품 누적 매출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중국 시장이다. 중국에서의 매출이 약 25%를 차지한다.
하지만 중국 시장에서 삼양식품 라면의 점유율은 2%가 채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만큼 삼양식품에게는 ‘기회의 땅’인 것이다.
삼양식품은 2027년부터 중국 공장을 가동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중국 공장에서 중국 내수 시장 물량을 생산하기 시작하면 밀양 제1공장과 곧 완공될 밀양 제2공장에서는 미국과 유럽 시장 공급 물량 생산에 집중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는 삼양식품 라면이 비싼 가격에 판매되기 때문에 마진이 높은 시장으로 평가된다.
김 부회장이 중국 공장을 점 찍은 이유도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해외에서의 성장세에 박차를 가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중국 공장이 성과를 낸다면 삼양식품의 실적도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증권가 곳곳에서 나온다.
김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글로벌 네트워크와 제품생산 역량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가장 잘하는 것을 더 잘하도록 집중해 어떤 경쟁자도 따라올 수 없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생산량 증대, 해외 공장 진출, 생산 현지화 실현을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와 제품생산 역량을 지금보다 강력히 내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