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팻 겔싱어 인텔 CEO 사임을 계기로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 분사 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는다.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TSMC에도 영향이 미칠 공산이 크다. |
[비즈니스포스트] 인텔이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 사임에 따라 반도체 설계와 제조 사업의 분사를 추진하는 데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운드리 사업이 별도 회사로 분할되면 투자 유치와 고객사 수주에 유리해질 수 있어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TSMC도 앞으로 이뤄질 변화에 촉각을 기울여야만 한다.
투자정보지 인베스토피아는 3일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보고서를 인용해 “인텔 CEO의 갑작스런 사임 발표로 파운드리 분사 추진에 무게가 실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팻 겔싱어 전 CEO는 인텔 이사회 요구에 따라 자리에서 물러났다. 장기간 이어진 실적 부진과 재무 악화, 반도체 기술 경쟁력 약화에 책임을 진 셈이다.
인텔은 당분간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비롯한 기존 경영진의 임시 CEO 체제로 운영된다. 이사회는 곧바로 후임자를 찾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인텔 이사회가 팻 겔싱어에 후임 인선 작업을 도와달라고 요청했으나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인텔이 직면한 여러 위기를 고려하면 후임 인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재무 개선과 기술 경쟁력 회복을 비롯한 쉽지 않은 과제가 산적해 있어서다.
현재 인텔은 창립 이래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 성장에 대응이 늦었고 반도체 제조 경쟁력도 크게 뒤처지기 때문이다.
팻 겔싱어 전 CEO가 파운드리 사업에 무리한 투자 목표를 제시하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온 반면 실제 성과를 증명하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팻 겔싱어는 삼성전자 및 TSMC와 파운드리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겠다는 전례 없는 목표를 세웠다”며 “이는 결국 수많은 문제만을 남긴 선택”이라고 보도했다.
따라서 인텔 차기 CEO가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는 반도체 설계와 제조 사업이 한정된 투자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파운드리 사업 분사 가능성도 이러한 배경에서 힘을 얻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팻 겔싱어는 반도체 설계 및 파운드리 동시 운영을 강력히 주장해 온 인물”이라며 그의 사임으로 자연히 사업 분할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인텔은 이미 두 사업을 분리하려는 장기 계획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팻 겔싱어 전 CEO는 이를 추진할 시점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보수적 태도를 보여 왔다.
파운드리 사업이 별도 회사로 분리되면 기업공개(IPO)나 지분 매각으로 반도체 설비 투자와 미세공정 기술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더 유리해진다.
인텔의 경쟁사에 해당하는 반도체 설계 기업들이 인텔 파운드리에 위탁생산을 맡길 때 기술 유출과 관련한 우려도 어느 정도 덜 수 있어 고객사 수주에도 긍정적이다.
TSMC가 인텔이나 삼성전자와 달리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설계해 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 파운드리 시장에서 압도적 지배력을 차지한 배경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인텔이 파운드리 분사로 자금 유치 방안을 마련해 본격적으로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 고객사 주문 확보에 속도를 낸다면 삼성전자와 TSMC에 압박이 커질 수 있다.
최근 인텔이 재무 악화로 파운드리 투자를 축소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반도체 제조 및 패키징 기술력은 경쟁사를 충분히 위협하는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어서다.
다만 미국 정부가 최근 인텔에 79억 달러(약 11조1천억 원) 보조금 지급을 확정지으며 체결한 계약 내용이 인텔 파운드리 분사 계획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계약 내용에 따르면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을 분사하더라도 일정 비중 이상의 지분을 보유해야 한다. 지분 매각이나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에 제약이 걸린 셈이다.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을 완전히 매각할 가능성도 한때 힘을 얻었지만 이런 시나리오도 사실상 힘을 잃게 됐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인텔이 자체 전략 수립과 사업구조 개선, 재무위기 해결과 경쟁 등 여러 측면에서 고전하고 있어 당장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새 CEO 선임을 계기로 반도체 시장에서 선두 지위를 되찾기 위한 효과적 전략이 추진된다면 인텔의 부진을 기회로 삼는 여러 경쟁사에 다시 위협이 될 수 있다.
내년 초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도 변수로 꼽힌다. 인텔은 미국 시스템반도체 기술 주도권 확보와 자급체제 구축에 가장 중요한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가 인텔에 대규모 보조금 지급을 결정한 데 이어 트럼프 정부에서 지원 정책이 더 강화된다면 삼성전자와 TSMC도 경쟁을 더욱 의식해야만 한다.
조사기관 울프리서치는 블룸버그에 “인텔 CEO 사임은 과감한 새 사업 전략이 추진될 수 있는 문을 열었다”며 “이는 안팎에서 꾸준히 요구하고 있던 변화”라고 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