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정부가 자국 반도체 제조산업 육성을 목표로 라피더스와 대만 TSMC의 공장 투자를 모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TSMC와 소니, 덴소 일본 반도체 합작법인 JASM 건물 정면 이미지. |
[비즈니스포스트] 일본 정부가 반도체 제조산업 육성을 위해 자국 기업과 해외 반도체 제조사를 모두 강력하게 지원하는 ‘투트랙’ 전략에 힘을 싣고 있다.
단기간에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라피더스의 2나노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과 대만 TSMC의 일본 내 투자 확대가 모두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읽힌다.
24일 닛케이아시아를 비롯한 외신을 종합하면 일본 정부는 라피더스에 2천억 엔(약 1조6115억 원)를 추가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주요 기업들이 출자해 설립한 라피더스는 2027년 홋카이도 공장에서 2나노 반도체를 양산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기술 개발과 생산 투자를 진행 중이다.
라피더스가 정부에서 지원을 약속받은 금액은 이미 9200억 엔(약 8조3339억 원)에 이른다. 자국 반도체 기술 경쟁력 강화에 공격적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닛케이아시아는 일본 정부가 관련 부처를 통해 라피더스에 추가로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내년 중 의회에 제출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라피더스는 목표한 시점까지 2나노 반도체 양산체계 구축을 마무리하기 위해 총 5조 엔(약 42조3천억 원)의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2나노 파운드리 고객사를 확보하고 실제 생산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사실상 매출을 올릴 경로가 없기 때문에 모든 비용을 외부 투자로 조달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2022년 라피더스 설립 당시부터 자국 기업의 투자를 꾸준히 유도해 왔다. 그러나 현재까지 기업들의 출자는 73억 엔(약 661억 원) 안팎에 그치고 있다.
소프트뱅크와 미즈호은행 등이 내년 하반기 중 라피더스 지분 확보를 계획하고 있지만 규모는 250억 엔 안팎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결국 라피더스가 2나노 파운드리 양산까지 필요한 4조 엔(약 36조2천억 원) 상당의 추가 비용은 대부분 일본 정부 재원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라피더스가 이를 통해 연구개발 및 시설 투자 여력을 확보해도 실제로 2027년까지 2나노 반도체 생산을 시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시각이 많다.
▲ 일본 홋카이도 치토세에 위치한 라피더스 사옥. |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 경험이 전무한 일본 기업이 파운드리 선두 기업인 TSMC나 삼성전자와 기술 격차를 2년 안팎으로 줄이겠다는 공격적 목표를 세웠는데 달성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최근 2030년까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분야에서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보조금으로 6조 엔을 투자하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발표했다.
대부분의 자금은 라피더스를 키워 TSMC와 삼성전자, 인텔이 경쟁하는 첨단 파운드리 시장에서 일본도 본격적으로 경쟁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들일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정부는 자국 반도체 기업을 키우는 동시에 자체 공급망 구축을 위해 TSMC의 현지 공장 투자를 적극 유도하는 정책도 펼치고 있다.
라피더스만으로 자국에서 필요한 반도체 수요를 감당하기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대만 TSMC는 올해 안에 일본 구마모토에 설립한 첫 번째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가동을 앞두고 있다. 최근 두 번째 공장을 신설하는 계획도 확정했다.
일본 정부가 두 공장 건설에 모두 1조2천억 엔(약 10조8700억 원) 상당의 보조금 지급을 약속하며 공격적으로 투자를 유치한 데 따른 결과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TSMC가 일본에 세 번째 반도체 공장도 건설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관련 인프라 구축과 공급망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TSMC에 공장 건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추가 보조금 논의도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인 라피더스와 대만 TSMC를 모두 지원해 자급체제를 강화하는 전략은 지정학적 리스크와 보호무역 강화에 따른 악영향을 피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일본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으며 경쟁 국가에 완전히 주도권을 내준 반도체 산업에서 다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길을 찾으려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모두 막대한 정부 지출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중장기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전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를 놓고 회의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시바 총리는 정부 출자가 앞으로 더 많은 민간 투자를 유도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기 바라고 있다”며 “다만 세금을 인상하지 않고 자금을 확보할 구체적 방법은 여전히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