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이 8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벼랑 긑 응급의료, 그들은 왜 탈출하는가?'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선의로 포장된 성급한 정책이 의료현장을 망가뜨리고 그 피해는 온전히 국민과 환자들에게 돌아갑니다.”
소아응급의학과 전문의 출신인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8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주최한 ‘벼랑 끝 응급의료, 그들은 왜 탈출하는가?’ 토론회에서 정부의 응급의료 정책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의원은 "정부의 '응급실 이송거부 금지' 방침은 환자를 치료하고 싶어도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을 무시한 정책이다"며 "의사가 대응하기 불가능한 상태에서 강제된 환자 수용은 의료소송의 위험으로 이어졌고 결국 응급실 전문인력이 현장을 떠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소아응급의료 전문의 출신으로서 응급의료시스템 붕괴위기에 문제점을 느낀 이 의원이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와
이준석 의원, 천하람 원내대표 등 개혁신당 원내외 지도부가 모두 참석해 의료정책 혁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특히 개혁신당 당대표를 지낸
이준석 의원은 "응급 의료인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며 "응급의료 환경이 열악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의료사고들을 마치 의도가 있는 것처럼 의사들을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와 같은 자극적 용어로 악마화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에 개탄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번 토론회가 의료인들이 허심탄회하게 현장의 고민을 정치인과 국민들에게 전달해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발제를 맡은 류정민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의료진의 현장이탈 원인의 주된 요인으로 처벌위험을 가장 먼저 꼽으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류 교수는 지속적 인력부족으로 인해 만성피로를 느끼는 의사들이 자부심으로 응급의료 시스템을 지탱해왔는데 의료사고로 인한 처벌위험이 굉장히 부각되면서 현장을 이탈하는 의료인력이 늘었다고 지적했다.
▲ 8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주최한 ‘벼랑 끝 응급의료, 그들은 왜 탈출하는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
처벌위험이 부각되면서 응급의료분야에 지원하는 인력은 부족해지고 부족한 인력 속에서 사고위험이 더 가중되고 있다고 짚었다.
류 교수는 "환자를 위급상황에서 살려내는 것을 자부심으로 일해왔는데 처벌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며 "환자를 살리지 못한 것을 죽인 것과 맞먹게 평가하는 법률 제도가 너무나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하면서 류 교수는 살짝 울먹여 토론회장을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류 교수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의사의 기소율은 일본의 14배, 영국의 580배, 독일의 26.6배로 파악된다. 더구나 형사절차 진행을 먼저 한 뒤 그 자료를 토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이 이중적으로 이뤄져 의료진의 부담은 배가되고 있다고 류 교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발표를 맡은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응급의료 현장이탈 문제가 최근 일어난 일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환경 개선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미 5~10년 전부터 응급의학 전문의들 가운데 많은 인력이 개원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 회장은 "10여년 전부터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는 존재했다"며 "이는 응급의료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배후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인데 단기간에 개선점을 찾기가 어려우니 의대증원만 강조하는 탁상공론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응급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진의 처벌위험을 줄여주는 등의 정책은 눈에 띄는 성과를 보기 어려우니까 정책결정에서 소외되고 있다"며 "마음 놓고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의료진을 뽑아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이성우 대한응급의학회 정책이사도 이런 지적에 동의하면서 개선점으로 △응급의료기관의 종류별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규정 △응급환자의 상태에 맞게 적절한 응급센터 분류 △응급의학에 대한 지속적 지원 및 중증응급환자의 최종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배후 인프라(진료과) 지원 △지역별 응급의료 자원과 특성을 감안한 시스템 정립 등을 제시했다.
이 정책이사는 "응급의료기관의 현실적 자원이 유한함을 인식하고 치료에 대한 보상이 적절하게 배분되고 지원되어야 일선 현장에서도 힘을 낼 수 있다"며 "또한 응급의료를 뒷받침하고 최종치료하는 진료과를 비롯한 인프라에 대한 지원이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