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면세업계 1위 기업인 롯데면세점이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한 것은 면세산업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롯데면세점과 업계 1·2위 싸움을 하는 신라면세점뿐 아니라 후발주자인 신세계면세점과 현대백화점면세점도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 롯데면세점이 면세업황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구조조정 카드를 꺼냈다. 사진은 롯데면세점 김포공항점 모습. <롯데면세점> |
26일 면세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코로나19 엔데믹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면세업황의 불황이 쉽게 극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면세업은 기본적으로 여행객의 수요를 바라보는 산업이다. 여행객이 많아야만 시내면세점이나 공항면세점을 방문해 면세 상품을 사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시기에 면세업계가 타격을 받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늘길이 막히다 보니 개별관광객을 끌어올 수 없었고 이런 이유 때문에 사실상 제 살을 깎아먹으면서까지 중국 보따리상(따이궁)을 높은 수수료를 주고 유치할 수밖에 없었다.
증권가는 코로나19만 진정되면 면세업계의 사정이 나아진다고 봤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살펴보면 면세업계 불황의 골은 여전히 깊다.
롯데면세점은 1분기에 매출 8196억 원, 영업손실 280억 원을 봤다. 2023년 1분기보다 매출은 8.7% 늘었지만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4분기부터 2개 분기 연속으로 적자를 봤다.
롯데면세점이 공식적으로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가겠다고 선포한 배경에는 이런 이유가 자리 잡고 있다.
김주남 호텔롯데 면세사업부 대표이사(롯데면세점 대표)는 25일 임직원 메시지를 통해 임원 급여 20% 삭감과 전 직원 대상 희망퇴진 진행 등 고강도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전 영업이익이 큰 규모가 아니었다는 점, 앞으로 상황이 개선되리라고 내다보기 어렵다는 점 등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1위 사업자가 사실상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며 두 손을 든 셈인데 이런 경영적 어려움은 나머지 2~4위 사업자인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 현대백화점면세점이라고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신라·신세계·현대백화점면세점의 1분기 실적을 보면 모두 수익성이 크게 악화한 상황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호텔신라는 TR(면세유통)부문에서 1분기에 매출 8307억 원, 영업이익 59억 원을 냈다. 2023년 1분기보다 매출은 37%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77% 후퇴했다.
지난해 3분기와 4분기에 연속 영업손실을 내며 누적 적자 260억 원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그나마 흑자 전환했다는 점을 위안거리로 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이 불과 0.7%밖에 안 된다는 점을 보면 상황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데 무게를 두는 것이 합리적으로 여겨진다.
▲ 면세업황의 위기는 코로나19 이후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사진은 인천국제공항 면세구역 모습. <인천국제공항공사> |
신세계디에프도 마찬가지다. 1분기에 순매출 4867억 원, 영업이익 72억 원을 냈는데 이는 2023년 1분기보다 매출은 4.8%, 영업이익은 70.4% 뒷걸음질한 것이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은 실적 정상화와 관련해 기대감이 낮은 면세기업으로 꼽힌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은 1분기 매출 2405억 원, 영업손실 52억 원을 냈다. 2023년 1분기와 비교하면 적자 폭을 100억 원 넘게 줄인 것이지만 적자는 지속했다.
2018년 11월 출범 이후 내리 분기 적자를 내다가 2023년 3분기에서야 첫 분기 흑자 10억 원을 거두면서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지난해 4분기 다시 손실을 낸 뒤 여전히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면세업계 관계자들은 면세산업이 구조적으로 반등하기 힘든 시기라는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면세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내면세점을 가보면 쇼핑하는 관광객을 찾는 것이 매우 힘들어졌다”며 “면세점을 돌면서 명품과 뷰티 상품을 산다는 것은 이미 옛날 얘기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전 세계 여행객 모두 각 나라에서만 파는 특산물을 사고 싶어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정형화한 상품만 파는 면세점으로서는 고객들을 모으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