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세계 1위 전기차 제조사인 중국 BYD의 국내 전기차 시장 진출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으면서도 어느 정도 품질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중국 전기차가 국내에서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메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일 자동차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BYD는 현재 중형 전기승용차 '실'(seal)의 국내 출시를 위해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으로부터 성능 인증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BYD가 올해 안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승용 전기차 판매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BYD 관계자는 "올해 한국 시장 승용 전기차 출시에 대해 기존보다 더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현재 국내 관계부처 인증 계획을 수립중"이라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BYD가 자사 전기차 상품성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국에 본격 진출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며 "올 여름에서 가을 사이 국내 출시할 것이 확정적"이라고 말했다.
실 외에 BYD의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토3'와 소형 전기 해치백 '돌핀'도 국내 출시가 유력한 모델로 거론된다.
앞서 지난해 7월 BYD는 실, 돌핀, 아토를 포함한 자사 친환경차 6종의 명칭에 대한 국내 상표권을 출원했다.
BYD가 지난해 11월 유럽 판매를 시작한 실의 기본 모델은 82kWh(킬로와트시) 배터리와 313마력 전기모터를 장착했다. 유럽 기준(WLTP) 570km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인증받았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제로백)은 5.9초다.
실의 상위트림은 2개의 모터를 달고 530마력의 힘을 낸다. 주행거리는 520km, 제로백은 3.8초다.
유럽 판매가격은 각각 4만4900유로(약 6470만 원), 5만990유로(7340만 원)다.
실의 유럽 기준 최대 주행거리는 동급의 현대차 아이오닉6의 614km에 미치지 못하지만, 가속성능(제로백)은 아이오닉6(5.1초)를 넘어선다.
반면 지난해 BYD가 일본 시장에 진출하며 출시한 아토3의 현지 시작가격은 440만 엔(3900만 원), 돌핀은 363만 엔(3290만 원)으로 각각 현대차 아이오닉5 479만 엔(4260만 원), 코나 일렉트릭(3550만 원)보다 300만 원 가량 낮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전기차 지원정책을 등에 업고 제품 경쟁력을 세계 수준으로 키운 BYD는 지난해 4분기 세계 시장에서 52만6천 대의 전기차를 판매하며, 사상 처음 미국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전기차 판매 1위에 올랐다. 하지만 BYD의 지난해 총 판매량 가운데 중국 이외 국가 판매량 비중은 8% 수준에 머물렀다.
중국을 넘어 세계 각국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는 BYD가 한국에 진출할 경우, 과연 국내 전기차 시장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BYD가 가장 먼저 국내 출시할 것으로 예상되는 실은 현대차의 아이오닉6와 동급이다. 아이오닉6 국내 가격은 5200만~6400만원 선이다. 업계는 실이 아이오닉6보다는 가격이 낮게 책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4000만원 미만 등 파격적 가격을 내세우긴 어려울 것이란 게 지배적 시각이다. BYD는 실 품질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판매 전략도 프리미엄 고급차를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한 아이오닉6와 달리 에너지 밀도가 낮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단 실은 국내에서 국고 보조금을 받는데 불리할 것으로 보인다. 실이 4000만원 대에 출시돼도 국내 보조금을 덜 받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은 높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환경부에 따르면 아이오닉6는 올해 국내에서 최고액인 690만 원의 보조금을 받지만, LFP 배터리를 탑재한 테슬라 모델Y 후륜구동 모델의 보조금은 195만 원으로 전년보다 62.1% 줄었다. BYD 실도 LFP배터리를 탑재하고 있어 모델Y 수준의 보조금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실은 아이오닉에 비해 10~20% 저렴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리서치 전문업체 컨슈머인사이트가 지난해 전기차 신차 구입 뒤 3년 이내인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2022년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38.8%가 아무리 저렴해도 중국산 전기승용차를 구매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구입의사가 있는 61.2% 가운데 절반(49.7%)은 중국산 전기차 가격이 국산 전기차 가격의 50~60%이면, 39.7%는 70~80% 수준이면 구매를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이는 중국차가 국내 들어와도 '차이나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점을 의미한다.
현대차는 1986년 '포니 엑셀'로 처음 미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김치 디스카운트'로 고전을 거듭했다. 회사는 1999년 '보증기간 10년 10만 마일'이라는 파격 인센티브를 내세워 조금씩 미국 시장에서 판매량을 늘렸고, 2005년 앨라배마 공장을 건설한 뒤에도 2022년 처음 미국 점유율 10%대를 달성했다. 한국 차가 김치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데 20년 이상이 걸린 셈이다.
일본 도요타도 1957년 미국에 처음 진출한 뒤 점유율 10%를 달성하는 데 45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다만 100여 년의 내연기관차 시대가 저물고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는 만큼, 전기차 전문 업체인 BYD가 빠른 시간 내 한국 시장에 자리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기차만 따로 보면 BYD의 첫 양산형 전기차 생산은 2009년으로 2011년 현대차의 '블루온'보다 2년 앞선다.
BYD가 한국 시장에 빠르게 정착하기 위해선 가격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초기 판매 모델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김필수 교수는 "BYD가 주력 모델 중 국내 출시 모델을 놓고 고민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보조금까지 포함해서 가격이 싸지 않으면 중국산 제품을 국내 소비자가 살 이유가 없다"며 "BYD 고급차 모델은 마감이나 실내 디자인이 다소 부족하지만, 아토3나 돌핀 등 중저가 모델 품질이 어느 정도만 돼도 가격이 낮으면 국내에서 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16만2593대로, 전년보다 1.1% 감소했다. 여전히 비싼 전기차 가격이 판매 위축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런 상황에서 BYD가 파격적 가격을 들고나오지 않는 이상, 국내에서 중국 차 판매는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