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이 석유화학 실적 반등의 기회를 잡았다.
중국의 새 교통규제로 LG화학의 주력제품인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ABS)의 수요가 급증하며 수익성이 대폭 커지고 있다.
신 부회장으로서는 석유화학사업본부의 이익 창출능력 회복이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인 만큼 중국의 정책 변화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2일 화학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새 교통규제를 시행하면서 화학회사들 가운데 LG화학이 최대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정부는 6월 계도기간을 거쳐 7월부터 오토바이 운전자의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는 ‘일회일대’ 규제를 본격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헬멧 외피를 만들 때 쓰이는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LG화학은 연 200만 톤의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 생산회사로 생산량 기준 글로벌 1위 회사다. 수요 급증에 따른 수혜의 폭이 클 수밖에 없다.
한상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국이 시행하는 새 교통규제의 영향으로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의 신규 수요가 연 80만~95만 톤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까지 글로벌시장에서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의 수요가 대체로 연 30만 톤씩 늘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요 증가량이 적지 않다.
LG화학은 발빠르게 수요 급증에 대응하고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자세한 퍼센트를 언급할 수는 없으나 1분기 가동률을 낮췄던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 생산설비들을 현재 풀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학철 부회장은 중국 교통규제를 LG화학의 ‘본업’인 석유화학사업본부의 현금 창출능력을 끌어올릴 기회로 삼으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은 자동차 내장재나 외장재,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만들 때 쓰이는 고기능성 화학제품이다. 고기능성 화학제품인 만큼 여러 화학제품들 가운데서도 수익성이 가장 좋은 제품 가운데 하나로 분류된다.
LG화학도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 단일 제품에 석유화학사업본부 영업이익의 25% 수준을 의존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은 6월 들어 수요가 급증하며 수익성이 대폭 높아졌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 가격이 톤당 1380달러에서 1430달러로 오를 동안 중간재료 부타디엔(BD) 가격은 920달러에서 330달러로 급락했다.
톤당 1100달러의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부타디엔 스프레드(제품가격에서 재료값을 뺀 수익성 지표)는 21세기 들어 최대치다.
LG화학의 사업본부들 가운데 석유화학사업본부는 최대의 현금 창출원(캐시카우)이다.
매년 LG화학 전체 영업이익의 90% 이상을 석유화학사업본부가 담당해 왔으며 지난해에는 전체 영업이익의 158.1%를 석유화학사업본부가 냈다.
그런데 글로벌 석유화학 업황은 2018년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에 올해 코로나19 확산까지 겹치며 화학제품 수요 감소에 따른 부진에 빠져 있다.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의 영업이익도 2017년 2조6830억 원에서 2018년 2조304억 원, 2019년 1조4163억 원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이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이번 중국의 새 교통규제는 이익 감소세를 돌려놓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화학사업본부의 현금 창출력 감소가 LG화학의 재무 악화로 이어지고 있었던 터라 이번 호재가 더욱 반갑다.
신 부회장의 대표이사 임기를 기준으로 하면 LG화학은 연결 부채비율이 2018년 말 67.1%에서 2020년 1분기 113.1%까지 높아졌다. 이 기간 총차입금은 5조3211억 원에서 11조5537억 원까지 급증했다.
LG화학이 배터리 생산공장과 여수 나프타 분해설비(NCC) 등 각종 설비의 증설에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 LG화학이 중국 화난에 보유한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 생산공장. < LG화학 > |
LG화학의 규모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재무적 부담을 위험한 수준이라고까지 볼 수는 없다.
다만 신 부회장은 앞으로 자본시장에서 투자자금을 조달할 것을 고려해 재무구조의 악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올해 1분기 말 LG화학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하향했다. 무디스는 신용등급을 A3에서 Baa1로 낮췄을 뿐 아니라 등급 전망까지 ‘부정적(Negative)’으로 제시했다.
무디스는 LG화학의 현금 창출능력이 마이너스의 잉여현금흐름과 차입금을 해소하기에 충분하지 못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신 부회장은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의 현금 창출능력 회복이 시급한 상황에서 중국의 새 교통규제를 통해 과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셈이다.
신 부회장이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의 실적 반등에 성공한다면 투자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기존의 사업전략을 밀고 나가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앞서 4월 사내메시지를 통해 “글로벌 선도기업들의 경쟁력은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미래를 향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은 것”이라며 “우리의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투자 등 꼭 해야 할 일은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