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023년은 기상 관측 이래 지구가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뜨거워진 지구는 인류에 이전과 다른 극단화된 기후를 보여줬다. 지구촌 곳곳은 전례없는 폭염과 한파, 가뭄과 홍수를 겪었다. 기후위기는 정치, 경제, 산업 등 인류 생활 전반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지난 1년 동안 기후리스크와 국제대응뿐 아니라 기후스튜어드십, 기후테크, 워터리스크 등 기후변화로 인해 달라지고 있는 산업, 금융 현장의 트렌드들을 취재해 심층 보도했다. 그 중 핵심 이슈를 되짚어 본다.
① 기후재난 심화에도 인류는 허둥지둥, 숙제는 2024년으로
② 세계 큰손들의 기후행동 본격화, ‘기후스튜어드십’
③ '워터리스크' 한국도 예외 아니다, 삼성 등 대응 분주
④ 물 문제는 이제 국가 안보, 워터리스크 대응에 진심인 국가들
⑤ 수십조 투자 끌어들이는 시장, 기후테크가 뜬다
⑥ 묻혀가는 기후위기 대응 법안, 다음 국회서 빛 볼 날 기다린다 |
▲ 투자금융계의 큰 손들이 기후행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올해 아시아에서는 ‘큰 손’들이 기후행동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강해지면서 투자 포트폴리오가 받을 리스크는 줄이고 기회를 늘리려는 기관투자자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28일 전 세계 700여 개 기관투자자들의 이니셔티브인 기후행동100+ 자료를 종합하면 기관투자자들은 토요타와 시노펙 등 세계적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 탄소중립 정책 수립 현황 등을 조사하고 기후변화 대책 강화를 촉구하는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이른바 기후스튜어드십(Climate Stewardship) 활동이다.
기후스튜어드십이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수탁자 활동이다.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 수탁자들이 투자한 기업에 대화, 서한 전달, 주주제안, 기업 관여, 소송, 주식 매매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요구하는 것을 뜻한다.
대표적인 예가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 토요타의 기관투자자들이다.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과 덴마크 교사 연금 아카데미커펜션, 노르웨이 최대 개인연금 운용사인 스토어브랜드는 토요타에 기업활동이 기후변화 활동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정관 개정을 요구하는 기후 결의안을 주주 제안으로 제출했다.
6월14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제안 자체는 과반수를 달성하지 못해 좌절됐다. 그러나 기후행동100+에 따르면 토요타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 온실가스 저감 등 친환경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 시민단체들이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에 의거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중국 최대 정유사인 시노펙(Sinpoec)은 투자자들의 요구에 온실가스 배출을 2020년 1억7100만 톤에서 2022년 1억 6200만 톤으로 감축하는 성과를 냈다.
기후행동 100+는 이를 중국 정부가 중국 내 화석연료 기업에 정해준 온실가스 배출 정점을 10년 앞당기는 성과였다고 평가했다.
시노펙은 중국 국무원 국유재산감독관리위원회(SASAC) 등 정부측이 70%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기후행동 100+는 정부와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기업에 의사를 강력하게 전달한 행동이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등 대형 연기금과 싱가포르투자청(GIC) 등 국부펀드들,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기후스튜어드십을 실천하기 위해 결성한 이 단체는 회원들이 운용하는 자산을 합치면 약 68조 달러(약 9경 원) 에 이른다.
기후스튜어드십은 한국에서도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6월에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국회 ESG(환경·사회·지배구조)포럼과 함께 ‘2023 기후경쟁력포럼 : 넷제로(Net zero) 달성을 위한 기후 스튜어드십 확대 방안’을 개최했다.
11월엔 대한상공회의소와 기후변화에 관한 아시아 투자자그룹(AIGCC)이 '투자자 기후변화 스튜어드십 세미나'를 열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기후스튜어드십이 이슈가 되기 전부터 해외 기관투자자들은 국내 대기업들과 이미 '대화'를 시작했다.
2022년 2월 APG는 투자 대상 한국 기업 10곳에 ‘기후위기 대응 및 탄소배출 감축 전략의 혁신적 실행에 대한 제언’ 서한을 발송한 적 있다. 여기에는 삼성전자와 SK, SK하이닉스, SK텔레콤,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현대제철, 롯데케미칼, 포스코케미칼이 포함됐다.
▲ 6월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2023 기후경쟁력포럼’에서 주요 연사와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강석운 비즈니스포스트 대표, 김영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 장혜영 국회 기후위기특위 위원(정의당), 김성주 국회ESG포럼 공동대표(더불어민주당) 조해진 국회ESG포럼 공동대표(국민의힘), 이재혁 한국상장사협의회 본부장, 최윤석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신사업팀장. 뒷줄 오른쪽부터 임대웅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코리아 대표, 윤세종 플랜1.5변호사,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안수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용환 NH아문디자산운용 팀장,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국장. <비즈니스포스트> |
기관투자자들이 기후스튜어드십 활동을 확대하고 있는 배경에는 기후변화가 있다. 기후변화가 기업 활동을 저해하고 투자자들의 자산을 위협하는 리스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배희은 기후변화에 관한 아시아투자자그룹(AIGCC) 이사는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투자자가 투자한 기업의 지분을 팔아 기업에서는 빠져나올 수 있지만 기후변화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며 “전체적으로 기후변화가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직접적 영향이 있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에는 특정 기업에서 리스크가 발생한다면 기관투자자는 투자금을 회수해 손실을 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일부 투자를 철회하는 것만으로는 손실을 만회할 수 없다. 따라서 투자자들에게 있어 합리적 선택은 기후변화를 방지해 리스크 발생 원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된다.
배 이사는 “투자자들이 기후변화에 관해서 가장 큰 영향력을 주고 행동해야 하는 시기는 지금"이며 "지금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적지 않은 기회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사회와 선진국들의 기대 혹은 압박도 기관투자자들을 기후행동에 나서게 만드는 추동력이 되고 있다.
에릭 어셔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 FI) 사무총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기업의 움직임을 이끌어 내는 데 기관투자자의 역할을 향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며 “특히 지속가능성 공시에서 기업들이 더욱 유용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만드는 데 기관투자자들이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들을 기준으로 했을 때 기관투자자들이 보유한 연기금, 투자펀드, 보험회사 등 자산 규모는 각국의 국내 총생산과 비교하면 150~250%에 달한다.
한국의 대표적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만 봐도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회사가 300곳이 넘는다.
기관투자자들이 기후변화 대응에 관심을 보이면 투자를 받은 기업들은 그에 상응하는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김훈태 포스코홀딩스 ESG팀 상무보는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은 궁극적으로 투자 대상 기업의 저탄소 생산체제 전환을 도모하고 있지만 현재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일시에 줄이라는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며 “현재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생산을 중단하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개별 기업들이 기술 개발과 경제성 있는 방법을 통해 단계적으로 탄소중립으로 전환해 나가자는 것이다.
김 상무보는 “이해관계자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지구를 기후위기에서 구하고 싶어 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과 변화가 필요하고 기업의 생존, 일자리 문제 등이 생긴다”며 “포스코 그룹은 이를 고려해 어떻게 최선의 방법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투자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기관투자자들의 요구에 대응해 ESG 정보공시를 강화하는 한편 대화를 위한 공유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소통 수단 마련을 준비하고 있다.
▲ 5월 서울 여의도 콘래드서울호텔에서 열린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 FI) 아태지역 원탁회의'에서 발제를 진행하고 있는 연사들. <비즈니스포스트> |
그러나 아직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기후 스튜어드십 활동은 미약하다. 국민연금으로 대표되는 기관투자자들의 강력한 기후스튜어드십 실천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상임이사는 “국민연금은 2020년 1월에 남양유업을 공개 중점관리기업에서 해제한 이후 단 한 건의 공개 중점관리기업 선정이나 주주제안 등 적극적 주주활동 수행을 하지 않았다”며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활동이 실효성 있게 이뤄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은 어떤 식으로든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TCFD)’ 지지 선언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TCFD는 2015년 G20 재무장관회의 금융안정위원회(FSB)가 설립한 협의체다. 탄소중립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업이 재무위험을 파악할 수 있도록 탄소배출량 등 관련 지표를 공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운영자산이 900조 원 이상으로 세계 기관투자자 가운데 3위 규모임에도 TCFD 지지기관에 합류하지 않고 있다.
이에 국민연금 관계자들은 주주를 존중하는 기업 지배구조, 다른 기관투자자들의 동참 등 국내 상황 변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전문위원회 투자정책전문위원장은 “기업이 주주를 존중하는 상황이 돼야 사회적 요구에도 적극적으로 호응할 수 있다”며 “하지만 한국의 기업환경에서는 주주보다 기업 총수의 의사가 더욱 영향력이 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후변화 대응 등 ESG 관련 현안에서 기업의 변화를 일으키려면 국내 자본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자산운용사 등 여러 주체들이 함께 행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계적 금융분석업체 맥킨지앤컴퍼니에서 올해 내놓은 '재무와 탄소중립 전환'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친환경 전환에 들어가는 자금은 9조2천억 달러(약 1경 원) 이상이 될 것으로 파악됐다.
배희은 이사는 기관투자자들이 기후관련 투자를 부담이 아닌 기회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배 이사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환의 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라며 “일본 공적연금(GPIF) 등 일부 투자자들은 이미 재생에너지, 기후테크에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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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AIGCC 배희은 “투자자도 기후변화 피할 수 없다”
④ 지평 변호사 민창욱 “한국, 기후 관련 주주제안 쉽지 않아”
⑤ KOSIF 양춘승 “국민연금은 기후변화 대응에 더 적극적 행동 보여야”
⑥ 국민연금 전문위원 원종현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 지배구조 개선 전제돼야”
⑦ 포스코홀딩스 김훈태 “탄소중립 핵심은 기업, 공동의 노력 필요”
⑧ 유엔 책임투자원칙, "기후변화는 투자자가 직면한 최우선 ESG 이슈"
⑨국회ESG포럼 김성주 “기후변화 대응은 국민연금 수익성 위한 것”
<끝>친환경 투자자들 기후제안 '중꺾마', "좌고우면할 여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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