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터리 미국 원천 수입금지 '블랙리스트’ 오르나, 한국 배터리 북미 입지 확고해질 듯

▲ 존 무레나르 공화당 하원의원 등은 지난 6일(현지시각) 중국 배터리 기업 CATL과 고션하이테크를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UFLPA) 블랙리스트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서한을 미국 국토안보부에 전달했다. 사진은 지난해 2월1일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에 관한 포럼에 참석한 존 의원이 발언하는 모습. <존 무레나르 페이스북>

[비즈니스포스트] 한국 배터리 업계가 사업 부진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 반색할 소식이 전해졌다. 최근 미국 공화당 의원들이 세계 배터리 1위 제조사인 중국 CATL을 비롯해 배터리 기업 두 곳을 원천 수입금지 ‘블랙리스트’에 넣어야 한다고 당국에 요청했다는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 저가 중국산 배터리에 점점 점유율을 빼앗기고 있는 한국 배터리 업계가 미국 시장에서 확고한 선두 입지를 다질 수 있을 수 있는 사안이어서 주목된다.  

11일 외신과 배터리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중국발 공급과잉 우려가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대중국 무역제재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최근 로이터통신은 존 무레나르 공화당 의원 등이 중국 배터리 기업 CATL과 고션하이테크를 '위구르 강제노동 방지법'(UFLPA)에 따라 수입금지 블랙리스트에 넣어야 한다는 서한을 미국 국토안보부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CATL과 고션하이테크 측은 “강제 노동과 연관돼 있다고 비난하는 미국 의회 의원들의 서한은 근거가 없으며, 완전한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존 의원은 최근 성명을 통해 “CATL과 고션이 위구르 강제노동과 연관된 공급망을 가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CATL은 세계 1위 배터리 제조사다. 고션하이테크는 중국 4대 배터리 제조사 가운데 하나로 최근 눈에 띄게 해외 생산공장 설립과 수출 확장에 나서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을 포함한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CATL이 37.7%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고, 이어 BYD가 15.4%로 2위를 기록했다. 이어 LG에너지솔루션이 7.8%로 3위, 삼성SDI가 5.1%로 4위, SK온이 4.8%로 5위를 기록했다. 

상위 두 중국 업체 점유율만 53%가 넘고, 전체 중국 배터리 업체 점유율을 계산하면 60%가 넘는다. 세계 배터리 시장은 중국이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자국 내 공급과잉 물량을 해외로 수출하는데 혈안인 상황이며, 북미 수출장벽을 뚫기 위해 멕시코, 한국, 동남아 등 해외 공장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우회 수출하는 방법을 비롯해 미국 현지 기업에 배터리 기술 라인선스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까지 동원하고 있다"며 "UFLPA 조치가 이뤄지면 사실상 중국 두 기업의 북미 시장 진입은 원천 차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UFLPA는 일반적 수입금지나 관세 부과와는 성격이 다르다.

앞서 미국 정부는 지난달 중국산 리튬이온 배터리와 부품에 대한 관세를 종전 7.5%에서 25%로 인상했다. UFLPA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조치다. 위구르 자치구에서 일부라도 생산·채굴·제조되거나, 강제노동과 관련한 단체에서 생산된 모든 제품의 미국 수입을 금지한다.

배터리 공급망 전체를 추적하기 때문에 위구르 자치구에서 생산된 배터리 소재나 부품, 완제품 등은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입이나 기술 라이선스 제공도 불가능하다. UFLPA는 채굴, 생산, 제조 모든 단계를 포함한 공급망의 상세 설명을 요구하도록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상품의 일부, 원재료가 생산되는 공급망 역시 UFLPA 적용 범위 안에 있다”며 “미 관세보호청(CBP) 억류 대상은 원재료와 중간재 원산지가 중국 위구르 자치구인 경우도 해당되며, 여기서 생산된 원재료와 중간재를 수입해 제3국에서 배터리를 만든 경우도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UFLPA에 저촉돼 미국 관세보호청(CBP)에 의해 억류된 화물은 중국 수입품보다 제3국 수입품이 더 많다.

지난해 7월 기준으로 CBP가 억류한 약 1조9200억 원에 해당하는 4269건의 수입품 가운데 60% 이상이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으로부터 수입된 것들이었고, 중국 수입품은 약 36%에 불과했다.

두 중국 배터리 업체의 미국 수입 금지는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과 현지 합작법인 설립 등 조 단위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 배터리 업계에 반사이득을 가져다줄 전망이다. 
 
중국 배터리 미국 원천 수입금지 '블랙리스트’ 오르나, 한국 배터리 북미 입지 확고해질 듯

▲ 미국의 중국 배터리 수입 장벽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북미시장 진입이 제3국 우회까지 원천 차단되면, 사실상 미국 시장은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주도권을 장기간 쥘 수 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미국 두 번째 단독 공장인 애리조나 공장에 7조2천억 원을 투자한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합작으로 3조3천억 원 가량을 투자해 미국 공장을 건설할 것으로 전해졌다. SK온은 약 7조5천억 원을 투자해 포드와 현지 합작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배터리 3사는 지난해 7월부터 북미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한국 배터리 점유율은 42.4%로 1위를 기록했다. 올해 3월엔 49.7%의 점유율을 보였다. 일본 배터리 점유율은 30% 중반대이며, 중국 점유율은 약 16%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북미에 대규모 투자를 이미 진행하고 있는 한국 기업 입장에서 중국 기업 시장 진입 허들이 높아진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며 “미중 갈등의 심화에 따른 세계 공급망 불확실성 증가는 면밀히 관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