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입지가 검찰과 금융당국의 강한 압박에 흔들리고 있다.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전임 회장 부당대출 ‘늑장보고’ 혐의로 피의자에 올라 연임이 무산됐고 금융당국의 검사 강도는 오히려 점점 강해지고 있다.
▲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10월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방송> |
임 회장은 금융위원장을 지낸 고위 관료 출신이다. 지난해 우리금융 수장을 맡으면서는 ‘관치금융’ 논란을 낳았지만 이번에는 관치금융의 풍파 한 가운데 선 모양새다.
26일 우리은행은
조병규 행장이 조직 쇄신을 이유로 연임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이사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우리금융이 조 행장의 연임과 관련한 사실관계를 공식적으로 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금융은 민감한 사안인 만큼 그동안 행장 선임 사안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함구했다.
조 행장은 최근 전임 회장 관련 부당대출 검찰수사에서 피의자로 전환된 점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조 행장은 부당대출 사실을 지난해 10월 즈음 알았지만 금융당국에는 올해 5월에 알렸다는 늑장 보고 의혹을 받고 있다.
임 회장도 올해 초 사안을 보고받았지만 피의자로 전환되지 않았다. 특경법상 보고 의무는 은행장에 적용돼 임 회장은 비껴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임 회장 역시 마음을 놓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최근 압수수색 범위를 우리은행에서 우리금융지주로 넓히며 임 회장 사무실도 대상에 포함했다.
핵심계열사 수장인 조 행장 교체가 임 회장에 지니는 의미도 적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임 회장은 기업문화 쇄신을 강조하며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기업영업 전문가 조 행장을 발탁했다. 조 행장도 기대에 부응하며 올해는 3분기까지 지난해 연간 순이익을 넘기는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끌었다.
임 회장은 사실상 조 행장의 늑장 보고 결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조 행장의 결단이 이뤄진 상황에서 '순망치한' 상황이 우려될 수 있는 셈이다.
금융당국의 연이은 압박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24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우리금융 사태를 두고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같은날 1년 가량 앞당겨 진행된 우리금융·은행 정기검사 기간을 두 번째로 연장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우리금융과 정부 사이 관계는 1년 전만 해도 지금과 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금융은 임 회장이 지난해 3월 취임한 뒤 정부 상생금융 정책에 적극 앞장서면서 당국과 관계를 다졌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업권 최초로 상생금융 전담 부서를 설치했고 우리카드는 업계 전반이 겪는 고금리 부담에도 카드사 가운데 가장 먼저 상생금융 방안을 내놨다.
당시 우리금융 움직임에는 금융위원장 출신으로 당국을 잘 이해하는 임 회장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우리금융 관계는 임 회장 취임 직전만 해도 불편한 사이로 여겨졌다.
2022년 말
손태승 전 회장 연임 문제를 두고 맞서는 형세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금융위원회의 대통령 업무보고 행사 등에 주요 금융지주 회장 가운데 손 전 회장만 초청을 받지 못하면서 뒷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임 회장은 금융위원장을 지낸 것은 물론
윤석열정부 초대 경제부총리 후보로도 거론됐던 것으로 알려진 만큼 남다른 무게감을 지닌 것으로 평가됐다.
임 회장이 관료 시절 경험을 활용해 당국과 관계 회복을 도운 셈인데 잇단 금융사고에 내부 문제를 드러내며 취임한지 2년도 채 안 돼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금융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손 전 회장 관련 부당대출을 포함해 네 번에 이른 금융사고가 터졌다.
수면 위로 떠오른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 사이 갈등도 또다른 내부 문제로 꼽힌다. 우리은행은 1999년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병해 출범한 한빛은행에 뿌리를 둬 두 곳 출신 사이 계파갈등이란 고질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이 2016년 11월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서 '우리은행 과점주주 매각 낙찰자 선정안'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
우리금융은 결과적으로 올해 외환위기 당시 투입된 공적자금을 모두 반환하고 완전 민영화를 선언했지만 자체 목소리를 잃고 정무적 판단을 최우선해야 상황에 놓인 것이다.
10월 국정감사에서는 ‘용산이 검사 출신 금감원장을 통해 모피아와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등 신관치 논란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임 회장이 금융위원장 시절 선진 지배구조를 외치며 우리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도입한 과점주주 체제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배적 주주가 없는 상황에서 과점주주를 맡는 여러 금융사가 통일된 의견을 내기 어려운 만큼 결과적으로 관치금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임 회장은 현재 자진사퇴에 거리를 두고 내부수습에 온힘을 기울인다는 뜻을 내놓은 상태다.
그는 10월 국감에서 거취를 묻는 질문에 “우리금융은 절박한 상황으로 환골탈태 없이는 신뢰회복이 힘들다”며 “현재는 조직 안정과 내부통제 강화에 신경 써야 할 때로 제 잘못으로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면 지겠다”고 말했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