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관행적 농지 이용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농지 투기를 차단한다는 정책 목표를 유지하기 위해 특례 적용범위와 투기 여부 판단기준을 구체화하고 기존 처분명령 대상자와의 형평성을 확보하는 것이 입법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13일 정부와 민주당의 움직임을 종합하면 당정은 농지 전수조사에서 드러난 농촌의 관행적 위반을 한시적으로 구제하는 특별조치법을 올해 안에 제정하고 2027년 상반기 농지법 개정으로 연결한다는 방침을 구체화하고 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농지 전수조사 후속 조치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 8일 상속 농지와 고령농의 관행적 임대차 등을 처분 대상에서 제외하는 특별조치법 제정 방침을 밝혔다"며 "민주당은 농촌 현실을 반영한 특별조치법의 연내 제정을 책임 있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 원내대표는 또 "농촌의 오랜 관행과 부동산 투기를 같은 잣대로 재단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농지 전수조사는 농민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전국 농지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농지를 투기의 수단이 아닌 농민의 삶의 터전으로 돌려놓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도 일반적인 농지법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이번 전수조사 결과를 근거로 처분절차를 진행하지 않도록 특별조치법을 제정한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투기가 아닌 일반적인 사안은 이번 조사 결과를 근거로 농지법상 처분절차를 진행하지 않는 방향으로 국회와 협의하여 특별조치법을 제정 추진하겠다"라며 "현재 농지법 규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조사에서 확인되더라도, 그것이 처분절차로 이어지지 않도록 농지법에 우선하는 특별법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정부는 국회와 협의해 10월 중 특별조치법을 발의하고 가능하면 12월까지 국회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번 특별조치법은 농지 전수조사 방침에 따라 진행된 조사에서 기존 농지법과 농촌의 실제 이용 관행 사이의 괴리가 드러나면서 추진된 후속 입법이다.
정부는 지난 5월부터 농지 전수조사에 착수했지만 조사 과정에서 고령화와 상속 등 농촌의 구조적 여건으로 발생한 관행적 위반까지 일률적인 처분 대상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농식품부가 지난 7월30일 발표한 농지 기본조사 결과에 따르면 7월29일까지 조사를 마친 1013만 필지 가운데 284만 필지가 농지법 위반 의심 대상으로 분류됐다. 정부가 발표한 위반 의심 비율은 27.0%다.
유형별로는 불법 임대차 의심 비율이 21.1%로 가장 높았으며 무단 휴경 11.6%, 불법 전용 9.0%, 소유 제한 위반 1.4% 순으로 나타났다.
| ▲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농지 전수조사 후속 조치와 제도 개혁 방향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정부가 특별조치법에 담기로 한 대표적인 처분 제외 대상은 상속농지와 고령농업인의 관행적 임대차 농지, 종중·사찰 등 소유관계가 복잡한 농지, 맹지와 영농곤란 농지, 미허가 농업용 시설 등 다섯 가지 유형이다.
상속농지는 휴경이나 소유상한 초과 등이 확인되더라도 이번 조사 결과를 근거로 처분하지 않고 향후 제도개선에 활용한다. 고령으로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워 가족이나 이웃이 대신 경작하는 농지도 현행법상 임대 허용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분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명의자가 많거나 소유관계가 복잡해 정식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기 어려운 농지와 현실적으로 경작하기 어려워 비워둔 농지도 이번 조사에 따른 처분 대상에서 제외한다.
다만 정부가 제시한 다섯 가지 유형은 대표적인 사례일 뿐 특별조치법의 적용 대상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농식품부는 8일 별도 설명자료를 통해 명백한 투기 등이 아닌 일반적인 농지법 위반사항은 이번 조사 결과를 근거로 처분절차를 개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에 특별조치법 제정 과정에서는 비투기성 위반을 어디까지 구제할지와 투기 여부를 어떤 기준으로 구분할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는 허위 영농계획서를 제출해 취득한 농지를 방치하거나 임대하는 행위,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경매 등을 통해 농지 지분을 취득하는 행위, 농업법인이 농지를 분할매매하거나 임대해 부동산 수익을 얻는 행위 등을 투기성 사례로 제시했다. 이러한 유형에 해당하는 농지는 충분한 소명절차를 거쳐 현행 농지법에 따른 처분명령 부과 여부를 판단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개별 농지의 실제 투기 목적을 입증할 구체적인 증빙기준과 지자체별 판단의 일관성 확보가 과제로 남아 있다.
송 장관도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농지 전수조사 후속대책 브리핑 질의응답에서 “그동안 농지 이용 실태 조사에서 처분을 내릴 때 지자체별로 판단이 굉장히 달랐다. 일부 지자체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었다”며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전국을 하나의 잣대로 통일하고, 그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처리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조치법의 적용 시점과 기존 처분명령 대상자에 대한 구제 여부도 입법 과정의 쟁점으로 꼽힌다. 정부가 이번 전수조사 결과에 따른 비투기성 농지의 처분을 제외하기로 했지만 과거 조사에서 이미 처분명령을 받은 농지 소유자에게까지 특례를 적용할지는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송 장관은 8일 질의응답에서 ”기존 처분명령 대상자에게도 이번 특례를 적용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국회 단계에서 좀 더 의논하고자 한다”며 처”분 명령을 받고 아직 이행하지 않은 경우와 이미 이행한 경우가 있다.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섬세한 대목들이 있어 조금 더 의논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특별조치법을 통해 농촌에 누적된 농지 이용 문제를 한시적으로 정리한 뒤 2027년 상반기 농지법 개정을 통해 임대차·휴경 인정사유 확대와 실경작자 및 임차농 권리 보호 등을 제도화할 계획이다. 권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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