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이크론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 증액을 발표했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자급체제 정책에 호응하는 한편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와 증설 경쟁에 대응하는 성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마이크론 미국 아이다호주 본사. <마이크론> |
[비즈니스포스트] 마이크론이 미국에서 대규모 투자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서남권 반도체 산업단지 구축에 대응하는 성격으로 풀이된다.
메모리반도체 제조사들이 일제히 증설에 나서며 업황이 악화할 가능성이 떠오르고 미국 정부도 이를 계기로 현지 투자를 압박하며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 부담을 키우고 있다.
◆ 메모리반도체 ‘증설 경쟁’ 본격화, AI 수요 증가에 대응
9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생산 증설에 8800억 달러(약 1328조 원) 투자를 발표하자 마이크론도 더 많은 돈을 들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마이크론은 뉴욕주 반도체 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포함한 미국 내 투자 규모를 기존 2천억 달러(약 302조 원)에서 2500억 달러(약 377조 원)로 늘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인공지능(AI) 시장의 전례 없는 메모리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고 미국 내 생산 비중을 높이기 위해 투자 증액을 결정했다고 마이크론은 덧붙였다.
메모리반도체 업황은 현재 수요 급증과 공급 부족으로 강력한 호황기를 맞았다. 이런 상황이 장기간 이어진다면 생산 증설은 당연한 수순으로 꼽힌다.
더구나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한국에 서남권 반도체 산업단지 구축 계획을 발표하고 생산 확대를 예고한 만큼 마이크론도 대응에 나서야 공급 능력과 원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마이크론은 뉴욕 반도체 공장의 착공 시기도 기존 계획보다 3개월 정도 앞당겼다. 메모리반도체 기업들 사이 증설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정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상위 메모리반도체 제조사들이 일제히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는 점은 고객사들의 수요 강세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투자전문지 배런스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보고서를 내고 “메모리반도체 수요 및 가격 변동성이 안정화되고 있다는 점을 시장에서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빅테크 기업들의 인공지능 및 클라우드 데이터서버 투자 비용에 메모리반도체는 35~40%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 ▲ 삼성전자 서버용 메모리반도체 제품 홍보용 이미지. <삼성전자> |
◆ 공급 과잉과 업황 악화 재현되나, 중국 경쟁사 진출도 변수
다만 메모리반도체 제조사들의 증설 경쟁이 공급 과잉과 업황 악화로 이어졌던 사례가 이번 투자 발표를 계기로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투자전문지 FX리더스는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실적 대비 저평가되는 이유는 호황기가 지속될 수는 없다는 투자자들의 예측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크론이 이번에 발표한 대규모 투자 증액과 같은 사례가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 리스크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는 분석이 이어졌다.
FX리더스는 수요 측면의 불확실성도 원인으로 지목했다. 메모리반도체 생산 투자 확대가 곧바로 업황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같은 전방 산업의 지속가능성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상위 기업들이 오랜 기간 과점체제를 유지하던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중국 경쟁사가 본격적으로 진입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악재로 꼽힌다.
블룸버그는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가 7월 중 상장으로 43억 달러(약 6조5천억 원)의 자금을 조달해 반도체 공장 건설에 활용할 계획을 두고 있다고 10일 보도했다.
CXMT가 2030년까지 반도체 생산량을 현재의 2배로 늘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 직접 경쟁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는 관계자의 말도 블룸버그를 통해 전해졌다.
메모리반도체 생산 증설 경쟁이 갈수록 격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중장기 공급 과잉 리스크를 피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에 놓일 여지가 커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 ▲ 마이크론의 미국 내 투자 확대가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에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픽 챗GPT 제작> |
◆ 마이크론 미국 정부 정책에 적극 호응,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엔 압박 커져
특히 마이크론의 뉴욕 메모리반도체 공장 건설은 미국 정부의 첨단 기술 공급망 자급체제 강화 정책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로 인식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 첨단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반도체 공급망을 해외 국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데 불만을 내비치며 임기 초부터 여러 대응책을 검토해 왔다.
반도체에 수입 관세를 부과하지만 미국에 공장을 운영하거나 투자하는 기업에는 이를 일부 면제해 주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트럼프 정부의 반도체 공장 유치 정책은 주로 TSMC나 인텔 등 시스템반도체 제조사에 집중됐다. 이들 기업이 인공지능 반도체 공급망에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메모리반도체 공급 부족 문제가 인공지능 산업 성장에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관련 정책의 중심이 메모리로 이동할 수도 있다.
마이크론은 이번 반도체 공장 증설 발표에서 미국의 발전과 공급망 안정화가 목표라는 점을 강조했다.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CEO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 관계자들에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마이크론은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해 기술 리더십을 지켜내는 데 기여하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이는 미국 정부에서 추진하는 자급체제 정책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인텔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한 데 이어 애플과 엔비디아 등 대형 IT기업을 압박해 대만 TSMC 대신 인텔에 반도체 위탁생산을 맡기도록 압박했다.
메모리반도체 분야에도 미국 정부의 압박이 현실화되면 주요 고객사들이 마이크론과 계약을 우선순위로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러트닉 상무장관은 마이크론의 투자 확대를 빌미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국 내 공장 투자도 요구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예고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러트닉 장관은 마이크론의 발표 행사에 참석해 “마이크론은 반기지 않겠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기를 원한다”며 “미국 기업이 앞서나간 만큼 경쟁사들도 질투를 느끼고 따라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