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최근 주가 급락을 ‘지분 확대’의 기회로 삼고 있다.
자사주 매입 여력이 충분한 상황에서 주주가치 제고를 내세우며 사재와 개인회사를 동원하는 배경에는 지배력 강화를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이는 주가가 낮아진 만큼 같은 자금으로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정진 회장은 지난 9일 약 500억 원을 들여 셀트리온 주식을 장내에서 매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지주사 셀트리온홀딩스와 그룹내 계열사인 셀트리온스킨큐어도 각각 959억 원과 451억 원 가량을 투입한다.
셀트리온은 “최고 경영진이 미래 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주주가치 제고에 적극 나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주주가치 제고가 목적이라면 셀트리온이 최근 자사주 매입과 소각 규모를 더욱 확대하는 방식으로도 효과를 낼 수 있다. 실제로 셀트리온은 지난해 4360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하고, 약 7천억 원 규모 자사주를 소각했다. 올해도 지금까지 약 3500억 원 규모 자사주를 취득했으며 3일에는 1천억 원 규모 자사주 추가 매입 계획을 공시했다.
셀트리온은 자사주 매입 여력도 충분하다. 4월3일 기준 자기주식 취득 가능 한도는 4조6634억 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정진 회장이 사재를 투입해 직접 주식 매입에 나선 것은 개인 지배력 강화를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셀트리온홀딩스는 서 회장이 98.1%, 셀트리온스킨큐어는 69.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이번 자금 투입은 사실상 서 회장 개인의 영향력 아래 있다. 두 회사는 지난 6개월 동안 각각 40억 원, 48억 원을 들여 셀트리온 주식 2만3739주, 2만6141주를 사들였다. 같은 기간 서 회장은 주식을 매입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자금을 직접 투입한 것이다.
▲ 서 회장이 직접 주식 매입에 나선 배경에는 셀트리온 주가 하락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셀트리온이 공시한 ‘임원·주요주주 특정증권 등 거래 계획 보고’에 따르면 서 회장은 30만6561주, 셀트리온홀딩스는 58만8395주, 셀트리온스킨큐어는 27만6875주를 매입할 예정이다. 해당 수치는 보고서 제출 전일 종가 기준(1주당 16만3100원)이며, 실제 거래는 보고 금액의 70~130% 범위 안에서 달라질 수 있다.
셀트리온 주식 매입이 계획대로 이뤄지면, 서 회장의 지분율은 기존 27.15%에서 27.64%로 증가하게 된다.
4월10일 기준으로 셀트리온 지분은 셀트리온홀딩스가 22.42%(5005만5819주), 서정진 3.89%(868만1991주), 셀트리온스킨큐어 1.94%(432만3909주)를 갖고 있다. 계획대로 매수가 이뤄진다면 셀트리온 지분은 셀트리온홀딩스 22.68%(5064만4214주), 서 회장 4.02%(898만8552주), 셀트리온스킨큐어 2.06%(460만784주)로 증가한다.
서 회장이 직접 주식 매입에 나선 배경에는 셀트리온 주가 하락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셀트리온 주가는 2월 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의약품 관세 부과를 언급한 이후 하락세를 이어갔다. 미국 생산공장이 없는 점이 셀트리온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9일에는 장중 15만2900원까지 떨어지며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현재 셀트리온 주가 수준은 앞서 셀트리온홀딩스와 셀트리온스킨큐어가 셀트리온 주식을 매수했던 시기(1주당 17만~18만 원대)보다 낮다. 서 회장은 같은 자금으로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저가 매수 타이밍’을 놓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셀트리온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자사주 매입도 서정진 회장의 실질 지배력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어 매입만으로도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최대주주 입장에서는 회사 돈으로 자기 지분 가치를 높일 수 있어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 될 수 있다.
자사주 취득만으로 그칠 경우, 해당 물량은 언제든지 시장에 다시 나올 수 있어 주주가치 제고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최대주주가 지분율을 일시적으로 조정한 뒤 매각하는 등 전략적으로 활용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셀트리온은 자사주를 매입한 뒤 즉시 소각하는 방식으로 주주환원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유통주식 수가 아닌 발행주식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최대주주뿐 아니라 일반주주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다.
셀트리온은 4월3일 기준 자사주 947만3917주를 보유하고 있다. 올해에만 153만9525주를 취득했고 411만3289주를 소각했다. 3일에는 7월3일까지 1천억 원 규모 자사주(58만9276주)를 매입 후 전량 소각한다고 공시했다. 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