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선 기자 insun@businesspost.co.kr2025-02-07 11:3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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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한국GM ‘철수설’이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GM의 내수 판매가 극히 부진한 상황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 자동차에 최대 25% 관세나 수입 쿼터를 적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GM의 소형차 수출 생산기지’ 장점마저 사라질 처지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대표이사 사장이 2024년 9월12일 쉐보레 '올 뉴 콜로라도' 시승 행사장을 방문해 직접 시승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한국GM >
6일 자동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미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높은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 쿼터제를 도입할 경우 한국GM이 국내 사업을 이어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 자동차에 보편관세 부과 결정을 내리면 한국GM은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미국 GM 본사는 오히려 한국에 보편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바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투자를 늘리기 위한 압박 카드로 쓰든, 실제 한국산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하든, 미국 GM 본사 입장에선 좋은 (철수) 명분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GM은 올해 1월 내수와 수출을 포함해 모두 3만1618대를 판매했다. 이 가운데 국내 판매량은 1229대로 3.9%에 불과했다.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내수 판매량은 무려 57.5%나 줄었다.
한국GM은 지난해 모두 49만9559대를 판매하며 7년 만에 최다 판매 기록을 경신했다. 그러나 이 판매량 가운데 수출 비중이 95%를 차지한다. 또 전체 판매 물량의 90%는 미국 수출 물량이다.
한국GM은 사실상 내수 판매에 거의 관심이 없고, GM본사의 소형차 수출기지 역할을 주로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GM이 주력으로 생산해 수출하는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트레일블레이저 등 두 소형 차종은 미국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트랙스 크로스오버(2만1495달러)는 미국에서 판매 중인 모든 스포츠유틸리티차(SUV) 가운데 두 번째로 저렴하다. 트레일블레이저는 2만4395달러로 여섯 번재로 저렴하다.
미국의 지난해 대한국 무역적자 557억 달러 가운데 약 73%는 자동차 교역에서 발생했다. 가뜩이나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높다며 방위비 인상 등 각종 위협을 가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거나 수입 쿼터제를 꺼내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은 그래서 나온다.
최근 미국의 중국, 멕시코, 캐나다에 부과한 관세를 고려했을 때 한국산 자동차 관세는 10%~25% 사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국산 자동차에 최대 25% 관세가 부과되면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약 2만4500달러로 가격이 오르고, 트레일블레이저는 약 2만7400달러까지 가격이 뛴다. 이렇게 되면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미국 내 소형 SUV 가운데 가장 저렴한 차에서 여섯 번째 저렴한 차로 내려가고, 트레일블레이저는 여섯 번째 저렴한 차에서 열 다섯 번째 저렴한 차로 밀리게 된다.
▲ 한국GM이 미국 본사에서 수입해서 판매하고 있는 쉐보레 타호. 타호는 올해 1월 국내에서 단 14대가 판매됐다. <쉐보레>
판매량 대부분을 수출에서 올리고 있는 한국GM 입장에서는 미국의 관세 부과로 가격 경쟁력을 잃으면 수출 감소가 불가피해진다. 수입 쿼터제가 도입돼도 타격은 역시 마찬가지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2018년 한국 철강 제품에 25% 추가 관세를 면제하는 대신 수출 물량을 70% 수준으로 제한하는 쿼터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미국의 한국산 자동차 관세 인상, 또는 쿼터제 도입이 현실화하면 미국 GM 본사는 한국 소형차 생산 물량을 줄이고, 현지 생산을 늘리거나 상대적으로 관세가 낮은 다른 나라에서 생산량을 늘리는 전략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GM은 한국 사업장 철수까지 고려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란 게 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GM이 한국 생산 물량을 줄이면 당장 국내 사업장 인력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이고, 과거 군산 공장 폐쇄 때처럼 노동자들이 강한 반발과 지역 경제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현재 한국GM은 인천시 부평과 창원에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GM은 지난해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100여 명이 퇴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한국GM은 올해 국내 판매 대리점 수를 줄일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GM 노조에 따르면 회사 측은 지속적으로 오프라인 대리점을 폐쇄하고 있다.
한국GM 노조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2016년 304개였던 대리점이 지난해 93개로 줄었고, 올해는 46개까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며 “많이 잡는다고 해도 전체 판매량의 5% 수준인 내수 비중은 더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GM 측은 앞서 여러 차례 한국 사업장 철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GM은 앞서 트레일블레이저에 이어 2023년 트랙스 크로스오버 신차 생산을 한국GM에 맡긴 이후 추가로 국내 생산 신차 투입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서 생산해 판매하는 차는 단 2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수입한 차로 내수 판매에 대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는 물론 한국GM 스스로도 더이상 국내 완성차 업체가 아니고, 수입차 업체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다.
한국GM 노조 측은 지금껏 계속해 사측과 GM본사 측에 새로운 신차, 특히 전기차 생산을 한국 사업장에 배치할 것으로 요구해왔다. 하지만 GM 본사 측은 이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더욱이 GM 본사는 지난해 부평 공장의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생산 결정마저 철회했다.
한국GM은 지난해 GM으로부터 수입한 4종을 국내 출시하겠다고 했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올해도 여전히 신차 출시 계획은 전달된 게 없다”고 말했다.
GM은 2017~2018년 한국GM 경영이 악화하고 한국 사업장 철수 논란이 크게 일자, 우리 정부 측과 경영정상화 방안을 논의했다. 그 결과 유상증자를 실시키로 했고, 유상증자에 KDB산업은행이 자금 8100억 원을 투입했다. 그러면서 GM은 우리 정부 측에 한국 생산공장을 오는 2028년까지 10년간 유지키로 약속했다.
시한이 앞으로 4년도 채 남지 않은 것이다. 관세 인상, 수입 쿼터제 등으로 한국 수출 환경이 불리해질 경우 GM이 2028년 이후 얼마든지 국내 사업장을 철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국내 시장에서 한국GM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미미해졌다”며 “한국GM이 결국에는 철수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고, 그 시간이 가까워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