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희 기자 JaeheeShin@businesspost.co.kr2024-10-1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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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향후 전력수요 증가에 대비해 전력망 확충에 막대한 재원을 투입한다. 송배전망을 구성하는 전압기, 배전기 등의 전력기기 시장의 장기 호황이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 전력기기 제조기업들의 미국 생산시설 확충이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 등 국내 전력기기 제조사들이 미국 현지 생산시설 확충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 등으로 세계 전력수요가 급증하며 세계 곳곳에서 전력망 확충 계획이 잇달아 발표되고 있는 가운데 전력기기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호황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인프라 구축 시 미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바이 아메리카’ 정책과 리쇼어링 기조에 따라 전력기기 제조사들은 현지 생산시설 확보가 시급해진 상황이다.
13일 전력기기 업계와 증권가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 변압기 시장 규모는 2023년 112억 달러에서 2032년까지 연평균 7.8% 성장해 223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서는 노후 전력망 교체, 반도체 및 전기차 공장 증설, 신재생에너지 발전 확대 등으로 송배전 인프라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3일(현지시각) 15억 달러 규모의 신규 송배전망 투자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 바이든 정부가 전력 인프라 구축시 미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의무적으로 사용해야하는 '바이 아메리카' 정책을 펴면서 미국 내 전력기기 생산설비 증설 필요성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바이든 대통령이 2020년 9월4일 미시간 주에서 유세에 나선 모습. <연합뉴스>
변압기, 배전기 등 전력기기를 생산하는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 등은 미국 현지 생산설비 증설을 통해 현지시장 공략 채비에 나서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 7월 미국 앨라배마주 변압기 생산공장의 변압기 전문보관장(1만2690㎡) 증설을 마쳤다. 이를 통해 매출이 연간 800억 원 늘어날 것으로 회사는 예상했다.
생산된 변압기가 곧바로 보관장으로 옮겨져 조립라인 가동률을 끌어올리고, 외부보관장 이용에 따른 운반·보관비 절약 효과 등 수익성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 HD현대일렉트릭은 전력기기 호황이 찾아오기 전 실시한 증설 효과를 톡톡히 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HD현대일렉트릭의 미국 앨라바마주 공장 전경. < HD현대일렉트릭 >
HD현대일렉트릭은 현대중공업(현 HD한국조선해양)의 사업부 시절이던 2011년 국내 전력기기 제조사 가운데 최초로 미국에 법인을 설립했다. 눈에 띄는 점은 2018년 미국 법인에 550억 원을 투입해 전력변압기 생산능력을 50% 늘려 연간 생산능력을 105대로 올렸다는 것이다.
조연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불확실한 전방 시장 상황 속에서도 생산능력을 늘리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국내 대형 3사 중 선제적으로 수주잔고를 채웠고, 호황기 수혜를 가장 많이 받는 기업이 됐다”고 평가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북미에서 올해 상반기 매출 5395억 원, 누적수주 1170억 원을 거뒀다. 지난해 상반기 보다 매출은 59.1%, 수주금액은 26.9%가 늘었다.
효성중공업 역시 전력기기 호황이 오기 전 확보해 둔 미국 내 생산기지를 꾸준히 증설하고 있다.
회사는 현지 변압기 생산능력 증설을 위해 미국법인 효성HICO가 지난 7월 실시한 유상증자에 670억 원을 투입했다. 2026년 증설이 완료되면 기존보다 변압기 생산능력이 배로 늘어난다. 함께 추진하는 330억 원 규모의 창원공장 증설과 합치면 총 3천억 원 규모의 연 매출 증대 효과가 예상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효성중공업은 2019년 12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으로부터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 위치한 초고압변압기 생산기지를 4650만 달러에 인수하면서 미국 내 첫 생산기지를 확보했다.
▲ 효성중공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으로부터 인수한 미국 초고압변압기 공장 전경. 효성중공업은 670억 원을 들여 이곳의 생산능력을 배로 확대하는 증설을 추진 중이다. <효성중공업>
이후 4264만 달러를 투입해 2022년 말까지 한 차례 증설을 마쳤다. 당시 목표했던 연간 변압기 생산능력은 연 60대로 알려졌다.
다만 효성중공업의 미국법인 효성HICO(판매법인 포함)는 효성그룹 편입 이후에도 생산 노동자들의 낮은 숙련도로 지난해까지 매년 수백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지만, 올해 상반기엔 흑자로 돌아선 것으로 파악된다.
상반기 말 효성HICO의 수주잔고는 25억698만 달러로 지난해 말보다 59.4%가 늘었다.
LS일렉트릭은 한발 늦게 미국 현지공장 설립 대열에 합류했다.
앞서 LS일렉트릭은 2023년 7월 텍사스주 배스트롭에 생산시설 건설을 위한 부지를 매입해 현재 부지 기초작업을 진행 중이다. 생산품목은 현재까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민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LS일렉트릭이 2022년에 인수한 현지 배전반 기업 MCM엔지니어링이 2024년 말까지 증설을 진행 중"이라며 "증설이 완료되면 생산능력은 매출 기준 500억 원에서 1천억 원으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현재 주목받고 있는 부문은 고압 변압기이지만, 전력망 확대 사이클이 이어지면서 송전망에 대한 투자가 마무리된 이후에는 LS일렉트릭이 강점을 지니고 있는 배전 부문의 중저압 변압기와 배전기기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회사는 예상했다.
전력기기 업체들이 미국 내 생산시설을 확충하는 이유는 미국 정책기조와 값비싼 운송비가 원인으로 꼽힌다.
▲ 고압 변압기는 육중한 부피와 무거운 무게로 운반이 번거롭고 많은 비용이 든다. 미국 전력기기 수요가 늘어난다면 현지공장 증설이 비용상 유리한 이유다. 사진은 고압 변압기가 트레일러로 운송되는 모습. < HD현대일렉트릭 >
박현준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대형 변압기는 무게가 400톤 이상으로 특수차량과 열차, 벌크선 등으로 운송한다”며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의 판관비 대비 운송비용 비중은 18~24%의 높은 수준으로, 보다 장거리인 미국 수출이 확대될수록 현지 생산대비 운송비용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박 연구원은 “바이든 정부가 시행한 '바이아메리카(Buy America)' 정책에 따라 연방 재정이 투입되는 모든 인프라 사업에 미국산 제품을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며 “주정부 단위의 송전망 투자 계획을 연방정부 주도로 전환하는 내용의 정책을 발표해 미국에서 생산한 제품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