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노동조건을 담는 노사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 입법에 이를 수 있을지 미지수다.
15일 노동계에 따르면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자유한국당 의원)이 최근 발의한 노사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놓고 반발이 나온다.
▲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현재 한국의 단체협약 유효기간은 2년으로 일본 3년, 프랑스 5년, 특별한 규정이 없는 독일과 미국과 비교하면 짧다.
김 위원장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짧아 노사갈등이 자주 일어나고 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개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노동단체들은 사용자측과 대등한 협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단체협약의 협상환경부터 정비돼야 유효기간 연장도 논의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처럼 노동단체가 경영자 측과 대등하게 협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의 상황을 외국과 일대일로 비교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정책 전문가는 “한국에서 산별교섭이 전무한 것만 보더라도 한국의 노동 단체협약 교섭환경은 선진국과 비교해 열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산별교섭이란 산업별로 노동조합이 형성돼 사용자측과 협상하는 형태다. 독일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따라 산별노조가 구성돼 합의에 나선다.
산별노조가 개별노조들의 의견을 종합해 사용자측과 대등하게 협상에 임하기 때문에 정부가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특별히 규정하지 않더라도 개별노조의 협상력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산별교섭이 활발하지 못해 사업장 개별노조가 주로 단체협약에 임하는 형태다.
노동정책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는 복수의 개별노조 가운데 주로 사용자 입장을 대변하는 이른바 '어용노조'가 대표노조가 돼 단체협약에 나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표노조가 되지 못하는 소수노조들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늘어나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10% 정도에 불과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탈리아 35%, 영국은 23%, 독일 17%와 비교하면 한국 노조 조직률은 아직 낮은 수준이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외국과 비교하기 위해서는 이런 선행과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노동계에선 강조했다.
2년 주기로 노사 단체협약을 진행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을 약화한다는 김 의원의 주장을 놓고도 반박이 나온다.
김지용 건설기업노동조합 홍보부장은 “노동자들의 기본 처우가 좋은 상태에서 단체협약을 자주 체결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수도 있지만 한국의 노동자 처우는 열악한 상태”라며 “2년 주기로 노동 이슈를 확인하고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기업 생산성도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단체협약에 소요되는 비용을 소모적 비용이 아니라 노동자를 위한 투자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체협약 교섭이 너무 잦으면 소모적 비용이 커지는 것은 맞지만 노사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에 노동계가 동의하기 위해서는 노동단체의 지위가 사용자의 지위와 대등해져 마음껏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지는 게 먼저일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백승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