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고금리 고환율. 이른바 '3고 시대'가 장기화하면서 수출기업은 물론 내수기업까지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일부 산업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모든 산업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무부담이 커진 기업들은 비주력사업을 매각하고, 인력을 전환 배치하는 등 대대적 구조조정을 통한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정부도 기존 자원투입 중심 산업에서 생산성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며 '역동경제 로드맵'을 공개하고 기업들의 체질개선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업재편으로 탈출구를 찾으려는 기업들의 대응 상황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1. 한국 경제 '착시 주의보', 노출되는 한계 신호에 재계 리밸런싱 본격화
2. 'AI발' 새 흐름에 산업은행 커지는 역할론, 강석훈 선택과 집중 고심 깊다
3. 신사업 바쁜 신동빈, 롯데 계열 전방위 '군살빼기'로 물샐 틈 막는다
4. 하반기 본격화하는 부동산PF 구조조정, 커지는 건설업계 긴장감
5. 롯데케미칼 전지소재·수소에너지 중심 사업전환 대수술, 이훈기 구조적 석화불황 속 매스 들어
6. 저축은행업계 허리띠 졸라매도 구조조정 본격화? 인수합병 주인 찾기도 난망
7. 신세계그룹 인적쇄신 이어 구조조정도 꺼낼까, 정용진의 선택에 시선 집중
8. KT 김영섭 7월 구조조정 미디어에 방점, 콘텐츠 부담 해결될까
9. 공기업 구조조정은 후퇴 중? 에너지 위기 부동산 정책사업에 공공기관 부채는 증가
10. 뉴 엔씨소프트 핵심경쟁력에 집중, 박병무 사람 조직 덜어내기 속도
11. 빅테크 인공지능 ‘열풍’의 이면, 대규모 구조조정 ‘한파’는 끝나지 않았다
|
|
▲ 롯데그룹이 계열사별로 구조조정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롯데그룹이 주력 산업인 유통 계열사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구조조정을 이어가고 있다.
신사업에 들어갈 돈이 많아진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당장 실적이 크게 개선될 가능성이 낮거나 부진한 회사를 중심으로 일단 비용 지출부터 줄여보자는 목적이 강해 보인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이른바 4대 신사업 중심으로 미래 먹거리를 마련하겠다는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롯데그룹 계열사별 구조조정의 빈도가 더욱 잦아들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9일 롯데그룹 각 계열사별 분위기를 살펴보면 유통 계열사 전방위적으로 구조조정이 끊이지 않는 모양새다.
호텔롯데 면세사업부(롯데면세점)은 최근 비상경영체제 선포했다. 롯데면세점이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간 것은 2017년 중국 정부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2020년 코로나19에 따른 경영 타격 등 최근 7년 사이에만 3번째다.
롯데면세점이 과거에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외부 사업환경의 급격한 변화 탓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른바 ‘면세점에서 쇼핑하지 않는다’는 관광객의 소비 행태 변화 탓에 사업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주남 롯데면세점 대표가 직접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려 모든 임원의 급여 20% 삭감과 전 직원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 실시 등의 고강도 구조조정 카드를 꺼냈다는 것은 그만큼 롯데면세점의 상황이 절박하다는 방증이다.
롯데그룹에서 구조조정 수술대에 오른 유통 계열사는 롯데면세점뿐만이 아니다.
롯데그룹 유통 계열사의 맏형이라고 할 수 있는 롯데쇼핑은 이미 최근 수 년 동안 수 차례의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마트사업부인 롯데마트는 2021년 이후 3년 동안 모두 3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백화점사업부인 롯데백화점도 1분기에 희망퇴직을 단행했으며 법인 출범 이후 내리 적자만 보고 있는 이커머스사업부 롯데온도 최근 희망퇴직 소식을 전했다.
인력 감원을 보충할 수 있는 신규 채용 규모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롯데쇼핑이 최근 발간한 ‘2023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살펴보면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롯데슈퍼, 롯데온 등 4대 사업부가 지난해 새로 채용한 인원은 모두 169명이다.
2022년 한 해 동안 신규 채용한 인원이 모두 778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채용 규모가 78%나 줄어든 셈이다.
롯데마트와 롯데슈퍼, 롯데온의 채용 규모는 직전 사업연도보다 각각 91.7%, 94.4%, 84.7% 뒷걸음질했다.
롯데쇼핑의 자회사 사정도 안 좋기는 마찬가지다.
롯데시네마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는 지난해 말 근속 3년차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롯데컬처웍스가 희망퇴직을 받는 것도 2021년 이후 2년 망이었다.
롯데홈쇼핑을 운영하는 우리홈쇼핑 역시 2023년 9월 만 45세 이상이면서 근속연수 5년 이상인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해 감원했다.
유통 계열사들이 감원을 통한 비용 통제에 나서고 있다면 화학 계열사들은 아예 근본적인 사업 전략 재편에 나서는 모양새다.
롯데그룹 화학 계열사의 대표인 롯데케미칼은 부진한 해외법인을 정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레이시아 생산기지인 롯데케미칼타이탄(LC타이탄) 매각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화학 계열사를 총괄하는 이훈기 롯데그룹 화학군HQ(헤드쿼터) 총괄대표 겸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사장은 최근 주요 기관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연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비효율 자산을 매각하고 전략적 관점의 사업 철수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 롯데그룹의 상황을 보면 롯데그룹의 구조조정이 특정 계열사에 국한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이뤄지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현재 헬스&웰니스, 모빌리티, 지속가능성, 뉴라이프플랫폼 등 4가지를 미래 먹거리로 낙점하고 이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헬스&웰니스 투자와 관련해 대표적인 계열사들이 바로 롯데바이오로직스와 롯데헬스케어인데 이와 관련해 들어가는 돈이 결코 적지 않다.
롯데지주는 최근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인천 송도에 짓는 공장의 투자 재원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에서 1200억 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9일 1차 납부가 완료됐으며 8월20일에 2차 납부를 진행한다.
롯데지주가 롯데바이오로직스 출범 이후 약 2년 동안 출자한 총 금액만 모두 4700억 원가량이다.
지난해 11월과 올해 4월에는 롯데헬스케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취지에서 이 회사에 모두 500억 원을 넣었다. 롯데지주가 롯데헬스케어에 출자한 총 금액은 1200억 원이다.
롯데지주는 이밖에도 부진한 계열사나 신사업을 개척하고 있는 계열사를 위해 주기적으로 각 계열사에 자금을 수혈하고 있다.
그룹 입장에서 봤을 때 4대 신사업을 중심으로 새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드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유통과 화학 등 이른바 롯데그룹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계열사에서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커진 셈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당장 유통 계열사와 화학 계열사의 현주소를 살펴봤을 때 단기간에 영업환경이 개선될 것이라고 낙관하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롯데그룹의 구조조정 강도가 더욱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