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 세계적으로 식량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는 신냉전 등의 영향으로 오히려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소말리아 돌로우에서 한 아이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제공한 식품을 먹고 있는 모습. |
[비즈니스포스트] 짐 로저스가 옳았던 것일까?
세계가 3대 투자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수년 전부터 기후위기 등을 이유로 미래에는 농업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농업에 투자할 것을 주장해 왔다.
그는 지난 2015년 한국을 방문해 서울대 MBA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다가 “여기 경운기 몰 줄 아는 사람이 있나”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로저스 회장은 당시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서울대에는 똑똑한 학생들만 모였다고 들었는데 실망이다”라며 “미래 최고 유망업종인 농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위기로 점점 심각해지는 지구의 식량난을 바라보면 로저스 회장의 발언은 그저 허언이 아닐 수 있다.
3일(현지시각) 세계보건기구(WHO)는 에티오피아, 케냐, 소말리아, 남수단, 수단, 우간다, 지부티 등 7개 나라에서 8천만 명 이상이 식량 불안을 겪고 있다는 현황자료를 내놨다.
이들 국가가 식량난을 겪는 직접적 원인은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동아프리카 지역은 올해 4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식량 수입까지 막혀버렸다.
장기적으로 세계적으로 식량 위기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영향으로 식량 위기가 크게 부각된 것이지만 점차 심화하고 있는 기후위기에 따른 농업 생산량 감소는 지속적이면서도 구조적으로 세계 각국의 식량 공급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은 올해 폭염과 가뭄에 올해 농작물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은 모두 올해 전례 없는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올해 유럽지역 내 옥수수, 해바라기, 콩 등 수확량이 8~9%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아시아 국가들 역시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위기에서 예외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국가들은 쌀을 주식으로 삼는 만큼 올해 밀, 옥수수 등의 생산량 감소에 따른 타격에서 일단 비껴나 있다. 하지만 올해 쌀 생산량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3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인도 내 쌀 생산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북동부 서벵골주, 북부 우타르 프라데시주 등 지역에서 극심한 가뭄으로 벼 재배 면적이 13% 줄었다.
인도는 세계 쌀 수출량의 40%를 생산하는 국가다.
태국에서는 태국 카시콘은행 산하 연구소에서 비료값 상승의 영향으로 올해 쌀 생산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태국은 세계 2위 쌀 생산국이다.
세계적으로 식량 부족 상황이 벌어지는 가운데 각국에서는 식량 수출을 제한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7월31일 내놓은 해외경제포커스 리뷰에 따르면 7월 말 기준으로 32개 국가에서 53개 식량 관련 품목에 수출금지 혹은 물량제한 등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난 1일 농작물 생산량 보전을 위해 동북 3성 지역과 네이멍구 자치구 등에 분포한 ‘흑토’ 지대의 토지매매 금지 및 흑토 채취를 금지하는 법률을 마련하기도 했다. 흑토 지역은 농업에 적합한 토지로 중국 정부가 세계적 식량 위기에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읽힌다.
세계 각국이 이처럼 식량 위기 대비에 나선 가운데 식량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기후위기 대응에는 오히려 후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이끌어 왔던 서유럽이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 당분간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속도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심지어 석탄발전을 확대하는 방안도 일각에서 추진하고 있다.
한편 로저스 회장은 올해 7월31일 싱가포르에서 김학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세계 식량 부족 문제를 언급하면서 또다시 ‘농업’을 미래 유망 산업으로 꼽았다.
기후변화와 식량위기를 향한 경고는 수년 전부터 그대로지만 식량위기 폭발을 가리키는 시계는 여전히 째깍째깍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