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의약품은 무엇일까?
매출 기준으로 글로벌제약사 애브비의 바이오의약품 휴미라다. 지난해 매출만 20조 원이다. 2위인 셀진의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레블리미드’ 매출 10조 원의 2배에 이른다.
애브비는 지난해 매출 30조 원을 거뒀다. 휴미라로 매출의 3분의 2를 번 셈이다.
시장조사기관 이밸류에이트파마에 따르면 올해 휴미라 매출은 2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휴미라는 어떤 약일까?
우리 몸에는 종양괴사인자(TNF-α)라는 단백질이 있다. 암세포를 죽이는 역할을 비롯해 체내의 면역세포 및 세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이 종양괴사인자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생겨나면 오히려 몸의 정상세포를 공격해 각종 염증이 생겨난다. 이런 증상을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하는데 류마티스 관절염, 크론병 등이 대표적이다.
휴미라는 이 종양괴사인자를 억제해준다. 여러 종류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가 있지만 휴미라는 동물 유전자가 섞이지 않고 100% 인간 단백질로 만들었기에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
휴미라는 류마티스 관절염은 물론 강직척추염,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건선, 비감염성 포도막염, 화농성 한선염 등 여러 자기면역질환 계통 질환의 치료에 쓰인다.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가 이 휴미라의 바이오시밀러(복제약)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애브비에 기술료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휴미라 특허 분쟁을 끝냈으며 올해 10월부터 유럽에서 임랄디를 판매할 수 있게 됐다고 6일 밝혔다.
임랄디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휴미라의 바이오시밀러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해 유럽의약품청(EMA)로부터 임랄디 판매를 허가받았다.
휴미라의 물질특허는 미국에서 2016년 12월 끝났고 유럽에서는 올해 10월 끝난다. 그러나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출시에 난항을 겪었다.
애브비가 경쟁사들의 바이오시밀러시장 진입을 막기 위해 각종 특허를 덧붙이며 바이오시밀러 출시를 막아왔기 때문이다.
경쟁사들은 소송을 통해 특허를 무효화하려 했지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도 휴미라와 관련해 애브비와 5건의 특허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임랄디 출시를 위해 애브비와 기술료를 지급하는 방안으로 타협점을 찾은 배경은 시장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글로벌제약사 암젠은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암제비타’를 출시하기 위해 애브비에 기술료를 지급하는 타협안을 선택했다.
암젠도 유럽 의약품청으로부터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암제비타’의 판매 허가를 받아놓았지만 애브비가 특허 추가등록으로 바이오시밀러 출시를 막자 세계 각국에서 소송전을 벌여왔다.
그러나 암젠은 미국 법원에서 패소했다. 그러자 암젠은 기술료를 지급하는 대신 유럽에서는 올해 10월부터, 미국에서는 2023년부터 출시하기로 애브비와 합의했다.
애브비도 5조 원 규모의 유럽 휴미라시장을 내주는 대신 15조 원 규모의 미국 휴미라시장을 지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낫다고 판단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로서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휴미라 바이오시밀러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잃어버릴 위기에 놓였던 것이기 때문이다.
바이오시밀러는 시장 선점이 중요하다. 시장을 선점한 제품이 과실을 독차지하는 구조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판매하고 있는 바이오시밀러 제품 4개 가운데 현재 시장 안착에 성공한 제품은 ‘베네팔리’가 유일하다. 베네팔리는 바이오의약품 ‘엔브렐’의 바이오시밀러다.
베네팔리는 지난해 매출 4080억 원을 냈다. 2016년 매출 1160억 원의 4배다. 베네팔리가 2016년 유럽에서 세계 최초로 판매허가를 받고 시장을 선점했기에 엔브렐 바이오시밀러시장을 독차지했다.
반면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내놓은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플릭사비’가 지난해 거둔 매출은 100억 원에도 못 미쳤다.
경쟁사인 셀트리온의 ‘램시마’가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시장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는 기술료를 지급하는 조건을 감수하더라도 암젠과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을 펼칠 기회를 얻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그러나 고 대표의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
이번 합의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미국 휴미라 바이오시밀러시장에 2023년까지 도전하지 못한다.
유럽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얻기 위해 미국시장 진출을 당분간 포기한 것이다.
유럽에서 휴미라 바이오시밀러시장 경쟁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글로벌제약사인 베링거잉겔하임도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실테조’의 유럽판매 허가를 이미 받고 애브비와 소송 중이다. 베링거잉겔하임도 애브비와 합의를 한다면 경쟁사가 하나 더 추가된다.
고 대표의 승부수는 성공할까? [비즈니스포스트 이승용 기자]